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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생충’에만디테일 살아있나 ‘춘향전’에도 생생

트렌드 평행이론

  • 입력 2019.07.17 00:00
  • 수정 2022.02.23 10:09
  • 기자명 김광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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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준호 감독 하면 ‘봉테일’을 떠올리는 영화팬이 많다. 디테일을 잘 살린다는 뜻이다. 디테일은 보다 깊은 의미를 전달하거나 사실성을 높일 때 요긴하게 쓰인다.

판소리를 부르던 소리꾼들도 디테일을 중시했다. 그때는 이면을 맞춘다고 표현했다. 등장인물과 이야기의 흐름을 잘 맞추어서 모순되는 부분이 없도록 하는 과정이다. 디테일을 다듬는다는 말이라고 해도 무방하다.

이를테면, ‘춘향가’의 춘향과 ‘심청가’의 심청은 같은 10대고 비슷한 시대를 살았지만 분위기와 태도가 사뭇 다르다. 슬픈 대목에서 더 뚜렷하게 드러난다. 심청은 악을 쓰면서 우는 느낌이 별로 안 든다. 집안 형편이 어렵다 보니 좀 못 먹은 게 아닌가 싶을 정도다. 옛일을 추억하면서 뜨겁게 눈물을 흘리는 정도에서 그친다.

춘향이는 다르다. 기백있게 운다. 울음을 터뜨리는 춘향을 보고온 방자가 몽룡에게 이렇게 고했다.

‘도련님 오시면 둘이 들어간다고 땅을 한 길은 넘게 파놓고, 잔디를 어찌 쥐어 뜯었는지 밥을 허면 세 끼니는 해먹게 뜯어놓고 우는디’.

개방적인 집안 분위기, 넘치는 체력, 10대의 패기, 이 모든 게 다 느껴진다. 전형적인 ‘흙수저’ 심청이와 사뭇 다르다. 인물과 관련된 디테일을 꼼꼼하게 살린 결과일 것이다.

춘향전에 또 하나의 디테일 명장면이 등장한다. 이도령과 춘향이 첫날밤을 보내고 난 후에 춘향모가 간밤의 일을 알아차리는 대목이다. 늦잠 자는 딸을 보고는 ‘누가 덮쳤구나’ 하고 대번에 눈치를 챈다. 근거가 두 가지였다. 첫째, 야위었다. 밤새 살이 좀 빠진 것이다. 그럴 수도 있다. 둘째는 옷이다.

‘입은 옷이 잔살이 구겨 적은 바람 가는 물결같이 꼬기작꼬기작 전일과 다른지라.’

춘향모는 전직 기생이다. 이 예리한 포착을 접하고 나면 춘향의 겉모습뿐 아니라 춘향모의 지난 삶이 일시에 다가서는 느낌이다. 그 시대를 살았던 사람들은 이 한 구절에 춘향의 이야기에 빨려 들었을 듯. 봉준호 감독이 판소리를 좋아하는지는 모르겠지만, 디테일은 우리 예술인들이 공을 들였던 부분이다.

연기도 우리의 전통과 맥락이 닿아 있는 느낌이 든다. 수상 후 봉준호 감독은 마이크를 (연기상 수상이 유력했던) 송강호에게 넘겼다.

“인내심과 슬기로움과 열정을 가르쳐주신 대한민국의 모든 배우들에게 이 상을 바치고 싶습니다.”

연기의 기술은 비슷하겠지만 그 이면에 흐르는 기조 혹은 분위기는 사뭇 다르다. 한국 배우들의 연기는 아시아에서도 특별하다. 전통과 사상에서 이런 차이를 확인할 수 있다. 세상 모든 배우들의 연기를 비교할 수 없겠지만 한중일은 어느 정도 가능하다.

중국과 한국의 차이를 설명하는 단어 중에 ‘인(仁)’과 ‘정(情)’이 있다. ‘인’은 ‘어질다’로 해석한다. ‘정’은 말 그대로 정이다. ‘인’은 말씀드렸듯이 윗사람의 윤리이자 정서다. ‘논어’ ‘헌문’ 편에 “군자이면서 인하지 못한 이는 있지만 소인이면서 인한 이는 아직 없었다.”는 구절이 등장한다. 여기서 군자는 성인군자의 군자라기보다 지위가 높은 사람을 말한다. 지위가 높은 사람의 독점적 윤리라고 해도 무방하다. 인이라는 윤리의 정체성이 드러나는 구절이다.

‘꽌시’란 것도 일반적으로는 ‘친한 사이’ 혹은 그런 관계를 형성하는 것을 뜻하지만, 그 속에는 누가 형이고 누가 동생인지 관계를 정리하는 것 역시 핵심 사항이 아닐까.

정은 상하가 아니라 수평에 가깝다. 사이 혹은 거리의 문제다. 윗사람과 아랫사람 사이에 일어나는 감정이나 정서보다 훨씬 복잡하고 미묘하다. 예를 들어 ‘인’은 좋은 인, 나쁜 인이라는 말이 불가능하지만(유추가 가능하긴 하다), 정은 ‘미운 정’도 있고 ‘고운 정’도 있다. 감정이 훨씬 세밀하다. 상하 관계는 ‘예의’란 단어가 어울리지만 사이, 혹은 관계는 왠지 예술이란 단어와 어울린다. 이런 기본적인 정서의 차이가 연기에도 자연스럽게 스며들지 않을까.

중국 영화 중에 최고는 액션 영화다. 이런 류의 영황에서는 상관과 부하, ‘따거(형님)’과 동생의 관계 설정이 명백하다. 액션 영화에 복잡 미묘한 관계가 설정되진 않는다. 이소룡이나 이연걸 영화에 ‘사랑하기 때문에 헤어진다’ 같은 말은 안 어울린다. ‘너 오늘 나한테 죽었다’ 같은 말이 제격이다.

한국 배우들의 연기는 일본 배우들과도 다르다. 일본에서 오랫동안 활동한 배우 A씨는 일본인들의 연기철학을 소개하면서 ‘자연스러운 동작도 자연스러워 보이기 위해 철저하게 계산한다’는 이야기를 했다. 절제미의 절정이다. 그것이 감동을 주기도 하지만 한국적인 정서와는 사뭇 다르다.

한국과 일본의 근본 차이는 ‘소학’에 대한 태도를 보면 알 수 있다. 소학은 실천을 중요하게 생각한 책이다. 우리 조상들이 가장 중요하게 여긴 덕목은 효다. 효는 개인 윤리다. 임금도 효를 실천하는 선비라고 봤다. 임금이 불효하면 더 이상 임금 대접을 못 받을 수 있었다. 반면 일본은 개인적인 실천을 강조한 ‘소학’을 푸대접했다. 그들이 가장 중요하게 생각한 윤리는 충이었다. 쇼군에게 또는 왕에게 충성하는 것이다.

장군과 신하, 무사와 백성 사이에 복잡 미묘한 감정이 일어나진 않는다. 임금과 신하 사이에도 복잡다단한 의식이 흘렀던 우리와 사뭇 달랐다. 이런 사상의 차이 역시 연기에 그대로 적용되지 않았을까.

몽테스키외는 정치 형태에 따라서 사람들이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과 교육의 방향과 내용이 많이 달랐다고 설명했다. 전제정이냐, 공화정이냐, 군주정이냐에 따라 사람들의 사고방식과 정서에서 큰 차이가 보였다는 뜻이다. 나라마다 저마다의 역사적 배경을 가지고 있다. 그 속에서 형성된 정서들이 지금의 삶과 행동, 또 배우들의 연기에 도 영향을 미치고 있다고 봐야 한다. 송강호의 말대로 지금의 한국영화의 성취는 선배 배우들, 더 올라가 우리 조상들의 정서와 사상에도 뿌리를 두고 있다고 봐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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