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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민기자 소확이_소소하지만 확실한 이슈

‘남성 세상’서 꽃핀 여성문학 세계 문화 유산으로

  • 입력 2019.06.24 00:00
  • 수정 2020.11.11 15:13
  • 기자명 권숙희·박혜정 시민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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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3월 30일 열린 대구 옻골마을 상춘놀이(화전놀이)에서 대구여성박약회 내방가사반 회원들이 내방가사를 함께 읽고 있다(오른쪽 위는 권숙희 시민기자).

지난 4월 25일 태안반도 세계튤립축제장. 한복을 곱게 차려 입은 ‘꽃할매’들이 나타났다. 꽃구경을 하거나 인디언 연주에 쏠렸던 시선들이 할매들을 향했다. 오늘 꽃축제장에서 의미 깊은 공연으로 주목받은 꽃할매들이다. 

꽃구경을 하는가 싶던 할매들이 저마다 앉을만한 자리를 찾아 앉았다. 그러고는 일제히 가방에서 흰 두루마리를 꺼내 장단 맞춰 읽기 시작했다. 자연스레 온 축제장이 공연장. 내방 가사 ‘사시풍경가’였다. ‘사시풍경가’는 사계절의 아름다움을 읊은 내방가사다. 영남지방 사대부가의 여인들이 짓고 읽던 내방가사가 단체로 서해안 태안반도까지 첫 나들이를 했다. 공연팀은 대구여성박약회 내방가사반 회원들. 대부분 70~80대이지만 내방가사에 대한 사랑과 열정은 젊은 사람들보다 뜨겁다.

현전 6,000여 편…영남 북부가 중심

내방가사의 효시는 허난설헌의 규원가로 거슬러 올라간다. 대개 조선후기부터 영남지방 여인들이 즐기던 세계 유일의 여성 전용 문학이라고 할 수 있다. 내방가사는 4.4조의 운율체다. 한지 두루마리에 한글 붓글씨로 써서 읽었다. 한글 문학이다 보니 한글 변천사의 중요한 자료다. 4·4조 운율은 귀에 익고 편안하다. 우리가 태중에서 들었던 어머니의 심장소리 박자이기 때문이다.

어릴 때 많이 들으며 잠들었던 자장가도 내방가사의 운율이다. 내방가사는 남성들이 쓰지 못한 여성들의 이야기를 여성들 자신이 기록했다는 점에서 더욱 소중하고 내밀한 역사자료다. 내방가사는 나눔이 있는 글이다. 글 모르는 사람을 위해 소리 내어 읽어준다. 내방가사 중에는 ‘먼데 사람 듣기 좋게 곁에 사람 보기 좋게’라는 구절도 있다.

현재 전해지고 있는 내방가사는 6,000여 편. 내방가사는 지금도 창작되고 있는 현재진행형 문화유산이다. 국학진흥원에서는 2017년부터 내방가사의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 등재를 추진 중이다. 내방가사는 규방가사라고도 한다

내방가사, 더 많은 사랑과 관심 필요

내방가사는 대부분 영남지역에 뿌리를 두고 있다. 특히 안동을 중심으로 한 영남 북부지역이 중심이다. 남성지배의 유교문화 전통이 강했던 이 지역에서 여성은 어려서는 할머니나 어머니로부터 내방가사를 들으며 자랐고, 혼인 후 시댁으로 갈 때는 신행 혼수단지 속에 친 정어머니가 챙겨주신 내방가사 두루마리 몇 개쯤은 들어있기 마련이었다. 대구여성박약회 내방가사반 13명의 회원들도 모두 이 지역에 살거나 기반을 둔 분들이다.

6년 전 우연히 내방가사 한 편을 쓴 것이 인연이 돼 박약회 내방가사반 최연소 회원이 됐다. 적잖은 나이지만 할머니들로부터 과분한 사랑을 받고 있다. 얼마 전 어린이들에게 내방 가사를 알리는 책을 준비했는데 한국출판문화산업진흥원의 우수출판콘텐츠 제작지원을 받게 됐다. 내방가사를 소재로 한 동화도 공모전에서 두 번 당선됐다. 더 많은 사람들의 사랑과 관심으로 내방가사 세계기록유산 등재가 이뤄지기를 기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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