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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길 서예 작품인생,오로지 한길만 보고 갑니다

[이 사람] 이홍화 퍼포먼스 서예가

  • 입력 2019.07.11 00:00
  • 수정 2020.11.11 15:28
  • 기자명 김재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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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 하나로만 평가 받아야죠. 오로지 서예 한 길만 바라보고 걸어왔습니다.”

퍼포먼스 서예가로 널리 이름을 알리고 있는 청악 이홍화(61)씨. 그는 최근 김천시 승격 70주년을 기념하는 ‘김천을 빛낸 향토 장인’ 11명 중의 한 명으로 선정됐다. 이씨는 “평생 김천을 중심으로 서예를 해왔고, 지역에서 여러 봉사활동들을 해오다 보니 선정된 것 같다”며 “무한한 책임감을 느끼고 앞으로 더욱 작품 활동에 매진해 보답해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경북 김천시 구성면에서 태어난 이씨는 ‘초등학교’ 2학년인 9세 때 서예에 입문했다. 청담스님, 삼여제 김태균 선생 등 서예 대가로부터 지도를 받았으며 1976년 김천에 자신의 서실을 열고 지역에서 지금까지 왕성한 활동을 보이고 있다. 

지금까지 김천에 있는 100여개 현판을 썼다. 김천문화예술회관, 김천시문화회관, 직지사 장승 글씨도 그의 작품이다. 또 해동 용궁사, 양산대종 현판, 통도사 현판 등 그가 쓴 글씨들은 전국 도처에 자리 잡고 있다. 지금까지 그의 서실을 거쳐 간 사람만 해도 4,000여명, 김천시 평생교육원에서 그의 수업을 들은 사람은 1만명이 넘는다.

그는 “일반적으로 서예 작품에만 그치지 않고 조각, 서각, 동양화, 서양화 등을 작업을 하며 활동영역을 넓히고 있다”며 “다양한 안료를 사용해 눈이 가는 색감을 활용해 독창적인 형태를 추구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가 가지고 있는 붓은 수천 개에 이른다. “붓은 하나만 쓰면 두 달 이상 쓰지 못하기 때문에 여러 작품 성격에 따라 다양한 형태의 붓을 써야 한다”는 것이 그의 설명이다.

“지금까지 구입한 붓 값만 하더라도 집 한채 가격은 될 겁니다. 퍼포먼스 붓은 가격 이 수백만원에 이르기 때문에 지속적으로 관리하고 사용하는 것이 중요하죠.”

작품의 영역의 범위는 넓다. 유명 인사들의 명언부터 인기 가수들의 노랫말 등 그때 머릿속을 스치는 다양한 생각과 글귀가 모두 이씨의 작품 대상이다.

그는 대형서예 퍼포먼스를 통해 서예 문화 알리기에도 앞장서고 있다. 큰 붓을 사용하며 종이에 글씨를 써 내려가는 모습에 사람들은 큰 관심을 가진다.

이씨는 지난 2007년 제146호 대한민국 명인으로 추대된 데 이어 2017년에는 대한민국 신지식인으로 선정되기도 했다. 또 2018평창동계올림픽 성공기원 세계미술축전 운영위원으로 활동하기도 했다. 이 밖에 2006년에는 48세의 나이로 김천의 최고상으로 불리는 ‘김천시 문화상’을 받기도 했다. 역대 수상자 중 최연소였다. 그는 “수많은 작품 활동과 다양한 봉사활동을 인정받은 것이라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이씨는 가장 기억에 남는 작품으로는 1997년 작업한 경주 현광사 법화삼부경을 꼽 았다. 작품 제작은 정확히 그해 1월2일 시작해 12월31일에 마쳤다.

“17만자가 새겨진 법화삼부경 제작에는 순금이 들어가 당시 4억여원의 비용이 들었습니다. 절에서 비용을 댔고, 서울에 있는 유명 서예가들도 여럿 도전했지만 사나흘 작업하고는 포기한 사람이 많았죠. 글씨가 계속해서 이어져야 하기 때문에 점 하나라도 틀리면 새로 써야 했습니다. 경을 쓴다는 생각에 작업 내내 아픈 줄도 모르고 작업했습니다.”

그와 관련해 가장 유명한 일화는 김천문화예술회관 건립을 위해 김대중 대통령에게 상소문을 적어 보낸 것이다. 예산이 부족해 골머리를 앓던 중이었다. 이씨가 상소를 올린 후 그 정성이 통했는지 건립 예산을 확보했다. 이씨는 감사의 마음을 담아 다시 편지를 보냈다.

그의 작품은 총 16만점이 넘는다. 지금도 하루에 40~50여개 작품을 쓰고 있고 이중 20여점은 자신의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업로드하며 소통하고 있다. 현재 보관하 고 있는 작품만 해도 1,000여점에 이른다.

“특별한 작품이 아니면 기록으로 남긴 후 모두 찢은 뒤 버립니다. 주변에서는 의아해 하지만 작품을 보관할 장소도 마땅치 않고, 만족할 만한 작품도 많지 않아 그런 퍼포먼스를 통해 스스로 작품에 대한 결의를 다지는 거죠.”

그는 최근 변화해 가는 서예문화에 대해 안타까운 마음을 드러냈다. “최근 들어 작품 활동보다 공모전 대회 그 자체에 집중되는 경향이 있는 것 같다”는 것이 그의 생각이다.

“그들만의 리그가 되어선 곤란합니다. 저 혼자만의 힘으로는 안 되겠지만, 제가 할 수 있는 한 최선을 다해서 대중들이 서예를 깊이 이해하고 다가갈 수 있는 분위기가 만들어질 수 있도록 노력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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