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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고 죽을따~ 하면서도 글자는 배우러 꼭 오니더”

보는 글자에서 읽는 한글로 … 평생의 한 풀어주는 안동시 한글배달교실

  • 입력 2019.07.01 00:00
  • 수정 2020.11.10 15:25
  • 기자명 류수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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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게 아이고(아니고), 받침이 도망가뿌면 안 된다 하이까네(안 된다니까)...”

경북 안동시 서후면 대두서리 경로당, 고령의 학생 23명이 각자 노란 책상 앞에 앉아 연습장에 ‘울긋불긋’을 적는 등 끼리끼리 웅성이며 수업 참여에 열성이었다. 책상, 지우개, 연필 등 모든 학용품을 지원해 학생들은 몸만 오면 된다. 9주차에 접어든 이날 수업의 주제는 ‘시옷’이었다. 수업을 맡은 조금순(62)씨는 “받침은 자식과도 같아서 자음과 모음 사이 아래에 항상 놓치지 않고 챙겨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초등학교 1학년 수업 수준이지만 평균나이 80세를 웃도는 이들에게는 쉽지 않다. 이들은 매주 화ㆍ목요일 오후 12시30분부터 2시간 동안 진행되는 한글 배달 교실에 김매던 호미마저 콩밭에 던져놓고 경로당을 찾았다.

학생 대부분은 70대 이상 고령의 여성으로 학교와 담을 쌓고 지냈다. 자기 이름 석 자도 못썼던 것이다. 이들은 하나같이 “못 배운 게 평생의 한”이라며 “진작 익혀두지 못한 게 원망스럽다”고 성토했다. 1년 남짓 한글 배달교실에서 공부 중인 김재영(78)씨는 이름도 모르는 데다 자식들도 멀리 떨어져 있어 이름을 써야 할 일이 있을 때마다 이웃집 등에 쫓아가 도장을 맡기며 부탁하기가 일쑤였다”며 “고지서 영수증 등을 봐도 무슨 금액이 얼마나 쓰였는지 조차 알 수 없었다”고 말했다. 조씨는 “어른들이 눈물을 흘리며 ‘글자도 모르고 시집온 게 부끄러워서 사회생활도 못 하고 가족들에게도 미안했다’고 고백해 가슴이 먹먹했다”며 “갓길조심 등 간단한 안내문구라도 이해할 수 있게 교육하는 게 목표”라고 말했다.

안동시 등은 2014년 지역주민의 문맹 탈출을 위해 양팔을 걷었다. 안동시, 한국수자원공사 안동권지사, 안동시평생학습교육지도자협의회는 2014년 업무협약을 체결한 뒤 7년째 ‘안동 시 찾아가는 한글배달교실’을 운영하고 있다. 한글배달교실은 한글를 깨우치지 못한 성인에게 3년간 한글을 가르치고 시화전 등 행사도 개최하는 문해교육지원사업이다.

첫 수업은 2014년 수자원공사가 예산 3,000만원을 투입, 안동댐 주변 마을인 와룡면 서현리 12명 등 3개 마을에서 47명을 대상으로 시작됐다. 2017년 안동시가 시비 2,000만원을 투 입하는 등 총 사업비가 9,000만원으로 늘어남에 따라 사업 범위도 10개 마을 205명으로 전 년도 4개 마을 80명에 비해 대폭 증가했다. 올해 사업규모는 시비 8,000만원 등 총 2억원으 로 14개 마을에서 320명이 한글을 배우고 있다.

지난해까지 한글교실을 거쳐 간 학생은 770명, 사업효과는 가시적이다. 기본적인 한글을 읽고 쓰는 정도일지라도 학생들 삶의 질이 달라졌다. 황숙자(76)씨는 “‘화장실’이라는 글자를 몰라 바로 앞에 서서 화장실을 찾기도 했지만 이제 표지판 속 글자를 읽는 재미로 다닌다”며 “글자를 알고 나서 자식들에게 배운 것도 자랑하니 세상이 다르게 보여 끼니도 제쳐두고 올 때도 많다”고 말했다.

안동시장 전상서까지 등장했다. 김시영(84)씨는 지난해 10월 ‘안동시장님께 올림’이라는 편지에서 “아무리 애를 써도 머리가 늙고 녹이 끼어 도저히 한글이 늘어나지 않습니다. 그러나 여기까지 온 것도 시장님의 지원이라고 생각한다. 금년 한해도 잘 배우게 해줘서 너무 감사하다”고 전했다.

허정순(79)씨는 “수업 시간이 3년 이상은 안 되니까 악착같이 달려들어 배운 덕에 뉴스를 보면서도 글씨를 읽는다”며 “더 많이 배워서 시를 써보는 게 소원”이라고 말했다. 안동시는 2017년부터 매년 문해(文解)시화전을 열고 학생들이 쓴 시 40여점을 안동시청 등 기관 로비에 1~3주간 전시하고 있다. 특히 지난해 한글교실 학생들의 시 120여점을 추려 ‘어머니의 시간’이라는 문해시집을 발간했다. 이 시집은 크라우드 펀딩으로 모금한 비용으로 발간한 전국 최초 시집이라는 타이틀도 거머쥐었다.

한편 안동시는 지난 4월 유네스코 글로벌학습도시 네트워크(UNESCO GNLC)에 가입을 신청해 이달 말 승인을 받았다. 안동시는 올 10월 콜롬비아 메데진에서 열리는 총회에 참석, 전 세계 학습도시 간에 정보 교환 등을 할 계획이다. UNESCO GNLC는 2015년 멕시코 멕시코시티에서 공식 출범한 협력체로 현재 그리스 아테네 등 48개국 205개 도시가 회원으로 있다.

권영세 안동시장은 “백발이 성한 어르신들의 배움에 목마른 눈빛을 생각하면 존경심이 든다”며 “안동에 한글을 모르는 어르신이 한 분도 안 계실 때까지 한글 배달교실을 지원할 것 이다”고 힘주어 말했다.

 

인터뷰 권영세 안동시장

“어르신들의 감사편지 한 장에 피로가 사라지는 것 같습니다”

안동시가 6년째 시행 중인 ‘찾아가는 한글 배달교실’에 대한 반응이 뜨겁다. 2003년 안동시는 대구ㆍ경북 최초의 평생학습도시로 선정되며 경북 평생학습도시로 부상했다. 2004년부터 예산지원 등으로 문해교육사업이 시작됐지만 수동적인 방식이었다. 그 뒤 2014년 안동시는 읍ㆍ면의 비문해 성인을 위해 ‘찾아가는 한글배달교실’을 시행했다. 한글배달교실은 수요자 맞춤형 학습서비스로 읍ㆍ면 지 역에 강사를 파견, 마을 경로당 등에서 2시간 동안 한글을 가르치는 것이다. 권영세 안동시장은 “2014년 한글 배달교실이 시작되면서 5년간 한글 배달교실을 거쳐간 어르신들의 감사편지가 끊이지 않는 다”며 “지금도 잘 간직하고 업무로 지칠 때면 한번씩 펼쳐보며 힘을 얻기도 한다”고 말했다. 그는 “농사일 등으로 바쁜 일정에도 수업이 있는 날이면 논에서, 밭에서 부리나케 찾아온다”며 “백발이 성성한 늦깎이 학생들의 배움에 목마른 눈빛을 생각하면 지금도 존경심이 든다”고 말했다.

최근 이슈로 대두하는 인구감소에 따른 지방소멸 위기가 안동시에도 난제다. 권 시장은 “인생 100세 시대 시민들의 평생학습을 통한 지역공동체 활성화가 하나의 해결책이 될 것으로 본다”며 “안동시는 2010년 국제교육도시연합(IAEC),  올해 유네스코 글로벌 학습 도시(GNLC)에도 가입했다”고 말했다. 이로써 안동시는 전세계 50여개국 200개가 넘는 도시와 평생학습관련 사업과 정보 등 교류에 물꼬를 텄다. 권 시장은 “해외에도 우수한 학습도시가 많은 것으로 알고 있다”며 “이들과 교류해 시민, 교육이 중심이 되는 희망찬 안동을 만들어가는 데 정주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안동시는 평생교육 전담부서와 조직을 확대했다. 종전 과단위에서 머물던 평생학습을 국단위로 승격, 평생교육사도 충원하는 등 평생교육에 온 힘을 쏟고 있다. 권 시장은 “체계적인 학습서비스를 시민들에게 제공해 언제, 어디서나, 누구나 원하는 학습을 할 수 있 는 평생학습도시 안동을 만들어 가도록 하겠다”고 힘주어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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