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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뒤끝뉴스] 법원의 신일철주금 자산 압류서류 서류 수취거부 해프닝…왜?

  • 입력 2019.01.11 00:00
  • 기자명 김정혜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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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항제철소 내 주소지로 송달되는 우편물은 대부분 자동 반송되는 탓

경북 포항시 남구 괴동동 포스코 포항제철소 안에 있는 PNR 공장 전경. 출처 PNR 홈페이지.

지난 8일 직원 수가 100명도 되지 않은 경북 포항의 철 부산물 처리 회사 PNR(피엔알)이 크게 주목 받았습니다. 대구지법 포항지원이 PNR에 30%의 지분을 보유한 신일철주금(옛 신일본제철)을 상대로 강제징용 피해자들이 낸 자산 압류신청을 승인했기 때문입니다.

강제징용 피해자 이춘식(95)씨 등을 대리한 변호인단은 대법원 확정판결에도 신일철주금이 손해배상을 하지 않자 지난달 31일 신일철주금의 한국 자산인 PNR의 주식을 압류해달라며 법원에 강제집행을 신청했습니다. PNR은 포스코와 신일철주금이 7대 3의 비율로 투자해 설립한 회사입니다. 회사명 PNR의 PN도 포스코의 영문자 ‘P’와 신일철주금의 영문자 ‘N’이 합쳐진 것입니다. 변호인단은 신일철주금이 PNR주식 234만여주(110억원 상당)를 보유한 것으로 추정했습니다.

법원의 승인 이후 PNR의 움직임에 많은 관심이 쏠렸습니다. 압류명령 결정은 법원이 보낸 압류신청 서류가 수신인이 손에 들어가야 효력이 생깁니다.

하지만 법원이 PNR에 등기우편으로 보낸 압류신청 서류가 반송돼 PNR의 대표이사 집 주소로 다시 발송한 것으로 알려지면서 포항에는 이상한 이야기가 나돌기 시작했습니다. ‘PNR 지분 70%를 보유한 포스코가 수령을 막았다’거나 ‘PNR이 일본정부의 지시를 받고 일부러 수취를 거부했다’는 등 갖가지 추측이 흘러나왔습니다.

 

[저작권 한국일보]대구지방법원 포항지원 전경. 한국일보 자료사진

포스코, “PNR 직원들 서류 기다렸으나 오지 않았다”

기자는 9일 오후 PNR을 비롯해 포항제철소 출입을 통제하는 포스코에 서류 송달 여부를 물었습니다. 포스코 관계자는 “PNR에 확인한 결과 법원에서 서류가 온 적이 없는 것으로 파악됐다”고 말했습니다.

포항제철소는 서울 여의도 면적(2.9㎢)의 3.5배로 넓고, 포스코의 철강 생산라인을 비롯해 PNR과 같은 계열사와 협력업체 공장 수십 곳이 자리하고 있습니다. 또 제철소 맞은편에는 빌딩 형태의 포스코 본사 건물이 위치합니다. 포항제철소는 국가보안시설로, 포스코가 모든 출입을 통제합니다.

포스코에 따르면 수신처가 포스코와 포항제철소 내로 발송된 우편물과 택배 등은 포스코 포항 본사의 문서수발실로 도착합니다. 집배원이나 택배기사는 이곳에서 포스코와 제철소 내 수령인에게 전화를 한 뒤 해당 회사나 부서의 직원이 나오면 전달합니다. 수령인이 부재중이거나 전화조차 받을 수 없는 상황이 돼도 문서수발실에 집배원이 다녀간 흔적은 남게 됩니다.

포스코 관계자는 “PNR 직원이 서류를 받기 위해 일부러 문서수발실에 부탁까지 했으나 문서수발실에 전혀 송달 기록이 없다”며 “PNR 직원이 법원에 가 수령 주소를 회사 대표 집 주소와 법무사 사무실 주소로 변경하고 왔다”고 설명했습니다.

하지만 포스코도 법원 서류가 왜 도착하지 않았는지 영문을 알지 못했습니다.

 

경북 포항시 남구 괴동동 포스코 본사 외관. 출처 포스코 홈페이지


반송된 서류, 법원의 실수인가 집배원의 실수인가

발신자인 법원은 ‘송달된 서류가 반송됐다’ 하고, 수신자인 PNR은 서류를 받지 못했다면, 법원이 주소 등을 잘못 기재해 보냈거나 우편물을 배달하는 집배원의 실수 중 하나일 겁니다.

기자는 먼저 법원에 반송 여부와 이유를 물었습니다. 대구지법 포항지원 관계자는 ”서류가 반송된 것은 맞지만 우리(법원)가 주소를 잘못 쓴 건 아니다”며 “PNR측이 서류를 받기 위해 법원에 와 수령지 주소를 바꾸는 영수변경신고를 했고, 다시 발송돼 내일(10일)쯤이면 받을 것이다”고 말했습니다.

기자는 이번에는 포항우체국을 찾았고, 오후 6시가 다 돼 업무를 마치고 우체국으로 복귀한 집배원을 만났습니다.

집배원의 설명은 포스코 관계자와 조금 달랐습니다. 집배원에 따르면 포스코 본사 우편물은 포스코 문서수발실로 전달되지만, 포항제철소 내로 송달된 우편물은 대부분 자동 반송 처리됩니다. 몇 년 전만해도 포항제철소 내 우편물을 처리하는 곳이 있었지만, 현재는 운영되지 않습니다.

포항우체국 집배원은 “간혹 우편물에 수신자의 연락처가 있으면 전화해 제철소 입구에서 만나 전달하지만 대부분 통화가 잘 안 되는 대표전화거나 번호가 없는 경우도 많다”며 “PNR의 법원 서류가 자동 반송됐다면 이 때문일 것이다”고 말했습니다.

포항우체국 전경. 출처 포항우체국 홈페이지

해프닝으로 끝난 서류 반송

법원의 압류 서류 반송은 회사가 수취를 거부한 것도, 집배원의 배달사고도 아닌 단순 해프닝이었습니다. 또 포항제철소로 발송되는 우편물에는 흔하게 있는 일이었습니다. 그런데도 왜 이번 반송을 두고 ‘PNR이 일부러 받지 않는다’는 등의 추측이 나왔을까요.

강제징용 소송의 피해자 변호인단은 신일철주금에 손해배상을 촉구하기 위해 지난해 11월12일과 12월4일 두 차례 비행기를 타고 일본 도쿄의 본사까지 찾았지만 문전박대를 당했습니다. 변호인단은 고인이 된 피해자 세 명의 영정사진까지 들고 면담을 요청했지만 회사 입구에서 신일철주금의 직원도 아닌 용역경비회사 직원에게 거절당한 채 한국으로 돌아와야 했습니다. 이처럼 신일철주금이 강제징용 피해자의 목소리를 줄곧 무시해온 터라 PNR주식 압류 서류가 반송된 사실에 수취를 거부한 것 아니냐는 설도 나올 수 밖에 없었습니다.

PNR은 포스코가 30%의 지분을 가진 신일철주금보다 더 많은 70% 지분을 보유한 회사입니다. 대표도 한국인이고, 매달 한 차례 정기적으로 불우시설과 환경보호도 나설 정도로 포항지역 사회에 공헌활동이 많은 회사입니다. 강제징용 피해자 변호인단이 급기야 신일철주금의 한국 내 자산인 PNR 주식을 압류신청 한 것은 신일철주금이 전혀 협의에 응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2018년 10월 30일 오후 서울 서초구 대법원 앞에서 일제 강제징용 피해 생존자인 이춘식 할아버지가 강제징용 손해배상청구 소송 재상고심 선고공판에서 승소 판결을 받은후 열린 기자회견에서 혼자살아남은 것이 슬프다며 눈물을 흘리고 있다. 신상순 선임기자

반송된 PNR 주식 압류 서류는 9일 법원이 재발송하고 몇 시간 지나지 않아 효력이 발생했습니다.반송 사실 문의 전화가 빗발치자 법원이 PNR에 수령을 요청했고, 이날 회사의 업무 대행 법무사가 직접 받아간 것입니다.

잠자코 있던 일본 정부도 반응했습니다. 일본 정부는 자산 압류 통지가 신일철주금에 도착한 것을 확인한 9일 오후 이수훈 주일한국대사를 외무성으로 불러 항의하며 협의를 공식 요청했습니다.

대구지법 포항지원과 포스코 직원들은 이날 하루 여러 의혹에 해명을 하느라 진땀을 뺐다는 후문입니다. 같은 날 강제징용 피해자 변호인단은 “신일철주금이 협상에 응하지 않으면 법원에 국내 자산 매각을 신청할 것이다”고 밝혔습니다.

신일철주금이 이제라도 강제징용 피해자 배상 문제를 무시해선 안 된다는 사실을 깨닫고 적극 협상에 나서기를 기대합니다.

포항=김정혜기자 kjh@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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