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작권 한국일보]지난해 11월 15일 규모 5.4의 지진으로 필로티 기둥이 크게 파손됐던 경북 포항 북구 장량동 한 원룸 건물이 철재 펜스로 둘러싸인 채 체납 고지서가 가득 꽂혀 있다. 포항=김정혜기자 kjh@hankookilbo.com

12일 오전 경북 포항시 북구 장량동 대구지방검찰청 포항지청 건물. 지난 해 11월15일 규모 5.4의 강진이 발생한 진앙 흥해읍 남송리와 불과 2㎞ 떨어진 이 건물에는 요즘 리모델링 공사가 한창이다. 당시 지진으로 이 건물은 문틀과 기둥 곳곳이 뒤틀리고 금이 갔다. 지진 당시 천장이 무너져 내려 조사를 받던 피의자와 검사, 수사관이 같이 뛰어 나가는 웃지 못할 일이 벌어지기도 했다. 바로 옆 대구지방법원 포항지원도 큰 피해를 입었고, 최근에서야 보수 공사를 마쳤다.

같은 날 찾은 북구 흥해읍 흥해초등학교는 건물 두 동을 철거하고 새로 짓는 중이었다. 5ㆍ6학년 6개 학급 학생들은 운동장에 임시 마련된 컨테이너를 교실로 쓰고 있다. 지진 당시 외벽 벽돌이 무너졌던 한동대도 최근 건물 수리를 마쳤다. 기숙사 외벽에는 낙하물 피해 방지를 위한 처마가 설치됐다. 포항역도 천정 보수 공사를 마무리했고 영일만항 부두는 지진으로 갈라졌던 틈을 메웠다. 포항 북구청은 붕괴 가능성이 높아 결국 옆 건물로 임시 이전했다. 대신 인구 감소로 폐교한 옛 포항중앙초등학교 부지로 옮겨 신축될 예정이다.

포항시 지진대책국 관계자는 “공공건물은 어느 정도 보강 공사가 이뤄졌고 그 중에 학교가 가장 빨리 복구되고 있다”며 “공공시설이라도 안전 진단을 받고 공사에 들어가야 해 시간이 다소 걸린다”고 말했다.

[저작권 한국일보]1년 전 경북 포항지진으로 건물 일부가 파손된 대구지방검찰청 포항지청에서 복구작업이 진행되고 있다. 포항=김정혜기자 kjh@hankookilbo.com

지진 발생 1년을 맞는 포항은 지금 곳곳에서 복구와 재건이 이뤄지면서 외형적 상처들은 조금씩 아물고 있는 듯 보인다. 하지만 이런 모습은 어디까지나 학교 등 공공건물에 국한된다. 그나마 정부 예산을 받아 보수 공사에 착수할 수 있어서다.

반면 서민들의 지진 공포는 여전히 진행중이다. 개인 주택들은 지진의 피해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막대한 비용에 엄두조차 내지 못하는 것이다.

실제 포항에서 인구가 가장 많고 진앙과 인접해 피해가 컸던 북구 장량동 일대는 필로티로 된 원룸이 800여동에 달하지만 지진으로 기둥 등이 파손된 건물 대부분이 임시방편으로 철근 기둥만 끼워둔 채로 버티고 있다.

이날 찾아간 북구 장량동 C원룸도 1년 전 지진으로 부서진 모습 그대로 두꺼운 철재펜스로 둘러싸인 채 서 있었다. 펜스와 펜스 사이 10㎝가량 벌어진 틈에는 각종 체납 고지서가 가득 꽂혀 있었다. C원룸은 지난해 11월 15일 포항지진으로 1층 주차장 필로티의 기둥이 부서지고 기둥 안을 지지하던 철근까지 뒤틀려 휘어진 채로 위태롭게 서 있었던 건물이다. 지진이 나고 집주인과 세입자만 임대주택으로 떠난 채 철근 몇 개만 임시 보강으로 세워지고는 1년이 지난 지금까지 아무런 대책 없이 방치돼 있었다.

C원룸 인근의 한 주민은 “집주인이 몇 번이나 고쳐 보려고 애썼지만 많은 비용이 들고 대출 마저 쉽지 않아 포기한 것으로 알고 있다”며 “포항지진 뉴스만 나오면 저 건물이 계속 나오니 행정기관에서 펜스로 막아 놓기는 했지만 바람만 강하게 불어도 건물이 무너지지 않을까 늘 겁이 난다”고 말했다.

지진 후 철거 대상이 된 공동주택 가운데 재건축을 추진하는 곳은 전체 7곳, 총 572가구 가운데북구 환여동 대동빌라 단 한 곳 81가구뿐이다. 수천 만원에서 1억 원이 넘는 재건축 개인 분담금이 주민들의 발목을 잡고 있다. 사업성이 떨어진다는 이유로 포항 공동주택 재건축에 뛰어드는 사업자도 거의 없다.

지진으로 집을 잃은 이재민 대부분은 아직도 기약 없이 임시 거처에서 생활하고 있다. 포항시 주거 지원 대상은 붕괴 위험이 우려되는 주택 671가구, 절반 정도 파손된 주택 285가구 등 956가구다. 이 중 793가구의 1,990명이 임대주택 등의 주거 지원을 받아 거처를 마련했다. 임대주택ㆍ임시 이주 단지에 입주하거나 1억원 이하 전세 보증금을 지원받았다. 흥해초등학교 옆에 컨테이너로 만든 임시 이주 단지 ‘희망보금자리’에는 30가구가 입주해 있다. 대부분 1인 가구로, 가구당 29.7㎡(9평)를 쓴다. 흥해체육관 대피소에 마련된 텐트에서는 아직도 30여 명이 머물고 있다.

경주와 포항의 잇따른 지진으로 ‘한반도=지진 안전지대’라는 공식이 무너지면서 정부와 행정안전부 등이 일상화한 지진에 대비하기 위한 대책을 내놓았지만 두드러진 성과를 내놓지 못하고 있다.

정부는 지난 9월부터 3층 이상의 필로티 건물을 지을 때 건축구조기술사의 확인을 받도록 의무화했지만 기존 건물에 대한 보강 등의 구체적인 대비책은 내놓지 않고 있다.

포항지진으로 붕괴 위험 판정을 받은 공동주택 가운데 유일하게 재건축을 진행하는 포항 북구 환여동 대동빌라가 철거되고 있다. 대동빌라 재건축 추진위원회 제공.

정부가 지난 5월 관계기관 합동으로 ‘포항지진 시 나타난 문제점, 반복하지 않겠습니다’며 지진방재 개선책을 내놨지만 이 역시 실정에 못 미친다.

정부가 지진 발생 시 경보 문자 발송 시간을 올해 말까지 관측 후 7~15초로 앞당기기로 했다. 하지만 재난문자로 알리는 지진의 기준은 규모 3.0 이상으로, 현실성이 떨어진다는 지적이다.

주부 권모(38ㆍ포항 북구 장량동)씨는 “요즘은 규모 2.0 이상의 지진도 느껴질 정도로 예민해졌는데도 정부의 재난 문자는 울리지 않는다”며 “집이 흔들린다는 느낌이 들면 곧바로 인터넷 맘카페에 접속해하거나 진앙 위치까지 메시지로 알려주는 네이버의 어플리케이션을 항상 알림으로 설정해 둔다”고 했다.

권씨는 “미처 느끼지 못한 작은 지진도 미리 알게 되면 큰 지진에 대비할 수 있는데 정부의 지진 알림 문자 통보 기준은 규모 3.0이상이다”며 “민간 업체도 무료로 제공하는 서비스를 왜 정부는 하지 않는지 답답할 따름이다“고 말했다.

포항지진대피소/2018-11-12(한국일보)

정부는 또 지진방재훈련에 내실화를 다져 일률적인 훈련을 없애고 지진특성과 각 지역에 맞는 시나리오를 제공하겠다 했지만 올 5월과 9월 단 두 차례 실시된 전국 지진대피 훈련은 이전과 다른 점을 찾아볼 수 없었다.

건축물의 내진 확보 비율도 여전히 낮은 실정이다. 경북은 지난 2년간 경주와 포항에서 규모 5.0의 지진이 세 차례나 일어났지만 내진 대상 건축물의 내진확보비율이 전국 평균에도 미치지 못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국회 국토교통위원회 소속 더불어민주당 임종성(경기광주을) 의원이 지난달 16일 국토교통부로부터 제출 받은 자료에 따르면 경북의 건축물 중 내진설계 대상 건축물 총 62만1273동 가운데 내진설계가 제대로 확보된 건축물은 4만1955동(6.8%)에 불과했다.

오금호 국립재난안전연구원 지진대책실장은 “일본 등 지진이 많이 일어나는 해외 사례를 보면 지진이 일어났을 때 건물 안에서 책장, 피아노 등 가구에 깔리거나 다치는 경우가 굉장히 많다”며 “내진설계 등 건물의 방재대책과 함께 건물 내부의 가구, 장식물, 집기 등이 잘 부착돼 있는지 가정에서도 늘 살펴보고 대비해야 한다”고 말했다.

포항=김정혜기자 kjh@hankookil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