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샌프란시스코 강화조약에 독도가 빠진 이유는독도 바르게 알기 - 샌프란시스코 조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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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5.03.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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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샌프란시스코 강화조약’은 우리에게 독도와 관련해 가장 가슴 아픈 사건으로 손꼽힌다. 이 조약에서 “독도는 한국 땅”이라고 명시되었더라면 지금의 독도 문제는 일어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일본은 조약에서 일본이 포기해야 할 영토 중에 독도가 명시되지 않았다는 점을 들어 독도가 일본의 영토라고 주장하고 있다.

샌프란스시코 강화조약이란?
 
1951년 9월 8일, 연합국과 일본이 미국 샌프란시스코에서 제2차 세계대전 전후 처리를 위해 체약한 조약이다. 이 조약에는 미국, 소련, 영국을 비롯해 48개국이 참가하고 서명했으며, 1952년 4월 28일에 공표됐다. 이후 지금까지 효력을 발휘하고 있다.
 
샌프란시스코 강화조약에는 태생적인 한계가 있었다. 신민지국이었던 대한민국이 조약 참가국에서 제외되었다. 당시 한국은 강화조약의 일원으로 참가하고자 했지만 과도한 배상을 우려해 한국을 배제했다. 나름의 논리도 있었다. 그들은 (항일투쟁을 전개한) 대한민국 임시정부가 국제적으로 승인을 받지 못한 단체였고, 대한민국 정부는 1948년에 출범했기 때문에 한국에 교전국의 지위를 부여할 수 없다고 했다. 현실적으로도 한국은 전쟁 중이어서 참가가 힘들었다. 한국이 참가했더라면 지금 우리가 겪고 있는 독도 문제는 일어나지도 않았을 것이다.
 
각각 다른 해석: 일본 “샌프란시스코 조약에 따르면 독도는 일본 땅” VS 한국 “명백하게 밝히지 않았을 뿐, 일본 땅이라는 증거는 아니다”
 
일본이 독도를 자국의 땅이라고 주장하는 가장 강력한 근거는 초안 작성에 영향을 미친 두 미국인의 ‘의견’이다. 미국 정부의 일본 정치고문관인 윌리엄 제이 시볼트(William J. Sebald)와 극동 담당 국무차관보 러스크(D. Rusk)가 그 주인공이다. 시볼트는 두 번에 걸쳐 “독도는 한국 땅이라는 근거가 없다”는 요지의 편지를 미 국무성에 보냈고, 국무성은 이를 적극 반영해 초안에 “독도는 일본 땅”이라고 명기했다. 러스크(D. Rusk)는 1951년 8월 양유찬 주미 대사에게 독도가 한국의 영토라는 사실을 부인하는 편지를 보냈다고 한다.
 
이와 함께 <샌프란시스코 강화조약>에서 ‘한국의 독립을 인정하고 한국에 대한 일본의 모든 권리를 포기한다’는 내용이 담긴 조약 2장 2조 a항에 포기해야 할 영토에 독도가 명시되어 있지 않다.
 
『일본은 한국의 독립을 인정하고, 제주도, 거문도 및 울릉도를 비롯한 한국에 대한 모든 권리와, 소유권 및 청구권을 포기한다.』 - <샌프란시스코 강화조약> 제2조 a항
 
그러나 조약에 독도가 처음부터 빠졌던 것은 아니다. 미국 측 제1~5차 초안과 제7차, 영국 측 제2, 제3차 초안에서는 독도를 한국 영토로 명시했다.
 
일본은 샌프란시스코 평화조약에 일본이 포기해야 할 영토 중에 독도가 빠진 것이 독도가 일본 땅으로 남은 증거라고 내세우고 있다.
 
한국은 일본의 주장에 대해 독도가 명시되지 않았다고 해서 그것이 곧 일본 땅이라는 증거는 아니라는 논리를 펼치고 있다. 제주도, 거문도, 울릉도 외에도 수많은 섬들이 있기 때문에 굳이 언급하지 않았을 뿐이라는 것이다.
 
미국을 비롯한 강대국들이 모호한 결론을 내린 이유
 
당시 미국은 러시아로 대표되는 공산권과의 대결에 돌입한 상황이었다. 판을 새로 짜야 하는 정세가 되면서 ‘일본’은 단순한 패전국이 아니라 러시아를 막는데 반드시 필요한 협조자가 되었다. 일본의 사정에 귀를 기울일 수밖에 없었다. 당시 일본의 총리 겸 외상이었던 요시다 시게루는 이런 상황을 적극적으로 활용했다. 그는 1951년 중소동맹이 성립돼 일본이 이들의 가상 적국이 되자 미국과 강화조약을 맺고자 했다. 미국은 중국과 소련이 손을 잡은 상황에 위협을 느끼고 있던 차에 일본의 제의가 솔깃하게 다가올 수밖에 없었다. 그들은 일본을 병참기지화 하고 일본의 경제를 복구시켜 공산 세력의 팽창을 막고자 했다. 이런 제반의 상황은 샌프란시스코 조약과 관련해 일본의 상황을 유리하게 만들었다.
 
비록 조약 체결 과정에 직접 개입할 수는 없었지만 이승만 정부는 손 놓고 있지 않았다. 조약의 초안 수정 과정에서 독도가 빠졌다는 소식을 접하고 미국에 항의 문서를 보내는 등의 노력을 했다. 그러나 ‘자유 진영의 최전선’으로 자리 잡았던 일본의 로비를 막기에는 역부족이었다. *
 
Tip> 샌프란시스코 강화조약 이전 “독도는 한국 땅”
 
▶ 1945년 연합국 최고사령부가 발표한 ‘연합국최고사령관 각서’인 제3항에는 일본의 영토에서 울릉도, 독도, 제주도를 제외시킨다고 썼다. 이듬해인 1946년 6월 22일 공표한 에서도 일본 어부들이 독도와 주변 12해리에 들어오는 것을 엄금했다.
 
▶ 1950년 6.25 전쟁이 발발하자 유엔군과 미국 태평양 공군 사령관은 ‘한국방공식별구역(KADIZ: Korea Air Defense Identification Zone)’을 설정했는데, 이 범위 안에 독도가 포함되어 있다. 해당 라인은 지금도 국제사회에서 인정되고 있다.
 
▶ 1950년 연합국들이 <샌프란시스코 강화조약>에 앞서 ‘연합국의 구일본 영토 처리에 관한 합의서’를 작성했다. 여기에는 제주도, 거문도, 울릉도와 함께 독도를 ‘리앙쿠르 록’이라는 서양 호칭으로 명시해 한국 영토로 반환 처리한다고 밝혔다. 연합국이 독도를 한국 영토로 판정한 사례다.
 
□ 참고 : 이정태, <독도학>, 경북대학교출판부, 2014.

[국제사법재판소(ICJ) 판례1]

증거를 체계적으로 정리해야 - 영국 VS 프랑스, 망키에-에크레오 분쟁

망키에와 에크레오 섬은 영국령 채널 제도와 프랑스 해안 사이에 자리 잡고 있었다. 양국은 분쟁이 일어나자 1951년 12월 5일 ICJ에 의뢰했고, 결국 영국이 승소했다.
 
재판 과정에서 양쪽 모두 같은 카드를 끄집어냈다. 원초적인 권원(ancient or original title)과 실효적 점령에 의한 권원을 근거로 영유권을 주장했다. 두 국가 모두 동일한 범주의 증거를 제시했기 때문에 ‘어느 것이 더 확실한 증거인지’를 판별해야 했다.
 
그러나 문패는 같았지만 내용이 달랐다. 영국은 프랑스보다 더 체계적으로 공식 문서를 정리해 영유권을 입증했다. 사소한 것부터 공식적 문서와 사례까지 세세하게 정리해서 제출했다. 이를 통해 영국이 실효적ㆍ실질적 관리를 하고 있다는 것을 여실하게 증명했다. 대표적인 사례를 꼽자면 1826년 에크레오에서 일어난 범죄를 영국에서 재판한 것과 세금 징수 기록 등이었다. 이 모든 사례들이 유리하게 작용했다. 또한 재판소는 영국 중앙정부뿐 아니라 지방정부에서 행한 행위 역시 국제법적으로 인정했다.
 
우리는 두 가지 교훈을 얻을 수 있다. 하나는 독도와 관련해 다양한 입법ㆍ사법ㆍ행정적 자료를 축적해야 한다는 것이고, 더불어 중앙정부 못지않게 경상북도와 울릉군 등에서 펼치는 독도 관련 정책도 중요한 ‘근거’라는 사실을 인지해야 한다는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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