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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네카페] (10) 살인자의 기억법“너의 기억을 믿지 마라 믿을 것은 너의 기억뿐이다”
김윤곤기자  seoum@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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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7.1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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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감히 말하건대, 만약 이 소설이 잘 읽힌다면, 그 순간 당신은 이 소설을 잘못 읽고 있는 것이다.”
2006년 여름 장편 ‘빛의 제국’을 탈고한 소설가 김영하는 소설 말미에 붙이지 못한 작가 후기를 ‘작가세계’ 가을호에 실었다. 서두의 인용문은 그 후기의 끝 문장이다.
2013년 7월 출간한 김영하의 장편 ‘살인자의 기억법’ 말미에 해설을 쓴 문화평론가 권희철은 똑같은 위의 구절로 첫 문장을 시작했다. 한 번은 작가의 끝 문장으로 한 번은 평론가의 첫 문장으로, 같은 문장이 한 작가의 두 작품을 설명하기 위해 거듭 쓰였다. ‘재탕’은 의미심장하다.
권희철은 이렇게 덧붙였다. “(김영하가 이렇게 쓴 것은 그의 네 번째 장편소설 ‘빛의 제국’이 출간된 직후였지만) 이 문장은 ‘살인자의 기억법’을 위해서 좀 더 아껴뒀어도 좋았겠다.” 김영하 특유의 짧은 문장과 속도감 있는 남성적 문체, 문체의 건조함에 안개비처럼 뿌려지는 아포리즘의 사유들은 이 작품에서도 잘 드러났다.

김영하의 동명 소설을 원작으로 만든 영화 역시 다르지 않다. 관객들은 1인칭 시점의 주인공 김병수(설경구)의 내레이션을 들으며 ‘쉬운 오독’의 함정을 향해 속도를 낸다. 길은 1차로, 다른 길은 없었다. 그럼에도 ‘감쪽같이’ 함정에 빠진 관객들은 막판에서야 알아차렸지만 대략 난감이다. 책이라면 금방 앞쪽을 다시 펴볼 수 있겠지만 극장에서 영화를 되돌려볼 수는 없다. 더욱이 지나간 숏들을 빠짐없이 되감아 반대의 시선과 맥락으로 다시보기를 해낼 기억능력은 더욱 없다.
연쇄살인범 김병수와 경찰(또 다른 연쇄살인범인지도 모르는) 민태주(김남길)의 엇갈리는 기억과 진술이, 또 이를 지켜본 관객들의 기억과 반(反)기억이 뒤섞이며 혼란은 서로를 지운다. 막판의 반전은 서로를 연쇄살인범이라고 겨냥하며 쫓고 쫓기는 김병수-민태주는 물론 연쇄살인범을 쫓는 영화 밖 관객들까지 혼란 속으로 몰아넣는다. 영화는 반전의 혼란을 수습할 생각이 없다. 타임라인에만 쫓길 뿐. 영화는 엔딩 크레디트를 올리며 저만 홀로 유유히 혼란에서 빠져나간다.
영화가 먼저 빠져나간 컴컴한 극장 안에서 관객들은 어둠처럼 덮쳐오는 판단의 섬망, 사유의 치매를 일순간 경험했을 것이다. 대체 누가 누구인지, 누가 맞고 틀리는지, 누가 살인범이고 누가 경찰인지조차 불분명한, 누구의 말도 믿을 수 없고 그렇다고 믿지 않을 수도 없는 심리적 유폐야말로 치매상태가 아닌가.

주인공 김병수는 치매를 앓고 있는 70세의 수의사다. 그는 열여섯 살 때부터 ‘주업’이자 ‘취미’로 살인을 일삼은 연쇄살인범이었다. 17년 전(원작에서는 25년 전) 차가 전복되는 교통사고를 내 머리를 크게 다쳤다. 지금은 그와 함께 살고 있는 수양딸 김은희의 친부모를 살해하고 돌아오던 중이었다. 결국 두 번의 뇌수술을 받는 과정에서 ‘살인 충동 유전자’가 감퇴하는 후유증(치매)으로 ‘30년 경력’ 연쇄살인에서 그는 은퇴한다.
그가 열여섯 어린 나이에 연쇄살인이라는 끔찍한 범죄에 빠져든 데에는 비극적인 가정사가 얽혀 있다. 아버지는 무지막지한 가정폭력을 휘둘렀다. 그의 가정은 진작 무너졌고 그의 인간적 자존심도 짓밟혔다. “오늘 제대로 맛을 한 번 보자”며 아버지가 다시 폭력을 시작하던 그 날, 그는 어머니, 누나와 함께 가정 파괴범이자 온 가족의 인격 살해범인 아버지를 베개로 눌러 질식사시킨다.
‘혼돈을 오랫동안 들여다보고 있으면 혼돈이 당신을 쳐다본다’ - 니체<원작 58쪽>
아버지를 영구 추방함으로써 가정의 평화를 지켰지만, 지옥에서 오래 살았던 그는 결국 스스로 지옥이 됐다. “세상에는 꼭 필요한 살인이 존재한다는 것을 그때 알았다.” “(이것은) 살인이 아니다. 청소라고 하자. 세상에는 죽어 마땅한 쓰레기 같은 인간들이 넘쳐나고 나는 그들을 청소하기 시작했다.” 그날부터 연쇄살인범이 되기로 한 살부범은 은퇴할 때까지 숱한 완전범죄 살인을 저질렀다.
은퇴 후 불규칙한 치매 발작에 시달리고 있는 그의 앞에 또 다른 연쇄살인범(민태주)이 나타나면서 상황은 급변한다. 그의 딸 은희를 노리고 민태주가 접근하자 그는 딸을 지키기 위해 마지막 살인에 나서면서 충격적인 반전이 벌어진다.

주인공 연쇄살인범 역을 맡은 설경구의 얼굴 경련 연기는 불수의근을 수의근처럼 움직이는 신공을

   
 


보여줬다. 두 연쇄살인범은 첫눈에 서로를 알아봤다. 지워져가는 기억을 부여잡으며 딸을 지키기 위해 민태주를 죽여야 하는 늙은 연쇄살인범의 마지막 안간힘. 원신연 감독의 말대로 설경구는 연기의 교과서 같은 연기를 선보이며 일단 재기에 성공한 것으로 보인다.
치매는 기억의 자살이자 인간 자체의 박탈이다. 그 불완전한 기억이라는 토대 위 구축한 가건물이 인간이다. 늙은 치매 연쇄살인자의 기억법은 ‘너의 기억을 믿지 말라’는 것이었다. 동시에 ‘믿을 거라고는 너의 기억뿐’이라는 것이었다. 연쇄살인과 치매는 총구를 내부로 돌린 기억의 역습이다. 타인에 대해, 그리고 나 자신에 대해. 그 쓸쓸함을 견디다 못한 이무기가 치매와 연쇄살인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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