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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잊을 수 없는 여행] 포항 해맞이빵 박정한 대표

포항 대동배로 자살여행 갔다 아름다운 풍광에 희망 얻어

  • 입력 2017.10.05 00:00
  • 수정 2022.02.23 10:10
  • 기자명 김정혜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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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북 포항에서 빵가게를 운영하는 박정한(43•해맞이빵) 대표는 10년 전 한꺼번에 밀어닥친 힘든 일들에 해선 안 될 결심을 했다. 지난 2007년 3월 잘 나가던 유통업체를 접고 인수한 빵 가게에는 이전 주인의 말과 정반대로 파리만 날아 다녔다. 평생 술을 끼고 산 아버지는 환갑을 앞두고 치매 판정을 받았다. 부모님의 안정된 노후 생활을 위해 건축한 다가구주택 공사는 주변 민원으로 말썽이었다.
매일 술에 의지한 그는 아내와의 사이도 나빠졌다. 만 2살 된 큰 딸과 60일 된 둘째 딸 육아로 힘든 아내는 몇 달 간 생활비도 없이 술에 취해 귀가하는 남편 앞에 입을 닫아 버렸다.
설상가상으로 박씨의 왼손에 마비가 왔다. 군 제대 후 제빵 기술을 배울 때 크게 다친 손이 뒤늦게 탈이 난 것이었다. 견딜 수 없는 통증에도 형편이 어려워 병원에 가지 않은 게 화근이었다. 의사는 그에게 “수술해도 장시간 손을 쓸 수 없어 영영 빵을 못 만들 수 있다”고 말했다.
박 대표는 가족들이 잠든 사이 본인 이름으로 들어놓은 보험서류를 뒤졌다. 약관을 몇 번이고 읽어 본 그는 혼자만의 여행을 계획했다. 인생에 마지막이 될 여행이었지만 일부러 유서를 쓰지 않았다. ‘자살’인 게 드러나면 보험금을 못 받기 때문이었다. 여행 날짜는 일부러 보상금을 더 받을 수 있는 주말을 택했다.

2007년 10월의 어느 날, 낡은 가방에 낚싯대와 소주 3병을 넣고 차를 몰았다. 1시간쯤 운전해 도착한 곳은 포항 남구 호미곶면 대동배리 방파제였다. 그는 바위 위에서 낚싯대를 드리운 뒤 연거푸 술을 마셨다. 그리고 취기를 빌려 오랜 결심을 실행으로 옮기려는 그때였다. 붉은 석양 아래 황금빛으로 반짝이는 영일만 바다가 박 대표의 눈앞에 펼쳐졌다.
“눈부신 풍광에 왈칵 눈물이 쏟아졌어요. 예전에도 머리가 복잡할 때 종종 갔었지만 그 아름다운 광경이 눈에 들어오지 않았는데 마음을 비우니 보이는 겁니다. 그동안 힘든 일만 계속 생각하고 정작 사랑하는 아내, 아이들, 부모님, 그리고 아직 젊고 건강한 내 몸, 앞으로 한참 남은 내 인생의 시간들을 못 보고 있었던 것이죠. ‘내가 지금 뭘 하고 있나’하는 생각이 번뜩 들었어요.”
그 자리서 한 시간을 펑펑 울었다. 그는 들고 왔던 가방 속에 잘못된 결심을 담고 발걸음을 돌렸다. 집에 도착해 큰 일식당을 하는 지인에게 전화를 걸어 “일을 시켜 달라”고 부탁했다. 박 대표는 빵집을 아내에게 맡기고 일식당 주방 보조로 새 출발을 했다.
종업원 생활 1년이 지나자 도무지 풀리지 않을 것 같은 일들이 하나씩 해결됐다. 치매에 걸린 아버지는 조기 발견한 덕에 차츰 호전됐고 중단된 다가구주택 공사 민원도 시간이 지나 자연스럽게 잠잠해졌다. 먼지만 날리던 빵집에는 고정 판로가 생겼다. 박 대표는 일식당 주방 보조 일을 접고 다시 가게로 돌아왔다.
마지막이 될 여행에서 새로운 시작을 결심한 그는 이후 주변을 많이 돌보게 됐다. 괴로워하는 지인들에게 자신의 호미곶 대동배 여행 이야기를 들려준다. 또 자신에게 힘든 일이 생기면 걱정하기보다 받아들이려고 애쓴다. 그는 왼손 수술을 받은 이후 제빵 작업을 오래 할 순 없게 됐지만 낙담하지 않았다.

박 대표는 힘든 일을 겪는 주변 사람들에게 “잠시 마음을 비워보라”고 말한다.
“사실 요즘이 그때보다 더 힘듭니다. 답답할 때마다 호미곶 대동배 방파제를 찾습니다. 아름다운 영일만 바다를 바라보며 사랑하는 가족, 주변 사람들과 행복했던 순간들을 생각합니다. 힘들고 괴로운 상황에 놓인 지인을 보면 이렇게 말합니다. ‘죽고 싶을 만큼 괴롭다면 마음을 비우고 다시 한 번 자신과 주변을 돌아보라’고요. 도저히 보이지 않을 것 같은 앞길에 분명 행복과 희망이 보일 겁니다. 꼭 한 번 해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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