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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잊을 수 없는 여행] 김종호 신우P&C대표암에 걸린 아내와 20년 만에 떠난 여행
김광원기자  jang750107@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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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7.1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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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들이 올해 스물아홉인데, 초등학교 2학년 때 하회마을에 다녀온 후 4년 전까지 가족 여행을 한 번도 하지 않았습니다.”

김종호(56) 신우P&C대표는 올해 여름 가족과 전남 여수를 다녀왔다. 2013년에 가족여행을 다녀온 후로 두 번째 가족여행이었다. 4년 전과 비교하면 한 명이 늘었다. 예비 며느리까지 가세했기 때문이다. 공장 형편을 놓고 보면 여행은 언강생심이었다. 공장 증축을 앞두고 있는 데다 11월에 생리대 출시를 목표로 식약처 등록 과정을 밟고 있었다. 하지만 아내와 했던 약속을 지키기 위해 과감하게 길을 나서기로 했다.
“매년 가족 여행을 하기로 한 약속을 해놓고도 3년이나 빼먹었습니다. 아무리 바빠도 다녀와야겠단 생각이 들었죠.”
2012년 즈음, 아내가 갑상선암에 걸렸다. 자꾸 피곤하다고 해서 검진을 해보라고 했더니 갑상선 암이었다. 워낙 건강했던 까닭에 병원 진단을 믿을 수 없어 3군데서 재검진을 받았다. 결과는 같았다.

“암이란 말을 듣는 순간 바윗덩이 하나가 가슴에 턱 얹히는 느낌이더군요. 지금까지 앞만 보고 아등바등 살아온 것이 다 바보처럼 느껴졌습니다.”
어찌 보면 평범하게 살아왔다. 서른일곱에 IMF 때문에 명예퇴직을 하고 작은 통신회사에 잠시 다니다가 2002년에 사업을 시작했다. 첫 사무실은 컨테이너 박스였다. 겨울엔 실내 기온이 너무 내려가 아침에 난로를 피우지 않으면 컴퓨터 전원이 들어오지 않았다. 그 좁은 곳에서 직원 4명과 담배를 피우며 회의를 했다.
가장 힘들었던 건 문과(역사학) 출신이라는 점이었다. 이공계 용어부터 생소해서 책을 뒤지고 인터넷을 검색해서 용어의 정확한 뜻을 파악하고 입에 붙을 때까지 수없이 연습했다. 프리젠테이션 한번 하는데도 이과 출신보다 몇 배 더 공을 들여야 했다. 그렇게 피땀으로 차곡차곡이력을 쌓아 2008년에 ‘실라리안’에 이름을 올리고 성인 위생용품 분야에서 강소기업으로 우뚝 올라섰다.
“그 모든 성과가 ‘암’이란 한 마디에 와르르 무너지는 느낌이었습니다. 후회 없는 삶을 살려고 애를 썼는데, 그러느라 가족에게 후회할 일이 많아졌더군요. 무엇보다 함께 고생한 아내에게 해준 게 없다는 생각이 가슴을 때렸습니다.”

아내에게 “하고 싶은 것 없느냐”고 물었다. 그때 아내의 입에서 나온 말이 “여행”이었다.
“가만히 생각해보니까 한 번도 단 둘이 여행을 다녀온 적이 없었습니다. 당장 비행기 표를 끊었죠. 호주행 티켓이었습니다.”
호주로 떠나기 전 2박3일 일정으로 백두산 여행도 다녀왔다. 그렇게 두 번의 여행 끝에 수술을 했다. 수술은 성공적이었다. 수술을 끝내고 나자 아들이 불평을 보탰다. “가족과 함께한 추억이 없다”고 했다. 2013년 겨울, 네 가족이 일본 오키나와를 다녀왔다. 여행 중에 가족과 약속했다. “앞으로 1년에 한번은 꼭 가족 여행을 다니자”는 것이었다.
그렇게 굳게 결심을 했지만, 오키나와 여행 이후 만 3년을 쉬었다. 회사일이 바빠진 탓도 있었다. 직원이 50명을 훌쩍 넘어섰고 신제품 개발을 하느라 야근을 밥 먹듯이 하는 일상에서 여행은 다시 사치가 되었다. 그 사이 변화가 있었다면 서울에서 공부하던 아들이 아버지를 돕겠다고 말단 사원으로 취직한 거였다. 이번 여행도 첫 가족여행처럼 ‘신입사원’인 아들이 졸랐다.
“예비 며느리가 장래 시댁 가족과 간절하게 여행을 하고 싶어 한다고 압박을 하더군요. 아들 덕에 다시 약속을 지켜나가게 됐습니다.”

   
남해 다랭이 마을


여수 여행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 곳은 작은 분식점이었다. 인테리어를 새로 한 말끔한 가게였다. 가게 주인에 따르면 인테리어를 바꾸기 전에는 벽에 손님들이 남긴 포스트잇이 그득했는데 실내 공사를 하면서 모두 없앴다. 그 뒤로 손님들의 항의가 심심찮게 들어온다고 했다. 김 대표 가족이 방문한 그날 아침에도 어느 노신사가 “지난번에 남겨놓은 메모를 보려고 굳이 이 식당을 찾아 왔는데, 그걸 없애면 어떡하느냐”고 항의했다고 했다. 주인은 “죄송합니다” 하고 고개만 주억이는 수밖에 없었다. 김 대표는 “낙서를 할 수 있도록 벽면에 칠판을 만들어주라”는 조언을 해줬다.

“포스트잇 하나 없는 그 식당 풍경이 옛날 우리 가족 같단 생각이 들더군요. 가족이든 친구든 함께한 추억이 없으면 포스트잇이 모두 사라진 식당처럼 허허롭겠죠. 낙서분식점 주인과 대화를 하면서 가족여행을 빼먹지 말아야겠단 결심을 다시 한 번 하게 됐습니다. 가족들 마음의 벽에 가족여행 포스트잇을 일 년에 한 장씩 꼭 붙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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