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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대구 중구청의 마이웨이

  • 입력 2017.09.04 00:00
  • 기자명 윤희정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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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일 오후2시 대구 중구 방천시장 옆 ‘김광석 다시그리기 길’. 평소 관광객들의 웃음과 카메라 셔터 소리가 끊이지 않던 350m 길이의 이 골목길 입구에는 이 거리를 만든 작가 20여 명이 비장한 표정으로 기자들과 마주 섰다.

한상훈 한국민족예술단체총연합 대구지부 사무처장의 경과보고와 김광석거리를 총괄기획했던 이창원 인디053 대표의 성명서 낭독으로 이어지던 기자회견은 손영복 조각가의 퍼포먼스에서 정점을 찍었다. 기타치는 김광석의 동상을 만든 손 작가는 “동상을 다른 곳으로 옮기고 싶은 마음뿐”이라며 호일과 테이프로 칭칭 감아 포장이사하는 촌극을 펼쳤다.

이들의 주장은 단순했다. 예술가들이 아이디어를 내고 중구청이 후원해 만든 김광석거리를 단순 재개발현장으로 평가절하한 관광인프라 개선사업을 철회하라는 것이었다.

중구청의 사업공고에 따르면 사업 결과물 일체는 중구청 소유가 되며 2년이 지나 벽화와 조형물이 퇴색하면 자체 판단으로 철거할 수 있다는 것. 중구청은 이 연장선에서 연말까지 김광석거리의 벽화 40여 점 중 30점 안팎을 철거키로 했다.

중구청은 행정절차에 충실했으나 김광석거리 탄생의 일등공신인 작가들의 자율성과 창작정신에는 애써 고개를 돌리고 있다. “김광석거리가 중구청 소유”라고 주장하는 것은 재개발현장에서나 통한다.

중구청의 상황 인식은 이미 순종어가길 복원사업으로 도마 위에 올라있다. 경술국치일인 지난달 29일 중구 달성공원 앞에서 열린 순종 동상 철거 운동이 단적인 예다. 반일 감정을 누그러뜨리기 위한 순종의 지방 순행을 미화하고 군복 대신 대례복으로 동상을 바꿔치기 하는 등 역사 고증도 엉터리라는 비판이 들끓고 있다. “치욕적인 역사가 되풀이되지 않기를 바라는 다크 투어리즘(Dark Tourism)의 현장”이라는 중구청의 변명에는 헛웃음만 나온다.

대구의 역사문화 1번지인 중구청이 마이웨이를 쉽게 포기할 것 같지는 않다. 하지만 눈높이가 이렇게 달라서야 소신행정은커녕 행정독단주의에 빠졌다는 비아냥을 피할 길이 없다.

윤희정기자 yooni@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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