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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이제는 선배들이 심사를 받을 차례

  • 입력 2017.08.10 00:00
  • 기자명 대구한국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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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회 DIMF 뮤지컬 스타’ 본선에서 심사를 맡았다. 400여명이 참가한 예선에서 9:1의 경쟁률을 뚫고 본선에 진출한 39팀이 치열한 경쟁을 펼쳤다. 학생들의 열정 때문인지 무대의 열기는 대형 갈라콘서트를 방불케 했다. 심사석에 앉아서 어느새 관객 모드로 집중하고 있었다.

물론 기술적인 면에서는 아직 미흡한 부분이 많았지만 그들이 무대를 대하는 태도만큼은 프로배우들 못지않았다.

나는 2005년 대학 졸업 후 일본에 건너가 뮤지컬이라는 장르에 처음 발을 들이던 시절을 떠올렸다. 무대 위가 너무 신나 보여서 오디션 합격 후 오래 고민하지도 않고 결정한 일본행이었다. 첫 레슨 시간부터 배우들이 무대에서 자유롭게 노래하고 걷고 춤추려면 얼마만한 땀과 눈물이 필요한지 실감했다.

매일 90분의 아침 발레수업을 받은 뒤 잠시 쉬고 바로 90분의 재즈댄스 수업에 들어갔다. 춤을 춰 본 적도, 배운 적도 없던 내게 그 세 시간은 300시간처럼 길게 느껴졌다. 그 당시 내가 얼마나 긴장을 했었는지 매일 발레레슨이 시작되고 20분이 지나면 어김없이 배가 아팠다. 정신적인 문제였다. 다른 배우들이 보기에는 춤추는 게 힘들어 쉬러 나간다고 오해할 수도 있지만 난 정말 매일 배가 아팠다. 춤 춰 본적이 없어 너무 스트레스를 받는 것을 아셨던 발레 선생님은 수업 중 내가 손만 들면 “에스더 배?” 하면서 웃으셨다. 내가 나갔다 돌아오면 매일같이 “이제 좀 괜찮아?” 하고 따뜻하게 물어 내 마음을 편하게 해주셨다. 나중에 들은 이야기로 그때 선생님은 춤에 자신감이 없어 부끄러워하면서도 늘 선생님 가까이 와서 배우려고 애쓰던 23살의 한국에서 온 신입배우가 너무 귀엽다고 말했다고 한다.

그때 나는 대학도 졸업하고 뮤지컬을 시작했다. 뮤지컬 스타 참가자들은 고등학생들이었다. 어린 나이에 걸맞지 않는 뛰어난 재능과 능력을 보여주어서 너무 놀라웠다. 우리나라 뮤지컬과 뮤지컬 교육이 십수 년 만에 얼마나 큰 발전을 이루었는지 눈과 귀로 확인하는 시간이었다.

놀라움과 함께 안타까운 마음도 교차했다. 우리나라 뮤지컬 시장은 아직 규모가 작은 편이다. 프로배우들도 작품과 무대 부족으로 갈증을 느끼는 경우가 적지 않다. 재능 있는 배우들이 그저 열심히 하기만 하면 모든 것이 척척 해결되는 상황이 아닌 것이다.

이 배우들이 프로가 되었을 때는 아시아를 넘어 세계에서 활동할 수 있어야 한다. 이들을 품을 만큼 넓은 무대는 아시아와 세계밖에 없다. 나는 이것이 선배들에게 주어진 숙제라고 생각한다.

나의 심사는 끝이 났다. 이제는 그들이 선배로서의 내 모습을 심사할 것이다. 진정한 프로로 성장해가는 동안 ‘나를 심사한 그 선배는 선배로서 얼마나 열심히 하고 있나’ 예리한 눈으로 지켜볼 것이다. 갑자기 신인처럼 긴장된다. 더 열심히 뛰어야겠다. 선배로서, 그리고 내가 아닌 우리를 위해서!

홍본영 뮤지컬 배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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