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한국일보 : 아름다운 사람들의 아름다운 이야기
칼럼
[기고] 떠나면 비로소 보이는 것들
대구한국일보  hankookdk@hankookilbo.com
폰트키우기 폰트줄이기 프린트하기 메일보내기 신고하기
승인 2017.07.18  
트위터 페이스북 미투데이 요즘 네이버 구글 msn

삶은 비탈진 일상의 연속입니다. 하루하루 버티듯 살아가다보면 우리의 생각과 감각은 어느새 닳아있는 타이어처럼 무디어집니다.

그럴 땐 잠시 멈추고 마음의 바퀴를 갈아야 합니다. 여행이 가장 훌륭한 방법입니다. 여행은 바쁘게 사느라 잊고 지낸 중요한 것들을 마음에 되가져오게 합니다. 피서처럼 비교적 가벼운 여행일지라도 말입니다.

저는 고등학교를 졸업할 무렵 고향 의성을 떠났습니다. 무한한 경쟁의 대열 속에서 40년 넘는 세월을 전투를 치르듯 살았습니다. 처음에는 모든 것이 낯설고 힘들었지만 나중엔 탄력을 잃은 스프링처럼 긴장에 무감해졌습니다. 서울 생활이 뼛속까지 스미어 일상이 된 것입니다.

중책을 맡아 고향에 돌아온 얼마 동안 여행을 온 느낌이었습니다. 세월이 흐른 만큼 변한 것도 많았습니다. 잊은 줄도 모르고 까맣게 지우고 살았던 것들이 오히려 전혀 모르던 것들보다 새롭게 다가왔습니다.

고향에서 더 자주 떠올리게 된 것은 아이러니하게도 서울에서의 제 모습이었습니다. 일상에 묻혀 눈앞에 두고도 못 보던, 혹은 바로 곁에 있어도 잡을 줄 몰랐던 삶의 진실들이 가시처럼 의식을 쿡쿡 찔렀습니다. 대개 공무 때문이었지만, 명소를 찾을 때마다 그런 생각들이 강하게 찾아왔습니다.

조문국박물관에서 받은 신선한 충격은 지금도 생생합니다. 관계자로부터 박물관 개관식에서 있었던 에피소드를 들었습니다. 그날 일본의 어느 작은 도시에서 역사 동호회 소속 어르신들이 찾아왔다고 합니다. 그들은 백제왕들의 이름을 줄줄이 꿸 정도로 우리 역사에 해박할 뿐더러 조문국과 관련해서도 만만찮은 지식을 자랑했습니다. 신기하다기보다 긴장이 느껴졌습니다. 우리는 온통 서울에만 관심을 두고 사느라 지역사에 무관심합니다. 지역사와 관련해 이웃 나라 노인들보다 더 무지한 지경이 되었단 자조를 지울 수가 없습니다. 역사는 ‘나’와 ‘우리’의 뿌리를 찾는 일입니다. 특히 지역사는 지역민의 정체성을 확립하는 지름길입니다. 그 중요한 일을 얼마나 등한시 했는가 새삼 자각했습니다. 조문국 박물관에서 얻은 충격은 지금도 제 가슴 한켠에 어제 일처럼 생생하게 살아 있습니다.

‘영남 제일의 정원’이라는 별칭을 얻은 산운마을의 소우당 정원에서는 ‘번 아웃 증후군’이라는 말을 떠올렸습니다. 몸 안의 에너지가 완전히 소진되도록 스스로를 몰아붙이는 것이 일상이 되었습니다. 행복을 위해 경쟁하느라 행복을 느낄 마음조차 잃어버린 셈입니다. 우리의 생각은 눈앞에 있는 것들에 얽매이는 경향이 있어서 정작 중요한 것들, 잊지 말아야 할 사람들을 까맣게 잊고 지냅니다. 심지어는 가족까지도 말입니다. 소우당의 나무 사이로 난 길을 걷는 이라면 누구나 팍팍한 틈을 벌려서 삶을 성찰하는 시간을 가져야겠다는 결심을 하기 마련입니다. 소중한 진실들은 걸음을 멈추고 자세히 들여다봐야 비로소 보이기 때문입니다. 여행이 주는 소중한 깨달음입니다.

빙계계곡에 들를 때마다 자연의 신비를 체험하는 기분이 듭니다. 단순히 더위를 식히는 것을 넘어서 잔뜩 긴장한 순간에 던지는 농담처럼, 나뭇잎이 녹아내릴 듯한 더위에도 얼음 바람을 선사하는 자연의 신비에 경외감을 느낍니다. 자연은 인간이 개발하고 정복해야 할 대상이 아니라 존경하고 어우러져야 할 동지 같은 존재가 되었습니다. 앞선 나라들에서는 있는 그대로의 자연을 더 알아가는 동시에 친자연적인 사회로 나아가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신비한 자연산 얼음 바람 한 줄기가 우리 아이들에게 자연과 가까워지는 계기를 만들어 줄 것입니다. 도시에서는 얻을 수 없는 소중한 경험입니다. 세계가 자연을 재발견하는 시대에 아이들에게 꼭 필요한 체험이라고 생각합니다.

여행은 일상을 밀물처럼 밀어냅니다. 일상에 묻혔던 우리 삶의 진솔한 모습과 진면목이 오롯이 드러납니다. 큰 성취를 이룬 사람들이 으레 독서와 함께 여행을 강조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을 것입니다.

특히 의성에 뿌리를 두고 있는 사람들은 이번 여름 꼭 한번씩 의성을 다녀가길 권합니다. 새로운 장소를 방문하는 것도 좋지만 이미 알고 있다고 생각하는 곳을 새롭게 알아가는 것은 더욱 신선한 체험입니다.  

떠나야 비로소 보이는 것들이 있습니다. 일상에 갇힌 시선과 생각에서 탈출해 ‘나’를 발견하는 시간을 가지기 바랍니다. 의성으로 오십시오. 떠나지 않으면 아무 것도 발견할 수 없습니다.

김주수 의성군수

대구한국일보의 다른기사 보기  
폰트키우기 폰트줄이기 프린트하기 메일보내기 신고하기
트위터 페이스북 미투데이 요즘 네이버 구글 msn 뒤로가기 위로가기
이 기사에 대한 댓글 이야기 (0)
자동등록방지용 코드를 입력하세요!   
확인
- 200자까지 쓰실 수 있습니다. (현재 0 byte / 최대 400byte)
- 욕설등 인신공격성 글은 삭제 합니다. [운영원칙]
이 기사에 대한 댓글 이야기 (0)
인기기사
1
이월드 알바생 다리절단사고 원인 ‘오리무중’
신문사소개 | 구독안내 | 광고안내 | 독자정보서비스 | 기사구매문의 | 사업제휴안내 | 개인정보처리방침 /청소년보호정책 | 이용약관 | 정정보도신청 | 채용안내 | 고충처리
대구시 북구 중앙대로106길 2, 3F, 4F | ☎ : 053-755-5881 | 인터넷신문 등록번호 : 대구,아00174 | 청소년보호책임자 : 김광원
등록일자: 2015년 4월 16일 | 발행인: 유명상 | 편집인: 김광원
인터넷 대구한국일보의 모든 콘텐츠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습니다.
Copyright © 2012 대구한국일보 : 아름다운 사람들의 아름다운 이야기. All rights reserved. mail to hankookdk@hankookil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