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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물
오스카 제이 ‘Oscar J international hair & beauty’ 원장
김광원기자  jang750107@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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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7.07.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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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스카 J. 일본과 호주 등에서 인정받은 실력파 헤어 디자이너. 뷰티사업으로 중국 진출을 꿈꾸고 있다.

 

“Oh, no!” 손님이 갑자기 울음을 터뜨렸다. 헤어샵에 있던 손님들과 헤어디자이너들의 눈길이 오스카 제이 원장(본명 정성빈)에게 쏠렸다.

손님이 돌아간 후 일본에 있는 펌 전문가에게 전화를 걸었다. “백인 열 펌은 안 돼. 하지 마. 포기해.” 한국도 마찬가지였다. 한국과 일본에서 최고 전문가들이 포기하라고 조언을 했다. 불쑥, 오기가 생겼다. 오랜만에 가슴에서 불덩이 하나가 활활 타오르는 느낌이었다. 백인들을 매료시키겠다는 각오로 호주에 건너올 때 가슴을 뜨겁게 달구던 바로 그 불덩이였다. 그에 앞서 한국에서 일본으로 기술을 배우러 갈 때도 마찬가지였다. 정 원장은 한국에서 디자이너들을 가르치는 재교육강사로 활동했지만, 새로운 기술을 익히고 싶은 마음에 2006년 일본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호주에 헤어샵을 차리고 처음 받은 백인 펌 손님이었다. 동양인과 서양인의 머리 차이를 무시한 것이 화근이었다. 동양인처럼 열 펌을 했더니 머리카락이 ‘녹아내렸다.’ 그가 할 수 있는 거라곤 “원상복구해주겠다”는 약속밖에 없었다.

- “널 언제든 자를 수 있어!” 경고했던 일본인 원장

“한국인은 안 받습니다.”

목적지는 도쿄의 B헤어샵이었다. 일본에서도 몇 손가락에 꼽히는 미용실이라는 건 알았지만, 자존심이 그렇게 센 줄은 몰랐다. 테스트도 없이 한국인은 아예 안 된다고 했다. 서툰 일본어로 “절대 한국으로 돌아갈 수 없다”고 했다. 다행히 진심이 통했다. 단, 조건이 있었다. “널 언제든 자를 수 있다”는 거였다.

오전에는 학교를 나갔고, 오후에는 미용실에서 일했다. 자정 즈음 일이 끝나면 바로 아르바이트였다. 비디오 배달, 심야식당 서빙, 모텔 청소 등 심야 아르바이트를 3~4가지씩 했다. 수면 시간은 하루 3~4시간이었다. 수시로 코피가 터졌다. 체력이 약해서가 아니었다. 중학교 때부터 복싱을 배웠고 체육학과를 지망했다. 체력하나는 자신있었던 그였다.

두 달쯤 지났을 때였다. 회장이 그를 헤어디자이너로 승격시키고 싶다고 했다. 디자이너들이 반대했다. 한국인이 헤어디자이너 타이틀을 달면 자신들은 그만두겠다고 했다. 그 사건이 있은 며칠 후 손님 한 명이 나섰다.

“저 친구에게 머리를 한번 맡기고 싶습니다.”

그에게 머리를 맡기고 싶다는 거였다. 그는 미용을 시작하면서부터 가위 쥐는 법을 익히려고 눈만 뜨면 어디든 가위를 들고 다니면서 손가락에 가위를 끼우고 돌리는 연습을 했다. 가위를 여섯 번째 손가락을 만들겠다는 각오였다. 그 모습을 본 고객이 그에게 “자신 있나?”하고 물었다. 그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게 첫 고객을 받을 수 있었다.

디자이너 자리를 꿰찬 후 또 욕심을 부렸다. 다다큐빅에 마스터코스에들어갔다. 다다큐빅은 영국의 비달 사순 아트 디렉터 출신인 카타히로 우에무라가 1997년에 만든 재교육 브랜드로, 일본인들을 그를 ‘미용의 신’으로 불렀다. 꼭 들어가야만 했다. 배우고도 싶고, 또 그를 뛰어넘고도 싶었다. 그 당시 경력이 7년 이하디자이너들은 베이직 코스에 들어가야 했다. 마스터 코스에 들어가려면 테스트를 통과해야 했다. 나는 당당히 테스트를 통과했다. 몸은 더 힘들어졌지만, 마음은 날아갈 것 같았다.

일본을 떠나올 즈음 차가운 표정으로 그를 받아들였던 회장이 밥을 사주면서 “한국인 헤어디자이너를 추천받고 싶다”고 밝혔다. 한국인에 대한 편견을 깬 것이었다. 그렇게 일본에서의 경력을 완벽하게 쌓고 2008년 호주로 왔다.

브리스번 시내에 자리를 잡고 백인들을 대상으로 한 도전을 시작했다. 인근에 10년째 영업 중인 일본 미용샵이 있었다. 일본 헤어샵의 커트는 8만 원, 오스카제이원장은 10만 원을 받겠다고 선언했다. 실력으로 기존 샵을 이기고 싶었다.

두 달 동안 손님이 없었다. 40평 규모에 월세가 2,000만 원, 소속 디자이너만 8명이었다. 속이 타들어갔다. ‘오늘 한 명만 와라. 실력을 제대로 보여 주겠다’고 벼르던 시절이었다.

- 울음 터뜨린 백인 펌 손님 위해 모델 100명 모집

일본 샵과의 경쟁에서 우위를 점할 즈음 문제의 그 백인 여자 손님이 찾아왔다. 열 펌을 실패한 후, 정 원장은 한일 전문가 모두가 말린 싸움을 위해 장기전을 기획했다. 백인 모델을 모집해 마음에 들 만큼 멋있는 펌이 나올 때까지 계속 시도하기로 했다.

“공고를 냈습니다. 커트와 염색은 무료로 해주고 펌에 실패할 경우 머릿결을 원상복구 해준다는 조건을 달았습니다. 모델을 100명이나 모집했습니다.”

몇 달을 매달린 끝에 결국 성공했다. 머릿결이 가는 백인의 특성상 소위 머리카락이 벌어지는 타이밍이 달랐다. 그 타이밍을 잘 맞춰야 동양인처럼 보기 좋은 긴 웨이브를 만들어낼 수 있었다. 기술을 터득한 후 펌 실패로 울음을 터뜨렸던 백인 여성을 다시 샵으로 불렀다. 펌이 끝나자 그 여성은 두 눈을 동그랗게 뜨고 더없이 행복한 표정으로 말했다.

“It's amazing!”

그런 오기와 열정 덕에 샵은 승승장구했다. 규모를 두 배로 늘렸고, 머리를 비롯해 피부, 손톱, 의류 쇼핑까지 가능했다. 아침에 들어와 마칠 때 나가는 손님도 꽤 많았다. 토탈 샵으로 발전시켰다. 맨 처음 10만 원 받았던 커트는 3년 후에는 15만 원까지 올렸다. 그래도 손님이 끊이지 않았다. 호주에 거주하는 일본인 중에 “여기서 머리 하고 일본에 들어가겠다”는 손님도 있었고, 홍콩에서 머리를 하러 오는 단골도 생겼다.

잊을 수 없는 손님이 있었다. 영업시간이 끝나고 찾아온 백인여성이었다. “영업 끝났습니다”고 말하려다가 손님을 받았다. 받지 않으면 안 될 것 같은 ‘느낌’이 왔다. 커트와 염색을 끝나고 나자 여성이 울기 시작했다. 순간 얼었다. ‘또 뭐가 잘못됐나’하는 생각이 스쳤다.

“좋아서 흘린 눈물이었어요. 알고 보니 뉴질랜드 여성이었는데, 호주엔 아픈 아이를 치료하러 온 거였더군요. 간호 하느라 여자로서의 삶을 포기하고 살다시피하다가 머리를 하고 난 뒤 거울에 비친 자기 모습에 감동해서 눈물을 쏟아진 거라고 하더라고요. 그런 순간은 헤어디자이너로서 너무 뿌듯하죠. 우리가 이 일을 계속하는 이유이기도 하구요.”

호주에서 5년이 넘는 시간을 경영과 아티스트로활동을 했다. 그 바쁜 와중에도 런던에 있는 비달 사순과 토니앤가이 최고과정인 크레이티브과정에 등록해 커트와 염색을 수료하기도 했다. 기술적인 완성과 유행 경영까지 두루 꿴 무엇과도 바꿀수 없는 값진 시간들이었다.

- 세계에 ‘뷰티 한국’의 한 축 담당하는 회사 차릴 것

2013년 10월, 한국으로 돌아왔다. 호주에서 목표한 만큼의 성공을 이뤘지만 부모님이 그리웠다. 1년에 두 번 만나는 삶을 계속할 자신이 없었다. 공부에도 목이 말랐다. 귀국하자마자 경북대 MBA 과정에 입학했다. 토탈샵을 운영하면서 경영을 배워보고 싶은 생각이 간절해진 까닭이었다.

다들 서울에 정착할 거라고 예상했지만 대구를 선택했다. 만류하는 이들이 많았다.

“대구가 제2의 고향입니다. 여기서 미용의 기초를 닦았구요. 너무 그리웠죠. 일단 대구에서 출발하고 싶었습니다.”

귀국 신고는 2014년 ‘대구광역시장배 미용경기대회' 오픈 쇼로 대신했다. 원래는 오프닝쇼는 미용 관련 교수 4~5명이 한꺼번에 쇼를 펼치지만 그해에는 오스카제이 원장 혼자서 쇼를 했다.

“지역에 연고가 거의 없는 상황이라 모든 것을 혼자서 해결해야 했습니다. 기존에 볼 수 없었던 틀에 박히지 않는 헤어쇼를 보여주고 싶어 정말 열심히 준비했습니다. 지역 미용인들로부터 굉장한 호평을 받았습니다.”

샵은 동성로에 열었다가 종각네거리에 있는 5층 건물로 자리를 옮겼다. 뜻이 맞는 교수들과 함께 뷰티 타워를 만들고 싶어 2층을 샵으로 꾸미고, 3~4층은 미용학원을, 5층은 스킨케어로 꾸몄다. 아직 채워 넣어야 할 부분이 많다. 호주에서만큼은 아니지만 나름 뷰티타워를 꾸밀 계획이다. 현재 헤어샵은 회원제로 운영한다. 하루 3명만 고객을 받는다. 기본적으로 커트는 스타일링 마무리까지 1시간이지만 가끔 마음에 안들때나 복구를 해야되는 고객들은 금액에 상관없이 2시간이상 걸릴때도 있다 다른 시술 또한 마찬가지이다 물론 많은 고객을 받으면 좋겠지만 오스카제이원장 특성상 최고가 아니면 하지 않는다는 자존심으로 돈 보다는 사람을 생각하고 각개인의 특성에 맞게 맞춤디자인을 해주다보면 하루에 3명도 시간이 모자라는 실정이다

“호주에서 배운 중요한 교훈이 하나 있어요. 순서에 밀려 돌아간 손님은 다시 오지만, 대강 해준 손님은 다시 오지 않는다는 겁니다. 고객 한분 한분에게 최선을 다하려고 합니다. 무엇보다 대강 대강은 제 자존심이 허락하지 않습니다.”

최근 새로운 목표가 생겼다

“세계로 진출하고 싶습니다. 힘든 일이 될 줄은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마음에 맞는 동료들과 꼭 한번 도전해보고 싶었습니다. 아직도 심장이 뜨거운 나이니까요. 시행 착오를 많이 겪었지만 5월쯤에 드디어 본격적인 여정을 시작할 것 같습니다.”

헤어샵을 여는 정도가 아니다. 아예 뷰티패션관련 회사를 차릴 예정이다. 사업 영역에 헤어, 코스메틱, 스킨케어, 바이오 패션까지 두루 포함된다. 국내 전문가들과 각국 내 사업가, 미용 패션관련 전문가들이 합세한 대규모 프로젝트다.

“세계 진출이라고 하면 비웃을지 모르지만, 사람은 꿈을 꾸는 만큼 이룰 수 있다는 말을 믿습니다. 열심히 해서 제 자신과 후배들에게 세계라는 넓은 바다를 열고, 반드시 큰 희망의 신호탄을 쏘아 올리고 싶습니다!”

단골 손님들과 포즈를 취했다.

 

뮤지컬 배우들과 함께. 비행기를 타고 오는 단골 손님들이었다.

 

호주에서 활동하던 시절, 손님과 대화를 나누고 있다.

 

김광원기자 jang750107@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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