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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항 화재 의인 김민환씨

“더 많은 의인 나올 수 있게 정부 지원 시스템 개선 절실”

  • 입력 2017.06.09 00:00
  • 수정 2017.06.09 17:07
  • 기자명 김정혜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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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북 포항에 사는 김민환(38)씨는 지난해 10월 17일의 밤을 아직도 생생히 기억한다.
 

▲ 김민환씨



그는 지금으로부터 8개월 전인 그날, 자정이 다 된 시각에 하루 일과를 마무리하고 거실에서 TV를 보고 있었다. 김씨는 뒷마당에 키우던 개가 몹시 짖자 ‘무슨 일인가’ 싶어 창문을 열었다가 깜짝 놀랐다. 골목 안쪽 80대 노부부가 사는 집이 활활 불타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는 “본래 우리 개가 큰 일이 아니면 안 짖는데 8월 포항에 지진이 났을 때처럼 ‘컹컹’ 짖어 바깥을 내다봤다가 불이 난 것을 알았다”며 “아내에게 119 신고를 부탁하고는 곧바로 4층 계단을 뛰어 내려갔다”고 말했다.

이미 집 주변에 놀란 이웃들이 나와 물을 붓고 있었다. 김씨는 ‘연기가 더 심각하다’ 생각하고 곧장 유리창을 깼다. 처음엔 돌로 깨려 했지만 ‘집 안 누군가가 밖으로 나오기 위해 창가에 있을 수도 있겠구나’ 싶어 맨손으로 부수기 시작했다. 그는 “예전에 건축 일을 하며 유리에 대해 잘 알아 불이 난 집 창문이 한 번 깨면 무너져 내리는 유리인 것 같아 겁내지 않고 깼다”고 말했다. 김씨는 창문을 깨 연기를 빼다 현관 옆에 쓰러져 있는 할아버지를 발견했다. 마침 소방관들이 도착했고 그는 할아버지를 부축해 옮겼다. 하지만 “집 안에 있는 할머니를 구해달라”는 할아버지의 부탁에 다시 불이 난 집으로 몸을 돌렸다.
캄캄한 집 안을 더듬어 들어가던 중 소방관 한 명이 들어왔고 함께 할머니를 찾기 시작했다. 불길과 연기 속에 숨을 헐떡이는 할머니를 찾은 소방대원은 “출구를 찾아달라” 외쳤다. 김씨는 또 다시 유리를 깼다. 할머니를 태운 구급차가 떠나고 나서야 그는 골목으로 빠져 나와 한 숨을 돌렸다. 연기를 마신 탓에 그때부터 구토가 났다. 유리를 깨다 손을 다친 사실도 그제서야 알았다.

상처가 꽤 심하다고 느낀 김씨는 이웃에게 부탁해 병원으로 갔다. 그는 응급실에서 찢어진 손가락만 꿰매고 돌아 나오려는데 할머니를 구한 소방대원을 맞닥뜨렸다. 소방대원이 병원 직원들에게 김씨를 가리켜 “연기를 많이 마셨을 거다”고 말했고 결국 그는 병원 내 검사실 여기저기로 옮겨졌다. 검사를 마치고 중환자실에 누운 김민환씨는 그때부터 앞이 캄캄했다. 양계장을 운영하는 그는 날이 밝으면 돌봐야 할 병아리와 닭들이 걱정됐다. 시간이 흐르면서 병원비도 신경 쓰였다.

김씨는 “하루 이틀이면 충분할 줄 알았던 병원 생활이 3주 넘게 계속됐고 애지중지 키운 닭과 병아리들은 모두 죽었다”며 “병원비도 100만 원이 훌쩍 넘어 아내에게 너무 미안했다”고 말했다. 그는 병원 측에 사정을 설명했지만 집이 있다는 이유로 긴급의료비 지원도 받을 수 없었다. 결국 위문 온 소방서장과 이강덕 포항시장 등에 처지를 이야기했고 포항시의 도움을 받아 의상자로 접수됐다. 김씨는 올 2월 보건복지부 심사 후 의상자로 지정되면서 그간 고생도 어느 정도 해결됐다. 그러나 그의 마음 한 켠에는 여전히 씁쓸함이 남아 있다. 몸을 아끼지 않고 구한 노부부가 끝내 하늘 나라고 떠났기 때문이다. 또 김씨가 병원에 누워 있는 동안 겪은 정부의 의료지원 시스템에 너무나 실망한 탓이다.

▲ 김민환씨



김민환씨는 “다시 같은 상황을 겪어도 그때처럼 불길 속을 뛰어 들 것이다”며 “다만 이웃을 돕다 다친 사람이 치료라도 편안하게 받을 수 있도록 정부의 지원이나 의료 시스템이 잘 갖춰지면 좋겠다”고 말했다.

김정혜기자 kjh@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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