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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7.06.07 00:00
  • 기자명 김광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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욕쟁이 점례 노파 활짝 웃는 그날을 기대하며…

김광원기자

 

욕 들으면서 감동하기는 처음이었다. 이 독특하고 낯선 체험을 한 곳은 연극 공연장이었다.

현충일에 대구의 한 소극장을 찾았다. ‘제2회 대한민국연극제’에 참여한 지역 연극팀의 공연을 보기 위해서였다. 첫 인상은 실망스러웠다. 휴일인데도 300석 남짓한 객석 중간이 듬성듬성했다. ‘그럼 그렇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미심쩍은 마음은 연극 시작과 함께 깡그리 사라졌다. 모두 낯선 연기자들이었지만 저보다 더 잘해낼 수 있을까 싶을 정도의 호연을 펼쳤다.연극에 대한 기대치도 바닥까지 내려갔다. 타이틀은 거창하게 ‘대한민국연극제’라고 붙였지만 ‘아마추어’를 겨우 벗어난 수준이 아닐까, 의구심이 일었다.

작품의 구성도 빈틈이 없어보였다. 이야기는 미국으로 입양된 남자가 자신의 뿌리를 찾아 경상도의 한 주막으로 흘러든다는 내용이었다. 주막은 점례라는 노파가 홀로 지키고 있다. 그는 전쟁으로 남편을 잃고 하나밖에 없는 딸마저 가출해버려 가슴이 응어리를 안고 살아가고 있다. 노파의 이웃이라곤 경부고속도로 터널 붕괴사고로 마음의 상처를 입은 홍성댁이 전부였다. 이 쓸쓸한 주막에 찾아든 한국인 입양아는 자신의 사연을 털어놓았고 종내에는 점례의 외손자라는 사실이 밝혀진다.

주인공 점례 역을 맡은 배우의 연기력이 압권이었다. 꼭 기억해야겠다 싶어 이름을 암기했다. 그는 경상도 중년 주부와 노파역을 완벽하게 소화했다. 경상도 특유의 억샌 말투에 어기적어기적 걷는 모습을 보고 있자니 분장이 아니라 정말 노인처럼 보였다. 몇 번이나 눈을 씻고 확인했다.

관람을 마치고 나오면서 관계자를 만났다. 연극 제목이 ‘그냥 갈 수 없잖아’였는데, 정말 그냥 갈 수 없을 만큼 감동이 마음이 가득했던 거였다. 그 관계자는 16개 시도 출품작 모두 작품성과 연기력에서 어디에 내놓아도 손색이 없는 수작이라고 평했다. 지역이라는 한계에도 불구하고 우리 연극인들이 문화계 인사들이 얼마나 치열하게 자신에게 주어진 몫의 삶을 살아내고 있는지 새삼 가슴이 뭉클해졌다.

작품성과 연기력이 확보됐다면 지방 연극은 전성시대(?)그런 뉘앙스를 풍기자 그 관계자는 손사래를 쳤다. 이렇게 열심히 잘하는데도 연기자들의 한 달 평균 활동 수입이 고작 100만 원 안팎이라고 했다. 연극에서 느낀 감동만큼이나 씁쓸한 마음이 들었다.

배우는 비정규직이다. 정부에서 추진하는 비정규직의 정규직화 정책에서도 순위가 밀릴 것이다. 우선순위가 된다 해도 정답은 아니다. 우선은 정부와 기업의 지원이 시급하지만, 그럼에도 궁극의 해결책은 아니라는 것이다.

시민의 관심이 답이다. 억지로 보라는 것도 아니다. 직접 목격한 지역 연극 현장은 ‘하늘도 알고 땅도 알지만 모르는 사람은 통 모르는’ 바로 그런 분야였다. 나도 포함해 통 모르는 사람이 너무 많다.

연극은 ‘사람과 사람이 서로 숨 쉬고 소통하는 장’이라고 한다. 논리만으로 풀기 어려운 난제들을 풀 수 있는 정서적 에너지가 넘치는 곳이다. 대한민국연극제는 계기 삼아 가족, 연인, 친구, 동료와 함께 가까운 공연장을 찾아보는 게 어떨까 싶다. 우리 연극이, 특히 서울과 비교해서도 홀대 받는 우리 지역의 연극의 수준이 이 정도라는 흐뭇한 진실을 내가 아는 모든 사람과 공유하고 싶다. 대한민국연극제가 사람과 사람뿐 아니라, 연극과 대중이 서로 숨 쉬고 소통하는 계기가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김광원기자 jang750107@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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