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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인두암 완치 대학생 장주희 씨 “병상에서 발견한 작은 행복들”
김광원기자  jang750107@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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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7.02.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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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비인두암을 극복하고 대학생이 된 장주희 씨. 고등학교 2학년 때 발병해 반 년 가까이 항암 치료를 받았다.

“숭늉 한 모금이라도 맛을 느껴보고 싶었어요. 4달 동안 미각을 잃어버렸거든요.” 장주희(22ㆍ경북대학교 자율전공학)씨는 고등학교 2학년이던 2014년 10월에 비인두암 선고를 받았다.

식도 윗부분에 악성종양이 생겼다. 처음에는 암인 줄도 모르고 병을 키웠다. 아프기는커녕 체력이 그 어느 때보다 좋았기 때문이었다.

“1학년 때 미국에 교환학생을 다녀왔어요. 기름진 음식을 먹다 보니 살이 쪄서 귀국한 후 하루에 두 번씩 운동을 했어요. 그 덕에 체력이 너무 좋아졌어요. 목이 조금씩 부었는데, 살이 쪄서 그런 건가, 하고 생각했죠. 열심히 운동하면 가라앉을 거라고 생각했어요.”

- 머그컵 들 힘도 없던 치료기

목이 눈에 띄게 부풀어 오른 지 다섯 달이 지나서야 병원을 찾았다. 처음에는 암 선고가 실감이 나지 않았다. 학교를 그만두고 입원을 해야 한다는 말에 ‘이제 학교 안 가도 되는 구나’ 하는 생각을 했다. 병원에서 실컷 놀 생각에 설레기까지 했다.

“수술을 안 해도 된다는 말도 마음에 들었죠. 사실은 수술을 할 수 없을 만큼 예민한 부위였던 것인데, 전 그걸 별로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않았어요. 뭘 몰랐던 거죠.”

환상은 얼마 안 가 깨졌다. 방사선 치료는 말 그대로 장난이 아니었다. 체력이 급격하게 떨어졌다. 머그컵을 들 힘도 없었다. 면역력이 약화된 까닭에 병원 밖으로 나가지도 못했다. 하루 종일 병실과 복도를 맴돌았다. 짜증이 늘었다.

“엄마한테 투정을 많이 부렸어요. 병실에서 엄마가 밥을 먹고 있으면 나가서 먹으라고 소리를 쳤죠. 모든 게 시비 거리였어요.”

일상의 자잘한 일들이 그렇게 그리울 수가 없었다. 수업을 듣고 쉬는 시간에 매점을 가거나 학교 앞에서 떡볶이를 사먹던 일까지, 모든 게 그리웠다. 무엇보다 맛을 못 느끼는 것이 괴로웠다.

- 웃는 간호사 얼굴에서 큰 용기 얻어

힘든 나날이었지만, 그 과정에서 고마운 분들도 많이 만났다. 가장 기억에 남는 사람은 간호사였다.

“병실이 너무 답답해서 복도를 맴돌곤 했어요. 그럴 때마다 간호사 언니가 웃으면서 다가와 반갑게 인사도 하고 안부도 물어줬어요. 그때의 말 한 마디가 너무 고맙고 감사했어요.”

먼 거리도 마다하지 않고 병문안을 와준 친구들도 잊을 수 없었다. 집중 치료를 받을 땐 그마저도 허용이 되지 않아 얼굴을 볼 수 없었지만, 병문안을 온 친구들 이름을 한 명도 잊지 않고 있다. 치료도 치료지만 그렇게 마음 써 준 이들 덕분에 용기와 힘을 낼 수 있었다.

“치료가 끝나고 나서 뛸 듯이 기뻤어요. 아직 몸에 힘이 하나도 없었지만, 병원을 나갈 수 있어서 너무 좋았어요. 일 년쯤 뒤에 수능을 봤는데, 수능 끝났을 때도 그만큼 기쁘지는 않더라고요.”

병을 털고 난 뒤에도 걱정은 있었다. 부모님이 병원비를 비밀로 했기 때문에 정확한 액수를 알 순 없었지만, 장씨가 치료하던 중에도 어머니가 직장을 그만두지 않았을 만큼 집안 형편이 넉넉하지는 않았다. 대학 등록금이 고민이었다. 그때 생각지도 못한 곳에서 도움의 손길을 뻗어왔다. 소아암협회였다.

“그런 데가 있는지도 몰랐어요. 소아암협회가 있다는 이야길 듣고 전화를 걸었더니 흔쾌히 장학금을 줄 수 있다고 하시더라고요. 동아줄을 잡은 기분이었어요.”

- 희망 나누어주는 사람 되고 싶어

대학에 입학한 지도 어느덧 1년이 지났다. 이제 체력을 거의 회복했다. 죽을 뻔한 경험이었지만 드라마에 나오는 것처럼 ‘두 번째 인생을 사는 기분’ 같은 큰 심경의 변화는 없었다. 그저 “예전과 똑같지는 않은 정도”라고 했다. 사소한 몇 가지가 달라졌다.

“우선 밥을 맛있게 먹어요. 음식 투정을 거의 안 하죠. 음식 맛을 느끼며 먹는 게 얼마나 소중한 일인지 아니까요. 학교 밥은 조금 지겹지만, 다른 건 뭐든 잘 먹어요, 호호!”

작은 것에 감사할 줄 아는 마음도 병을 앓기 전과 다른 점이다.

“퇴원 후에 슈퍼에 갈 때마다 함께 따라와서 짐을 들어준 초등학교 동창생과, 늘 안부를 묻던 간호사 언니, 병문안을 왔던 친구들, 친절하게 웃어주던 의사 선생님을 잊을 수 없어요. 작은 배려들이 힘든 이에게 얼마나 큰일인지 절절하게 깨달았어요.”

또래에 비해 삶의 목표도 또렷하다. 구체적인 계획은 세운 적이 없지만 어렴풋이나마 어떤 생을 꾸려갈지는 깊이 생각해봤다.

“거창한 꿈은 아니에요. 그저 힘든 이들에게 도움이 되는 직업을 가지고 싶어요. 사회복지사나 간호사 같은 직업요. 제가 받은 작은 촛불 같은 희망을 다른 이들에게 나누어주는 일을 하고 싶어요. 행복은 파랑새처럼 늘 우리 곁에 있는 작은 것들에 깃들어 있다고 하잖아요. 저는 희망도 그렇다고 생각해요. 죽음의 문턱에서 발견한 작은 희망과 행복들을 사람들에게 알려주고 싶어요.”

김광원기자 jang750107@hankookilbo.com 이민재 인턴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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