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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이스피싱 의심받아도 자살자 가족 포기 못해요”

  • 입력 2017.02.06 00:00
  • 수정 2017.02.07 15:35
  • 기자명 김민규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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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릭 이사람 임규형 대구 달성경찰서 형사2팀장

▲ 대구 달성경찰서 임규형 형사2팀장이 자살자 유가족 심리치료 안내서를 보여주고 있다. 김민규기자 whitekmg@hankookilbo.com

대구 달성경찰서 임규형(56ㆍ경감) 형사2팀장은 오지랖이 넓기로 소문난 포돌이다. 범인 잡는 본업에다 자살자 유가족 심리치료를 권장하는 부업으로 하루 해가 짧다.

그는 이 공로로 지난달 경찰청장 상도 받았다.

그가 보건복지부 중앙심리부검센터가 관장하는 자살자 유가족 심리치료에 애정을 쏟는 것은 우연이 아니었다. 1992년 31세 늦깍이로 경찰에 입문한 그는 98년 자살한 중년 남자의 시신을 접하면서 한 가정의 몰락을 목격했다. 초등학생 아들 딸이 아버지 시신을 보고 울음을 터뜨리는 모습을 보고는 시신을 단순히 사무적으로 대한 자신이 부끄러웠다. 시신을 볼 때마다 소금을 뿌렸던 그는 그날 이후 항상 묵념하는 습관이 생겼다.

다람쥐 쳇바퀴 돌리듯 사건 현장을 누비던 그에게 2015년 8월 보건복지부 중앙심리부검센터 직원들이 찾아왔다. “자살자 가족에게 심리치료를 지원한다”며 형사들에게 협조를 구하는 순간 옛날 중년 남자의 시신과 어린이가 떠올랐다.

그날부터 그는 틈만 나면 자살자 유가족들에게 심리치료를 권했다. 처음에는 보이스피싱으로 오해를 받는 바람에 통화시간이 1분을 못 넘겼다. 점점 요령이 생겼다. 상대방이 조금이라도 의심하는 기색이 보이면 “휴대폰에 뜨는 번호로 전화해서 임꺽정 형사를 찾아라”고 했다. 그의 별명은 임꺽정이었다.

“자살자 유가족에게 전화를 걸면 ‘잊을 만한데 왜 쓸데없이 전화해서 아픈 곳을 들쑤시냐’, ‘보이스피싱 아니냐’는 반응이 대부분입니다. 치료를 받겠다는 사람은 열 명 중 한 명 정도입니다.”

실적이 인사고과에 반영되는 일도 아니었다. 출세에 도움이 되는 일이 아니었는데도 이 일에 매달리는 건 남다른 보람 때문이다.

“가끔 심리치료 받은 분들이 ‘정말 고맙다. 숨도 못 쉬고 살았는데 이제 조금 숨통이 트이는 것 같다’고 연락할 때면 사람을 살린 기분이 듭니다. 범인을 잡았을 때와는 또 다른 느낌이죠.”

지난해 전국 240여 경찰서는 모두 53건의 자살자 유가족 심리치료를 성사시켰다. 이 중 62%인 33건이 임 팀장의 공이다.

“OECD 국가 중 우리나라 자살 비율이 가장 높다”는 임 팀장은 “가족들은 자살자가 남긴 아픔을 그대로 대물림 하기 때문에 자발적으로 심리치료를 받기 바란다”고 말했다.

김민규기자 whitekmg@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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