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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아시아 뮤지컬’ 지금이 오히려 진정한 발전 기회

  • 입력 2017.01.31 00:00
  • 수정 2017.02.01 10:16
  • 기자명 대구한국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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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월에 서울 블루스퀘어 극장에서 ‘제1회 한국뮤지컬어워즈’가 열렸다. 시상식이 있던 날 오후, 한중일 뮤지컬 관계자들이 모여 아시아라는 하나의 시장에서 각 나라가 어떻게 경쟁하고 협력할 것인지 토론하는 자리도 가졌다.

토론회에는 중국과 일본에서 온 뮤지컬 전문가 20명 이상이 참석했다. 현재 중요한 위치에 있거나 향후 자기 나라에서 뮤지컬을 이끌어갈 인재들이었다.

토론에 앞서 중국과 일본 등에서 성공한 한국 작품을 소개하는 시간이 있었다. 중국의 여러 도시에서 공연한 ‘투란도트’와 일본에서 좋은 반응을 얻어가고 있는 ‘ 빈센트 반 고흐’라는 작품이 소개됐다. 발표를 듣는 동안 그들의 땀과 노력이 느껴졌다. 나는 한국인이 중국과 일본에 진출해 활동할 때 부딪치게 되는 현실적인 어려움을 직접 겪어보았다. 발표를 지켜보는 내내 마음으로 진심어린 박수를 보냈다.

발표 후에는 종합 토론이 벌어졌다. 한중일이 하나의 뮤지컬 시장으로 거듭나려면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가 주제였다. 아직은 입장 차가 있고, 서로 이해가 부족한 부분이 있어서 듣는 이를 긴장시키는 순간이 몇 번 있었지만, 공통의 목표가 있었기에 전체적으로는 정치ㆍ외교적 자리와는 전혀 다른 분위기가 연출되었다. 토론 중에 한국 관계자가 “최근 들어 중국 활동이 어려워졌다”고 하면서 중국 측 관계자에게 이를 극복할 수 있는 방안이 무엇인지 물었다. 그러자 중국 뮤지컬계를 대표하는 인물 중의 한명인 리둔 감독이 “진정성”이라고 단호하게 답했다. 그것은 한국이 중국에게 진정성을 보이라는 말이 아니었다. 그는 “우리의 진정성이 우리의 미래를 보장해줄 것”이라고 강조했다.

진정성은 문화와 예술이 가진 근본적인 힘이다. 국경과 인종, 세대를 뛰어넘는 감동의 근원이 바로 그 진정성이다. 리둔의 말대로 예술적 진정성을 공유하고, 이를 바탕으로 다양한 난관을 극복해나간다면, 우리가 하나의 시장을 가지지 못할 이유가 없다. 중국과 한국, 일본이 각각의 장점을 발휘해 아시아인의 마음을 두드리면 국경은 물론이고 국경보다 더 높은 벽도 넘을 수 있을 것이다.

이런 예는 문화와 예술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다. 언젠가 유럽 중세사를 재미있게 읽은 적이 있었다. ‘한자 동맹’이란 모임에 관한 이야기가 흥미진진했다. ‘한자 동맹’은 일종의 상인 협동조합으로 여기에는 왕도, 인장도, 공동재산도 없었지만 그들만의 동료의식으로 똘똘 뭉쳐 상행위를 위축시키려는 국가(노르웨이)에 저항해 자유로운 거래 환경을 쟁취하기도 했다. 이후 독일의 30년 전쟁(1618~1648)을 끝내는 회담에도 국가들 사이에 동맹의 이름으로 당당히 참석했다. ‘한자 동맹’이 국가에 버금가는 단체로 인정받았다는 뜻이었다.

그들과 다른 면이 있기는 하지만 우리 역시 일종의 동맹이다. 우리는 문화의 교류를 저해하는 어떤 분위기나 정책에도 저항한다. 그럴 수밖에 없다. 우리가 얻고자 하는 것은 권력이나 금력이 아니다. 우리의 진정성을 표출할 수 있는 무대와 열정을 다해 만든 작품을 감상해줄 관객이 우리가 원하는 전부다. 우리는 한자 동맹 이상의 동질성과 끈끈한 동지애를 가진 문화 예술 동맹체인 것이다.

또한 우리는 어느 누구보다 끈끈하게 협력하겠지만, 동시에 가장 치열한 경쟁을 할 것이다. 문화에서의 경쟁은 다른 분야와 달리 발전과 향상 이외의 그 어떤 부작용도 낳지 않기 때문이다. 경쟁이 우리를 더 끈끈하게 만들어준다.

열띤 토론 끝에 우리는 뜨거운 불덩이 하나씩을 삼킨 기분이 되었다. 생각과 표현은 제각각이었지만 무대와 관객을 향한 마음은 하나라는 것, 한중일이 거대한 뮤지컬 공동 생산지과 공연장으로 발전하면 아시아가 뮤지컬의 가장 중요한 축이 될 것이라는 확신을 품었기 때문이었다.

서로 더 자주 만나자는 약속도 했다. 만나서 이야기를 나누면 소소한 갈등은 줄어들고 이해의 폭은 넓어지기 마련이다. 서로의 문화를 조금이라도 더 이해하고, 노하우 하나라도 더 공유한다면 모두에게 득이 될 것이다.

이런 뜨거운 분위기는 역설적으로 현실적인 어려움이 낳은 결과라고 생각한다. 무역 환경을 어지럽힌 국가에 저항해 싸운 ‘한자 동맹’의 상인들처럼, 우리 역시 하나로 똘똘 뭉쳐서 뮤지컬의 발전과 협력을 힘들게 하는 상황을 돌파하려고 애쓰고 있다.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사람이 답”이란 말이 옳다면, 한중일이 같은 마음, 같은 열정으로 뭉친 지금이 오히려 아시아 뮤지컬이 한 단계 더 발전할 수 있는 기회일 지도 모른다는. 한중일을 나라로 묶는 문화적 진정성이 답이다.

▲ 홍본영 뮤지컬 배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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