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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진환의 미식예찬

음식의 과학

  • 입력 2017.01.06 00:00
  • 기자명 대구한국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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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바른 판단이란 객관적인 기준에 근거해서 이루어지기 보다는 그것이 나에게 어떤 의미가 있는지 그것을 진정으로 내가 원하는 것인지가 기준이 된다. 나의 즐거움이 최대이고 고통이 최소가 되어야 한다. 판단을 통한 자신의 결정을 기꺼이 받아들이려면 나에게 즐거움이 무엇인지 알아야 한다.
미각은 상황의 영향에 강하게 작용한다. 미각은 우리의 뇌속에 저장되어 있는 과거 경험의 합이다 사람의 미각은 가소성이 있기 때문에 경험에 따라 달라질 수가 있다. 실험 연구에 따르면 커다란 그릇과 커다란 스푼이 과식을 하게 된다고 한다. 큰 그릇 탓에 음식 양이 적어 보이기 때문에 더 많이 담게 된다. 같은 양이라도 큰 접시에 담아내면 작은 접시에 담을 때보다 칼로리를 적게 짐작한다. 조금씩 계속 채워지는 스프 그릇 실험에서 한 그릇 스프를 먹은 피험자들보다 계속 채워 주는 스프를 먹는 사람이 거의 2배가량 많이 먹었다. 인간은 식사를 멈출 때 포만감이 아니라 외부 신호(다 먹었음을 보여주는 빈 그릇 등)에 의존한다.
우리는 먹는 것을 실제로 보지 않는 한 과식하기 쉽다 버펄로윙(닭 날갯살) 파티 실험에서 학생 두 그룹에 버펄로윙 뷔페를 제공하고 한쪽은 웨이트리스들이 뼈를 치우도록 하고 한쪽은 치우지 않고 내버려뒀을 때 뼈를 치운 쪽이 28퍼센트 더 많이 먹었다고 한다. 곡선형 술잔이 실제 음주량보다 적게 마셨다는 착각 불러일으켜 자신의 의도보다 훨씬 더 빨리 술을 마신다고 한다. 길고 좁은 잔에 술을 따라 마시면 짧고 넓거나 곡선형 잔을 사용하면 실제보다 적게 마신다고 느낀다.
브리스톨대학의 박사과정생 데이비드 트로이가 이끄는 연구팀은 음주자들을 모집해 두 그룹으로 나눴다. 과음의 요인을 알아보려는 목적이었다. 절반에게는 4분의 1, 절반, 4분의 3 지점에 선을 그려 넣은 잔을 줬다. 나머지 절반에게는 선이 없는 잔을 나눠 줬다. 선이 그려진 잔을 가진 사람들은 상대 그룹보다 더 천천히 마셨다. 자신이 마시는 양을 정확히 알면 음주자가 속도를 조절한다는 의미라고 연구팀은 설명한다.
연구팀은 컴퓨터로 간단한 과제를 만들어 액체 양의 정확한 중간지점을 판단하는 피험자들의 능력을 측정했다. 두 가지 형태의 유리잔에 액체를 그려 넣었다. 하나는 측면에 곡선을 넣었고 다른 하나는 곧게 뻗은 형태였다. 유리잔 형태가 질량 판단에 미치는 영향을 테스트하려는 취지였다. 예상대로 직선형보다 곡선형 잔의 중간점을 오판하는 비율이 훨씬 더 높았다. 마지막으로, 연구팀은 주점에서 실험을 실시했다. 3개 주점에서 2주의 주말 동안 팔린 맥주 량을 기록했다. 직선형과 곡선형 두 가지 잔을 사용했다. 조사 결과 곧게 뻗은 형태의 잔이 훨씬 적게 팔렸다. 직선형 잔을 이용한 고객이 술을 적게 마신 것은 곡선형 잔을 이용한 그룹보다 맥주의 양을 더 정확하게 판단했기 때문이라고 연구팀은 주장한다.
인간의 경험이 실제적인 감각지각에 한정 되지는 않는다. 개인이 느끼는 인상은 불완전하기 때문에 주관성이 약간 가미되어야 완전해진다 감각지각을 결합 또는 분해할 때마다 실제로 하는 일은 감각하고 있다는 것에 대해 판단을 내리는 것이다. 무의식적인 해석 행위는 대체로 처음 알게 된 정보에 나중에 알게 된 새로운 정보들의 지침을 만드는 맥락효과(context effect)에 의해 주도된다. 음식의 소비습관도 처음에 긍정적으로 느낀 맛이라면 이후에도 그 맛에 대해 긍정적으로 생각하게 된다. 평소와 다른 상황에서 어떤 감각지각을 만나게 되면 인간의 뇌는 비밀스럽게 그 감각 판정을 변조하기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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