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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경 한자락 마음 한갈피 (6) 대구수목원쓰레기 썩어 정갈한 숲 겨울 수목원의 깊은 맛
김윤곤기자  seoum@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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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7.01.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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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년 11월 중국 네이멍자치구 초원지대. 중국 첫 우주인을 태운 우주선 선저우(神舟) 5호가 착륙했다. 지구 궤도를 14바퀴 돌고 귀환한 우주인 양리웨이(楊利偉·공군 중령·당시 38세)는 인민들의 열렬한 환영과 질문을 함께 받았다. 한 기자가 물었다. ‘우주선에서 만리장성이 보였느냐.’ 중국인들이 가장 궁금해 한 이 질문에 그는 고개를 저었다. “우주에서는 만리장성을 볼 수 없었다.” 이후 중국 소학교 4학년 어문 교과서에서 ‘만리장성은 달에서도 보인다’는 내용은 삭제됐다.
미국에도 ‘만리장성’이 있었다. 오랫동안 ‘지구에서 인간이 만든 가장 큰 구조물’이라거나 ‘우주에서도 보인다고 믿었다’는 점에서 만리장성에 비교됐던 곳. 뉴욕의 쓰레기매립장 프레시킬스(Fresh Kills)다. 물론 만 리도, 성벽도 아니었다. 프레시킬스는 쓰레기로 쌓은 ‘만리장성’이었다. 원래 프레시킬스는 뉴욕의 3개 섬 중의 하나인 스태튼아일랜드(Staten Island) 서쪽지역을 흐르는 강의 이름이었는데, 이 강 제방을 따라 조성된 거대한 쓰레기매립지 이름으로 더 많이 알려졌다. 2천200에이커(약 270만 평) 넓이로 맨해튼의 2.6배. 폐쇄 전 쓰레기 더미 높이는 71m. 만리장성의 8배였다.
‘쓰레기로 쌓은 만리장성’
2차대전 후 10여 년 동안 미국 경제는 경이적인 성장을 누렸다. 경제지표가 가파른 상향곡선을 그리면서 쓰레기 발생량도 급증했다. 기존의 소각 처리 방식으로는 쏟아져 나오는 쓰레기를 감당할 수 없었다. 미국 최대 도시 뉴욕의 쓰레기 문제는 더욱 심각했다. 이때 뉴욕시가 선택한 ‘문명의 뒤처리’ 방식은 ‘묻어버리는 것’. 뉴욕시위생위원회 위원 윌리엄 캐리(William Carey)가 제안하고 뉴욕시 공원국장(도시행정관) 로버트 모제스(Robert Moses)*가 추진에 나서면서 뉴욕시는 미국에서 처음으로 쓰레기 매립 방식을 도입했다.
쓰레기 매립 방식은 1939년 영국에서 처음으로 개발·시행했다. 가연 쓰레기의 재와 잔해, 불연 쓰레기, 악취 나는 쓰레기를 쌓고 그 위에 흙을 덮어 마무리한다. 이 ‘비위생적인’ 쓰레기 처리 방식은 많은 비판을 받았지만, 당장 다른 대안이 없고 단점보다는 장점이 더 많을 거라는 낙관론에 기대어 곧 쓰레기 처리 방식의 주류가 됐다. 1947년 개장한 프레시킬스 쓰레기매립장은 다음 해부터 매립을 시작했다.
쓰레기는 강을 따라 운행하는 바지선에 실려 운반됐다. 바지선에 실려온 쓰레기는 덤프트럭이 옮겨 실어 매립장으로 향했다. 맨해튼, 브루클린 등 뉴욕이 쏟아내는 쓰레기 양은 엄청났다. 프레시킬스의 매립량은 하루에만 평균 2만9천t. 하루 3만t 가까이 쌓여가는 쓰레기 산은 인류 최대의 인공 건조물이 될 수밖에 없었다.
모제스는 1968년까지 매립장이 운영될 것이라고 예상했지만, 2001년 3월 줄리아니 시장이 폐쇄를 발표할 때까지 매립은 계속됐다. 50여 년 동안 쌓인 쓰레기는 4개의 산, 거대 구릉을 이뤘다. 쓰레기 총 매립량은 1억5천만t. 상상 불가. 매립장 폐쇄 후 뉴욕시의 쓰레기는 인근의 펜실베니아 주와 버지니아 주로 반입됐다.
쓰레기매립장이 생태순환공원으로
프레시킬스 매립장은 현재 대규모 공원화 프로젝트가 진행 중이다. 공원계획의 차원을 넘어선 도시계획 내지 도시설계 수준이다. 센트럴 파크 면적의 3배로 우주 상공에서 눈으로 식별할 수 있는 지구적 규모다. 쓰레기매립장과 생태순환·레크리에이션·조경공원. 극에서 극으로의 극적인 탈바꿈이다. 2001년 12월 국제 공모를 통해 설계도가 선정됐고 5개 권역으로 나눠 2008년 실제 공사를 시작했다. 인공 조성 매립지의 특성 상 일어날 수 있는 지반 침하와 같은 내부적 변인은 물론이고 생태 환경의 변화, 도시의 변모, 인간의 사유체계·감성의 변화 등의 외부 변인까지 수렴하는 ‘유동적이고 열린’ 설계 방식이다. 30년 후 완공 계획이다.
악취와 오염의 대명사였던 쓰레기매립장이 생태·문화공원으로 거듭난 사례는 프레시킬스만이 아니다. 1916년 개장한 시애틀의 레이니어(Rainier) 체육공원(운동장), 2000년 개장한 보스톤의 밀레니엄(Millenium) 공원, 2006년 개장한 샌프란시스코의 이스트쇼어(East Shore) 공원 등도 ‘쓰레기의 무덤’이 공원 명소로 탈바꿈한 곳이다.
프레시킬스는 ‘미국판 난지도’였다. ‘Fresh Kills’의 사전적 풀이는 ‘맑은 강’. ‘kill’이 지명에 쓰일 때는 ‘수로, 강, 시내’라는 뜻의 명사다. 어원은 네덜란드어 ‘kille’. ‘맑은 물 흐르는 강’이 현실에서는 거대한 쓰레기매립장이었다. 이름과 현실이 빚어낸 아이러니. 생태·환경·기능·경관에서 아이러니는 해피엔딩이었다. 우리는 이것을 이미 경험했다. ‘난초와 지초 무성한 섬’ 난지도. 1978년부터 서울시민들의 엄청난 생활쓰레기를 고스란히 받아내던 난지도는 1993년 매립장 폐쇄 후 2002년 월드컵공원으로 다시 태어났다. 원래의 이름은 잃고 대신 이름의 뜻은 되찾았다.
국내 쓰레기매립장 공원화 1호
국내에서 쓰레기매립장 공원화의 대표적인 사례로 난지도를 꼽지만, 첫 사례는 대구수목원(달서구 대곡동)이다. 이 ‘시민적 상식’을 알고 있는 시민이 의외로 많지 않은 것 같다. 대구수목원의 전신은 대구광역시 임업시험장. 모태는 1973년 문을 연 대구시 공원녹지사업소 양묘장이었다. 이후 묘포장, 묘포장 운영실, 양모사업소 등으로 명칭·직제를 바꿔오다가 1996년 임업시험장으로 개편했다.
당초 이곳은 대구시 대곡위생매립장. 1986년부터 1990년까지 대구시민의 생활쓰레기 410만t을 매립했다. 1990년 방천리위생매립장으로 기능을 넘겨준 뒤 먼지와 악취 날리는 폐허로 남았다. 방치의 시간. 발상의 전환이 시작됐다. 1996년~1997년 인근 지하철공사장에서 나오는 잔토 150만㎥를 6~7m로 복토했고 이곳에 대구수목원을 조성하기로 한 것. 1997년 기본계획 용역과 기본설계에 들어가 이듬해 조성공사에 착수했다. 2002년 5월 3일 대구수목원이 개장했다.
대구수목원은 공원처럼 잘 가꿔진 전문수목원이다. 현재 부지 24만6천500㎡(7만4천500평)에 약초원 등 23개 테마로 나무 450종 15만 그루, 풀 1천300종 30만 포기 등 1천750종 45만본을 가꾸고 있고, 분재(분재원) 40여종 300점, 선인장(선인장 온실) 200여종 2천그루, 수석 300여점, 식물종자(식물종자전시실) 150종을 상설 전시하고 있으며 산림문화전시관과 기념식수동산도 갖췄다. 이용 가능 시간은 오전 9시~오후 6시. 식물의 생장이 왕성한 5월~8월은 오전 8시~오후 7시로 늘려 운영한다.
연간 관람객 200만 명을 넘어선 대구수목원은 지난해 대규모 확장 공사에 들어갔다. 2019년 완료 계획으로 168억원을 투입해 기존 24만6천500여㎡에서 77만5천600여㎡로 3배 가까이 늘린다. 이와 함께 관람료 유료화도 조심스레 검토하고 있어, 마실 산책 가듯 드나드는 달서구 주민과 시민의 관심이 쏠리고 있다.
겨울의 수목원 ‘볼수록 깊은 맛’
대구사람들은 ‘대구에는 갈 데가 없다’는 말을 자주 하고 듣는다. 그래서 이 수목원이 더 고마운지도 모른다. 시내 중심가에 있는 공원들은 만들다가 만 듯 공원이라고 하기엔 아쉬운 게 많다. 금싸라기 땅에다 공원을 늘려달라고 할 수도 없는 노릇이어서 시민들은 주어진 것에 만족하려고 애쓴다. 그러다 보니 꾹꾹 눌러 담아야 하는 게 많다. 대구수목원은 이런 시민들의 마음에 적잖은 위로, 적잖은 선물이 된다. 이름은 수목원이지만 공원의 분위기와 운취를 맛볼 수 있다.
겨울 수목원에 볼 게 뭐가 있느냐 싶겠지만, 그렇지 않다. 겨울 풍경 중에서 수목원은 더욱 사람의 눈과 마음을 끈다. 여름에는 수목원이 아니라도 볼 데가 많다. 모든 생명들이 겨울잠을 자거나 움츠러드는 겨울, 입던 옷조차 벗고 온몸으로 바람을 맞고 선 나무들의 풍모. 그런 나무들을 바라보며 또 그 옆을 지나며 강한 생명력과 처연한 초탈을 함께 느낀다. 겨울에 사유와 사색의 장소로 수목원만한 데가 없다. 걷거나 뛰면서 운동을 하려 해도 이만한 데가 없다. 통행로와 테마 전시장 주변을 비롯 수목원 곳곳에 벤치와 정자, 파고라가 놓여 있다. 쉬어가거나 편히 앉아 풍경을 감상할 수 있다.
겨울 수목원에서는 모든 게 잘 보인다. 잎 벗은 나무들의 가지가 보인다. 그 속에 깃들인 새집도 보인다. 고개를 조금만 들어도 조금만 숙여도 하늘과 땅이 잘 보인다. 겨울에는 이상하다 싶을 만큼 시야가 넓어진다. 동기 감응하듯 사람들도 잘 보인다. 여름에는 바로 코앞에서야 표정이 보인다면, 겨울에는 저만치에서도 눈매가 읽힌다. 거울에 비춘 듯 나 자신도 잘 보인다. 지문과 손금을 들여다보기도 한다. 저 아래 묻힌 수백t의 쓰레기 산도 보이는 신비한 체험도 하게 된다.
수목원에서 쓰레기를 생각하다
마음속 머릿속 생각조차 수목원을 걸으면 가지런해져 잘 보인다. 생각이 복잡하거나 머리가 아플 때, 몸이 자꾸 가라앉을 때 수목원을 걸으면 몸도 마음도 맑아진다. 생태와 자연에 좀 더 다가가 그대로의 생명력을 느끼고 맛보고 담아올 수 있다. 환경의식은 말할 것도 없다. 겨울 수목원은 맛이 깊다. 한 번 맛을 들이면 더 깊이 빠진다.
우리나라 국민의 1인당 생활쓰레기 배출량은 일본의 4배, 독일의 37배다. 특히 대구시민의 전체 하루 생활쓰레기 배출량은 2014년 2천900t. 한동안 줄어들던 배출량이 2010년부터 증가세로 돌아섰다. 대구시민의 1인당 하루 평균 생활쓰레기 배출량은 2014년 1.15kg. 이 역시 증가세로 돌아섰다. 서울이나 부산에 비해서 아주 높다. 8대 특별·광역시 중 울산에 이어 두 번째. 더 심각한 것은 생활쓰레기 중 재활용 비율은 줄고 매립 비율은 늘고 있다는 점. 생활쓰레기 중 재활용품 비율은 2010년 31.6%에서 2014년 28.7%로 감소하고, 이 기간 매립쓰레기는 31.1%에서 37.9%로 급증했다.
환경부는 2028년이면 전국의 모든 쓰레기매립지가 포화상태에 이를 것이라고 밝혔다. 11년 뒤면 국토 어디에도 쓰레기를 묻을 곳이 없는 상황이 닥친다는 말이다. 상황이 이런데도 정부의 환경정책은 종종 엇박자를 내고 국민의 환경의식은 낮아지고 있다. 정부는 경제 논리에 밀려서, 국민은 먹고 살기에 바빠서다.
신경섭 대구시녹색환경국장은 “지난해 5월 정부는 자원순환기본법을 제정 공포해 내년(2018년)부터 시행한다. 이에 따라 쓰레기 감량과 자원 재활용을 위한 규제와 지원이 강화된다. 폐건전지·폐형광등 분리수거 등 환경사랑 실천에 시민들이 앞장서 달라”고 당부했다.
수목원을 다시 찾은 간절한 이유
풍경은 보이는 것보다 보이지 않는 것이 더 중요하다. 대구수목원을 찾을 때마다 쓰레기 문제를 생각하게 된다. 대구수목원을 걸으며 저 아래 묻힌 수백 t의 쓰레기를 본다. 쓰레기매립지는 포화가 멀지 않은데 국민의 환경의식은 떨어지고 있다. 쓰레기 문제와 환경을 다시 생각하게 하는 곳, 대구수목원을 찾아야 할 이유가 또 하나 늘었다.
탄핵 정국이다. 국가 시스템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았거나 농단 당했다. 많은 국민들이 분노와 허탈감에 잠을 설친다. 대구·경북 시도민들은 심리적인 책임 소재에서 좀 더 가까울 것이다. 가장 두려우면서도 가장 고마운 것이 진실이다. 아무리 두렵고 허탈해도 진실을 부정하거나 왜곡해서는 안 된다. 진실 앞에서 겸손할 뿐이다. 거대한 매립장에 내 안의, 우리 안의 온갖 거짓과 욕심을 쏟아 부어야 할 때다. 우리 안의 쓰레기들이 푹푹 썩어 거름이 되도록 해야 할 때다. 대구수목원은 수백t의 쓰레기가 거름으로 썩어 울창하고 정갈한 숲과 길을 이뤘다. 꽃, 풀, 나무 사이로 물과 길이 흐르는 숲이자 정원, 겨울의 대구수목원을 다시 찾은 간절한 이유다.

김윤곤 기자 seoum@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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