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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다렸다, 희망 2017! 서문시장 화재현장 발굴 '구원투수' 신무순씨

"희망은 스스로 희망하는 자에게 반드시 보답할 거라고 믿습니다!"

  • 입력 2017.01.06 00:00
  • 수정 2017.01.09 11:50
  • 기자명 윤희정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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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무순 씨.

“희망은 누가 가져다주는 게 아니잖아요. 우리 스스로 힘을 내야죠.”
지난달 30일 큰 불로 전소된 서문시장 4지구 상가. 신무순(58)씨는 한 달 가까이 그 잿더미 속을 뒤졌다. 타다 남은 원단이나 현금, 외상 거래가 담긴 장부를 찾기 위해서다. 그렇게 20일 이상을 잿더미 속을 뒤지고 다녔다. 도매상은 특성상 외상 거래가 많은데, 내역을 기록한 장부가 없으면 재기는 물 건너가는 셈이다. 위험을 무릅쓰고 금고와 재고를 찾아다닌 이유다. 그 과정에서 재기의 실마리를 찾은 상인들이 적지 않다. 신 씨는 “화마를 피한 재고를 발견하고 눈물을 펑펑 쏟는 상인들이 있다”면서 “재고보다 중요한 것은 다시 일어설 수 있다는 희망”이라고 힘주어 말했다.
“희망이 없다고 생각하면 눈앞에 보이는 희망도 놓칩니다. 손에 잡히는 희망부터 꼭 부여잡는 연습을 해야 마음에 힘이 나고 결국 다시 일어설 기회를 잡을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조그마한 성취지만 불 냄새가 가지지 않은 장부를 손에 들고 눈에 생기를 되찾는 상인들을 보면서 저도 무한한 희망의 에너지를 얻습니다. 무너진 마음을 희망으로 다시 일으켜 세우는 것이 진정한 새출발이라는 생각을 합니다. 이렇게 조금씩 조금씩 마음을 새로 짓고, 힘차게 2017년을 열어야죠.”

붕괴 위험 속에 금고 40여 개 발굴
그의 금고 찾기는 말 그대로 희망 찾기인 셈이다. 그가 금고 발굴에 나선 것은 지난 4일, 잔불정리가 막 끝난 다음 날이다.
“저도 서문시장에서 30년 동안 장사를 해왔습니다. 화재 당시엔 4지구에 가게가 있었구요. 가게에 남겨둔 금고 속에 귀중품이 남아있지 않을까 기대감에 수색을 결심했죠. 위험해서 안 된다는 구청 측을 설득해 ‘모든 책임을 우리가 지겠다’는 각서를 썼습니다.”
현장 진입 전, 그는 금고전문가들에게 자문을 구했다. 귀금속과 액세서리 가게를 운영했던 까닭에 금고가 4개나 됐다. 진열대에 둔 상품은 모두 녹아내렸겠지만, 금고 안에 있는 귀금속은 건질 수 있겠단 생각이 들었다.
“전문가들이 내화기능을 갖춘 최신 특수금고는 그 정도 불길에도 견딜 수 있다고 하더군요. 단, 100㎏이 넘는 무게 때문에 금고 자체를 외부로 끄집어내는 것은 위험하다고 해 현장에서 열기로 했어요.”
자신의 금고만 열려다가 비상대책위원회 재무간사를 맡으면서 비슷한 처지의 다른 상인들과 힘을 모았다. 4, 5명 단위로 조를 짰다. 지역 금고 전문가 2명과 경찰 소방 구청관계자들도 동행했다. 마스크는 기본이고 방진복과 안전모, 안전화를 착용한 채 조심스레 현장에 진입했다. 상인들은 자신의 금고가 있는 곳으로 전문가들을 안내했다. 금고 하나를 여는데 걸리는 시간은 평균 30분. 하나씩 열릴 때마다 환호성과 탄식이 터져 나왔다. 기뻐서, 때로는 슬퍼서 눈물을 흘렸다. 수색 첫날, 하루 동안 4지구 동쪽 1~3층에서 40여 개의 금고를 찾아냈다.

▲ 신무순(왼쪽)씨가 화재현장을 방문한 상인들을 인솔하고 있다.

화재 현장에서 찾아낸 희망
“다행히 금고 대부분이 원래 자리에 있어 전문가들이 큰 어려움 없이 열 수 있었어요. 남은 게 하나도 없을 줄 알았는데 대부분 멀쩡했죠. 일부 불에 탄 것들도 현금 같은 경우 한국은행에서 교환할 수 있을 정도였어요. 정확히는 모르겠지만 수십억 원은 건졌을 거예요.”
1차가 수색이 끝난 뒤 상인들의 관심이 폭증했다. 이번에는 상품 수색이었다. 금고 수색 당일 건물 바깥쪽 상가를 수색했고, 7일엔 지하층, 14일엔 옥상 수색에 들어가 20일쯤 수색을 거의 마무리했다. 지하 창고에선 멀쩡한 양복 원단과 한복 등 1톤 트럭 20대 분량을 찾아냈다. 붕괴 위험 때문에 마지막으로 들어간 옥상 창고에선 1톤 트럭 30여 대 분량을 끄집어냈다.
“옥상 창고 7개 내부는 불 냄새조차 나지 않을 정도로 멀쩡했어요. 완전 망한 줄 알았던 한 이불집 사장은 멀쩡한 이불을 보곤 '이젠 살았다'며 소리 내어 울더군요. 그 모습을 보고 '내가 정말 잘 시작했다'는 생각이 들었죠.”

▲ 서문시장 현장 발굴 작업 중 한 상인이 흐느끼며 쓸 수 있는 부분이라도 살리려고 타다만 천을 자르고 있다.

"힘 모아 다시 일어서야죠"
금고 발굴 과정에 마음고생도 적지 않았다. “돈이 많아서 저렇게 한다”, “자기 금고에 넣어둔 귀중품이 많으니까 일에 앞장선다”는 등 수군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1주일 이상 잠도 못 자고 컵라면으로 끼니를 때우며 잿더미를 뒤졌는데, 한편으로 서글프기도 했어요. 모두 너무 큰일을 당하다 보니 그럴 수도 있겠다는 생각으로 수색에 전념했죠. 차츰 오해가 풀리더군요.”
처음엔 만류하던 가족들도 먼저 안전모를 챙겨주는 등 응원을 아끼지 않고 있다.
그는 요즘 남은 지역을 어떻게 안전하게 발굴할 수 있을지 고민 중이다. 철거작업과 함께 금고나 집기 등을 발굴해야 하기 때문에 그 누구도 안전발굴을 장담하기 어렵다. 신씨는 시민들의 성원에 보답하기 위해서라도 4지구 상인 모두 힘을 모아 다시 일어서겠다고 두 주먹을 불끈 쥐었다.
“흔한 말이지만, 하늘은 스스로 돕는 자를 돕는다고 하잖아요. 강인한 상인의 의지로 지금의 난관을 반드시 극복하고, 2017년을 희망의 해로 만들겠습니다. 시민 여러분의 격려와 응원을 부탁드립니다!”

윤희정 기자 yooni@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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