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한국일보 : 아름다운 사람들의 아름다운 이야기
칼럼
이철경의 인터뷰 기행 (1)전각장인 김주표달라이라마도 인정한 전각계의 숨은 고수
대구한국일보  hankookdk@hankookilbo.com
폰트키우기 폰트줄이기 프린트하기 메일보내기 신고하기
승인 2017.01.06  
트위터 페이스북 미투데이 요즘 네이버 구글 msn

작가가 작품을 완성한 후에 한쪽에 인장을 찍은 작품을 우리는 흔히 볼 수 있다. 일반적인 도장이 아닌 낙관은 작품의 화룡점정(畵龍點睛)으로 그 작가의 마지막 증표이기도 하다. 그 증표로 사용되는 낙관을 만드는 사람을 우리는 흔히 전각장이 또는 전각장인이라고 부른다. 전각 공예는 삼천 년의 역사를 가지고 있으며 특히 동양 문화권에서 많은 작품이 있다. 지금도 장인들의 예술적인 아름다움과 창조적인 전각이 문화예술분야에서 널리 사용되고 있다. 또한 돌에 문자나 문양을 새기는 전각은 우리 주변에서도 흔히 볼 수 있다.
인제 미시령 옛길 자락에 운각산방(雲刻山房)이라는 작은 공방에서 김주표 장인을 만났다. 그는 오래전 사업을 하다, 도시의 번잡함을 뒤로하고 강원도 산속으로 거처를 옮겼다. 이곳에서 사시사철 푸른 숲을 벗 삼아 돌을 깎으며 지낸다. 길을 걷다 보면 들짐승과 마주치기도 하고 간간이 도시에서 벗이 찾아오면 함께 세상사 잊고 술잔을 기울인다. 김주표 장인은 온기가 깃든 낙관을 선물하며 술을 마시고 그렇게 신선처럼 한세월을 산다고 한다. 내가 찾아간 그 날도 발목까지 눈이 쌓인 산등선에 칼바람이 윙윙거리며 불어왔다. 언덕을 오르자 운각산방이 눈에 들어왔다.

   
 

안녕하세요. 선생님. 서울에서 너무 멀리 계셔서 만나 뵙기도 힘듭니다. 가끔 서울에 온다는 소식을 들었는데 그때 만나서 인터뷰했으면 좋았을 걸요. 그동안 잘 지내셨나요?
눈까지 내린 엄동설한(嚴冬雪寒)에 뭘 볼 게 있다고 여기까지 온답니까? 날씨도 안 좋고 눈도 내리는 산골에 오시느라 고생이 많았습니다. 서울에 살 때는 먹고사느라 계절도 잊고 힘들게 살았는데 여기 내려오니까 자연을 만끽하며 계절을 느낄 수 있어서 좋습디다. 이 시인님도 이곳으로 내려오시지 그래요? 버는 것도 적지만 쓰는 것도 적어서 그리 불편하진 않을 겁니다. 마을 사람들과 함께 천렵도 즐기고 뒤뜰에 있는 텃밭에 채소를 심어 자급자족하니 돈 들 일이 많지 않아요. 쉬엄쉬엄 사는 거죠. 하하하.

좋으시겠습니다. 저야 아이들이 있어서 아직 도시에 묶여 있어야 합니다. 아이들이 다 크면 저도 선생님처럼 자연을 벗 삼아 살고 싶습니다. 올라오다 보니, 작은 돌에 ‘운각산방’이라고 각인이 되어 있던데 무슨 의미인가요?
운각산방은 나의 호이기도 합니다. 이 업을 계속하다 보니, 호가 필요하고 간판이 필요하여 어쩔 수 없이 만들었는데, 그 작은 표지석마저도 거추장스럽죠. 내가 뭐라고 이런 걸 걸고 하나 싶기도 하고…. 그러나 도시 사람들이 자꾸 묻데요. 일하려면 움막이라도 명패를 달아야 하지 않겠나. 해서 만들었지요. 운각은 “구름에 각을 파다”라는 의미를 지니고 있어요. 이 얼마나 시적입니까. 안 그렇습니까. 이철경 시인님.

아, 그런 뜻이군요. 구름에 각을 판다는 것은 돌에 새기는 일보다 허무적인 느낌이 납니다. 허공에 각을 판다는 의미는 어떤 의미일까요?
구름에 각을 판다는 것은 우리 인생사가 너무나 보잘것없다는 말이지요. 인간사 아무리 욕망하고 욕심 부려봐야 세상을 뜰 때는 아무것도 가져가지 못하잖아요. 그런데 사람들은 왜 그리 욕심을 내고 싸우고 그러는지, 보고 있으면 안타까워요. 내가 전각을 하는 것도 그 허무한 존재의 덧없음을 잊고자 함이지요. 돌에 원하는 것을 새기다 보면 세상의 모든 욕심과 번뇌도 저 떠다니는 구름처럼 사라집니다. 그리곤 한참 후에 사리(舍利)처럼 이런 낙관만이 남죠. 내 영혼의 이끌림으로 따라가다 보면, 예상치 못한 오묘한 형상이 새겨지곤 한답니다. 이 시인도 시를 쓸 때 어떠한 영감이 찰나에 스치지 않나요? 전각도 그럽디다. 하늘을 보며 낙관 주인의 이름과 그의 내력과 지금의 현실을 그리다 보면 그 사람에게 맞는 형상이 구름처럼 그려지지요. 그때 신기루처럼 잠시 보였다 사라지기 전, 순간을 포착합니다. 물론 시도 그러하겠지만. 하하하.

   
 

선생님 말씀을 듣고 보니 전각에 새긴 글의 형상도 심오한 뜻이 담겨있군요. 제가 알고 있는 손종수 시인의 낙관을 만들어주셨더군요. 그 형님의 얘기로는 선생님께서 유년시절에 아주 힘든 과정을 보냈다고 들었습니다. 유년시절과 청소년 시절을 들려주시겠어요?
나의 유년시절은 나만이 아니라 대부분의 사람이 가난하고 힘든 시절이었죠. 먹을 것도 풍족치 못하고 일상이 다 고단한 날들이었지만 그래도 사회적인 도움으로 고교까지 졸업하지 않았나 생각합니다. 더 깊게 물어보지 마, 나만 힘든 건 아니었잖아요. 하하하. 그러한 시절이 있었기 때문에 더 돌 깎는 것에 몰두할 수 있었던 것 같아요. 그때 힘든 것에 비하면 지금은 그리 풍족하진 않지만 먹고 자고 어느 정도 쓸 수 있는 여비도 있으니 다행이지요. 이제는 오래전 기억이라 자꾸 희미해지네요.
김주표 장인은 춘천에서 유년시절과 청소년기를 보냈다고 한다. 남들과 다르게 평탄치 않은 불우한 환경을 넘어선 삶의 담금질은 고난과 역경을 넘어선 작품으로 고스란히 드러나고 있다. 그의 작품 경향은 소박하고 아름답다. 낙관에 새겨진 예술적 가치에 많은 사람이 찬사를 아끼지 않는다고 한다. 그러나 어느 예술가도 그러하겠지만, 그의 삶도 여전히 금전적으로 자유롭지 않다고 한다.

선생님 이렇게 시골에서 돌만 깎다 보면 금전적 어려움에 봉착할 수 있는데 문제는 없나요?
협회나 단체에 가입하여 정보도 교환하고 금전적 이익도 추구하면 어떻겠냐고, 한국전각협회나 한국공예조합 등 제도권에 들어오라는 권유를 많이 받았지만 이렇게 산속에 은둔하며 돌 깎는 전각장이로 살랍니다. 최근 들어 전각이 대중화되면서 인터넷으로 전각사업을 하는 사람이나, 인사동에서 기계로 깎는 혼이 없는 전각을 볼 때 마음이 아파요. 나는 단지 지인의 주문에 의한 알음알음으로 돌에 온기를 불어넣지요. 비록 들쑥날쑥한 주문에 따라 생활고가 그리 평탄하지 않지만, 전각도 창작예술이니만큼, 금전적 이익에 매몰될 필요는 없다고 봐요. 창작에 집착하는 고집으로 인해 생활고는 나아지지 않을 텐데, 올곧은 예술인의 마음이 언뜻 보이는 대목이다. 경제적인 해결을 어찌하려고 대책 없이 산속에 머물고 있는가에 대한 대답도 흥미롭다. 김주표 장인의 전각에 대한 애착과 예술적 가치를 보여주고 있다.

선생님 오랜 세월을 산속에서 전각 작업 중, 어떤 인사들의 낙관을 만들었는지 궁금합니다. 지금까지 수없이 많은 작업을 해왔을 텐데, 기억에 남는 전각이 있다면 어떤 분의 것이 있을까요?
체계적으로 정리해놓지 않아 말할 수 없으나 바로 생각나는 사람은 티베트의 정신적 지도자인 달라이라마가 있을 수 있고, 하창수 화백, 여행 작가 이호준, 삼성정밀 성인희 대표와 이소연 우주비행사, 탤런트 구혜선 등 많은 기업인과 문화예술인의 전각을 주로 작업해 왔지요. 그중엔 이름만 대면 알만한 작가나 정치가도 있지만 그분들에게 누가 될까 해서 거론하지 않는 게 좋을 듯합니다. 뭐 40년지기 형으로 가깝게 알고 지내지만 서로 다른 분야의 길을 가고 있으니 서로 지지해주고 격려하는 사이겠지요. 하하하.

선생님은 질문을 피해 가는 답변을 간간이 하시는데 다른 걸 묻겠습니다. 그렇다면 선생님께서 사용하는 돌은 주로 어디서 구입하시는 건가요? 이 작품들의 돌이 독특하고 일반 도장집에선 볼 수 없는 돌들이 많이 있는 것 같습니다. 말씀해주시겠어요.
내가 사용하는 돌은 대부분 우리나라에서 찾아온 돌이랍니다. 수입해 오는 중국 돌이 값도 싸고 구매도 쉽지만 우리 돌이라야 칼 맛이 나고 미려하고 아름다운 형상을 깎을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뭐 지극히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선생은 운각산방 한켠에 쌓여있는 돌들은 대부분 직접 전국 각지를 떠돌며 구입한 돌이라고 했다. 처음 재료부터 좋은 돌을 고르려는 그의 눈빛이 쌓인 돌에 반짝거린다. 장인의 작업장에는 작업을 마친 돌가루가 아궁이 속 재처럼 수북이 쌓여 있었다. 저 많은 돌가루를 마시며 한 땀 한 땀 칼끝으로 형상을 만드는 모습에 일반인은 쉽게 다가설 수 없는 고댄 일이리라. 장인의 웅크린 등 너머 그의 손에 따라 돌가루가 낡은 알전구에 안개처럼 퍼져나간다. 전각을 하기 전, 좋은 돌을 선별하여 깎고 자르는 일은 온몸을 써서 만드는 작업이라 보기만 해도 힘든 노동임을 알 수 있었다. 낡은 등 앞에 앉아 몰입하는 웅크린 곰 같은 저 모습으로 인고의 세월을 견뎠으리라.
그의 작업장에는 돌무더기 옆에 각종 조각칼과 사포와 낙관을 고정하는 기구 등, 하얀 돌가루가 세월을 말해주는 듯 수북이 쌓여 있었다. 그 사이로 작은 책꽂이에 여러 시집이 놓여있고 이제는 누구도 거들떠보지 않는 두꺼운 양주동 박사의 한글 대사전과 전각에 필요한 각종 책이 빼곡히 꽂혀있었다. 전각장이의 작업장은 이렇게 칼과 돌만이 아니라 그에 따른 여러 가지 모든 것이 갖추어져야만 가능하리라. 그래도 가장 필요한 것은 투박한 김주표 장인의 손이리라. 그 손으로 자신의 혼을 돌에 새기며 온기를 불어넣는 장인 정신이 예술의 경지까지 끌어올림을 느낄 수 있었다. 그의 작품엔 다른 전각장이가 파놓은 낙관과 다르게 차가운 돌이라고 볼 수 없는 온기가 있다. 곡선의 미학을 살려 결을 흩트리지 않고 돌의 특성에 맞게 조각한 전각은 차마 하찮은 돌이라고 치부할 수 없었다. 그 온기의 결과는 김주표 장인이 걸어온 삶과 예술적 감수성이 어우러져 나오는 독특한 창작물이었다.

글․사진= 시인 이철경 poem@korea.ac.kr

대구한국일보의 다른기사 보기  
폰트키우기 폰트줄이기 프린트하기 메일보내기 신고하기
트위터 페이스북 미투데이 요즘 네이버 구글 msn 뒤로가기 위로가기
이 기사에 대한 댓글 이야기 (0)
자동등록방지용 코드를 입력하세요!   
확인
- 200자까지 쓰실 수 있습니다. (현재 0 byte / 최대 400byte)
- 욕설등 인신공격성 글은 삭제 합니다. [운영원칙]
이 기사에 대한 댓글 이야기 (0)
최근인기기사
1
2020년 전국체전 유치전 가열
2
“한 자리에서 포켓스톱 3개가 잡혀요”
3
이 사람 - 윤성민 선린협동조합 이사
4
경산교육청, 16ㆍ17일 교복나누기
5
습관성 유산, 불임 건강하지 않은 자궁에서 비롯해
6
경북 동해안에서 선원 실종 등 해양사고 잇따라
7
계명대 약대, 3년 연속 약사시험 전원 합격
8
영덕 축산항 “대게, 5만원 밑으로 즐기세요”
9
“바다 골칫거리 불가사리 싹 잡아 비누 만들고 있죠”
10
문경, 전국찻사발공모전… 내달 11~19일 접수
신문사소개 | 구독안내 | 광고안내 | 독자정보서비스 | 기사구매문의 | 사업제휴안내 | 개인정보취급방침 /청소년보호정책 | 이용약관 | 정정보도신청 | 채용안내 | 고충처리
대구시 북구 침산로 73  대구도시공사 8F | ☎ : 053-755-5881 | 인터넷신문 등록번호 : 대구,아00174 | 청소년보호책임자 : 김광원
인터넷 대구한국일보의 모든 콘텐츠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습니다.
Copyright © 2012 대구한국일보 : 아름다운 사람들의 아름다운 이야기. All rights reserved. mail to hankookdk@hankookil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