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잊지 않기 위하여, 최소한 인간이기 위하여

  • 입력 2016.12.07 00:00
  • 수정 2016.12.15 18:01
  • 기자명 김광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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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힘 월드뮤직앙상블 ‘비아트리오’ 대표

▲ 송힘 ‘비아트리오’ 대표

나는 문화기획자이다. 대학에서 공연기획과 매니지먼트를 가르치고 있고 많은 음반과 공연을 기획했고 하고 있다.

남들이 들으면 자랑하는 소개 글처럼 볼 수 있겠지만 이 모든 일은 이제 나에겐 그리 어렵지 않은 일이다. 워낙 많이 해봐서다. 근데 지금 이 지면에 이 글을 쓰는 것이 너무 어렵다.

그래도 이왕 쓰기로 한 거 잘 쓰진 못해도 진심으로 성실하게는 써보자는 마음으로 이전에 실렸던 칼럼도 찾아 읽고 다른 잡지의 칼럼들도 읽어 봤다. 그래서 알게 된 좋은 칼럼의 원칙 두 가지. (사실 이 두 가지 원칙은 내 기준일 뿐이다.)

첫 번째는 자신이 겪은 체험 속에서 발견하고 깨달은 소소한 이야기일 때 잘 읽히고 몰입이 된다. 두 번째는 담백하고 진솔한 문체. 그래서 바로 적용해 봤다.

요즘 내 주변에서 일어나는 일들이 뭐가 있을까? 먼저 키워드만 나열해 보자. 최순실, 박근혜, 예술인블랙리스트, 시국선언, 11월 12일 범국민행동. 처음 쓰는 칼럼에 문장력도 없으면서 이런 거대한 담론을 가지고 글을 써야 하나. 아니다. 처음 쓰는 글인데 가볍게 가자. 다시 주변의 키워드를 떠올려본다. 유럽투어, 브렉시트, 독일, 비덱, 정유라, 덴마크, 승마대회……. 아! 피해갈 수가 없다. 내가 ‘이럴려고’ 칼럼 쓴다고 했나? 점점 혼이 비정상이 되어가는 것 같다. 이렇게 된 거 그냥 써보자. 그래도 좋은 글쓰기의 원칙은 지키며 써보자.

- 그 이후는 그 이전과 전혀 같지 않았다

2014년 4월 16일 세월호 사건 이후 대한민국 문화계는 멈췄다. 모든 공연과 행사가 취소되었고 대한민국전체는 장례식장이 되었다. 그런 분위기 속에서 문화기획자인 나는 겨울 눈보라속의 베짱이가 된 것 같은 자괴감이 들었다. 하지만 언제나 생계는 모든 것을 이겨낼 힘을 준다. 8월 쯤 조심스럽게 공연들이 행사들이 다시 진행되기 시작했다. 하지만 이전과 같지 않았다. 세월호는 이전의 어떤 수많은 사건 사고와는 달랐다. 사람들이 잊지 않고 기억하기 위해 갖은 노력을 하기 시작했다. 특히, 2014년 문화, 예술의 기획은 세월호를 잊지 않고 기억하는 문화기획과 그것이 아닌 기획으로 나누어진다고 말할 수 있다.

그렇게 잔인한 4월을 보내고 2015년 봄을 맞이했다. 근데 그 봄과 함께 메르스도 왔다. 2년 연속 봄마다 찾아온 국가적 재난 속에 문화, 예술계에 있던 우리는 2016년 봄을 두려워하게 되었다. 2016년 봄이 찾아오고 3년 만에 아무 일 없었다. 하지만 우리도 2년의 경험으로 아무 일도 만들지 않았다. 아무 일도 하지 않았다. 우리는 3년 연속 국가적 재난 속에 있었다. 그렇다고 아무런 사건이 없었던 건 아니다. 총선이 있었고 총선은 여소야대를 만들었다. 그렇게 시작됐다.

- 아무리 오래 걸려도 잊지 않고 기다릴 것

“왜? 우리는 이런 일을 겪어야 했나에 대한 대답 찾기가…….”

11월 14일 이 글을 쓰는 동안에도 정치권과 검찰, 언론들은 숨 가쁘게 자신들의 이익이 우선이 되는 대답들을 찾아가고 있다. 그리고 그 모든 것을 보며 국민들도 대답을 찾고 있다. 국민이 원하는 대답은? 진실이다. 진실을 알고 싶다. “왜? 우리에게 이런 일이 생겼는지”에 대한 진실을 알기 원한다. 그 대답이 너무도 어처구니없고 심지어 잔인하다고 해도 말이다.

오래 전부터 통용되는 말이 있다. ‘한국인들은 잘 잊는다’. 많은 정치인들과 수구 언론, 재벌들이 나쁘게 이용해 왔다. 세월호 이후 우리는 스스로에게, 서로에게 이렇게 이야기했다.

“잊지 않습니다. 기억하겠습니다.”

그렇게 잊지 않고 기억함으로 우리는 진실을 요구하고 스스로 밝혀내는 힘을 가지게 되었다. 아직 진실이 모두 밝혀지려면 한참이나 남았다. 아무리 오래 걸려도 잊지 않고 기다릴 것이다. 11월 12일 그날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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