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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쓰는 서향의 살아가는 이야기 (21)

마주 보는 눈 속에 사랑이 있다

  • 입력 2016.11.16 00:00
  • 수정 2016.11.28 16:03
  • 기자명 대구한국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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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남선/<문학세계> 신인문학상으로 등단 (2004년)대구수필문학회 회원성광고등학교 교사

집에 들어서자마자 전등의 스위치를 켠다. 싸늘한 정적이 낯설어 소파 위에 던져진 리모컨을 들고 습관적으로 텔레비전을 켠다. 이른 아침부터 늦은 밤까지 우리는 전깃불 아래에서 기계 소음에 묻혀 살아간다. 찬란한 문명의 이기(利器) 속에서 그들 중 어느 하나만 없었어도 어쩔 뻔했을까 싶도록 그들을, 사랑한다.
세상은 매일 해가 뜨고 지는데도 우리는 어떤 얼굴로 아침이 밝아오고 어떤 얼굴로 어둠이 내리는지 느낄 수 없는, 늘 환한 불빛 아래 산다.
마지막 주 금요일은 전깃불을 켜지 않는 날
두 아이가 초등학교를 다닐 때 달력을 펴놓고 우리 가족만의 특별한 날을 정해 보기로 했다. 매주 월요일은 ‘텔레비전, 컴퓨터를 켜지 않는 날’, 매주 수요일은 ‘엄마와 큰딸 채영이가 함께 자는 날’, 매달 마지막 주 금요일은 ‘전깃불을 켜지 않는 날’ 등이다.
일주일에 한 번 혹은 한 달에 한 번쯤은 옛날처럼 희미한 촛불 아래서 밥을 먹고 텔레비전이 없는 고요 속에서 동생과 언니의, 그리고 엄마와 아빠의 순수한 목소리를 들어보기로 했다.
마지막 주 금요일이 되었다. 우리는 마음을 설레며 어둠이 내리기를 기다렸다. 귀가하여 저녁밥을 준비할 때는 그래도 밖이 제법 환하더니 우리가 밥을 먹을 때는 창 밖이 조금씩 어두워져 갔다. 우리는 집안으로 들어서는 어둠을 보며 준비해 둔 촛불을 켰다. 집에 들어서면 습관적으로 전등 스위치를 켜고 잠이 들 때에야 불을 끄는 우리의 삶에는 숨어있던 어둠이 서서히 제 모습을 드러내는 걸 볼 여유가 없었다.
촛불을 켜놓으니 아이들은 신이 나는지 목소리가 점점 커져갔다. 우리는 탁자 위에 여러 개의 촛불을 밝히고 둘러앉았다. 촛불 건너 희미하게 보이는 서로의 얼굴을 보며 그저 재미있고 즐겁기만 했다.
“엄마가 어렸을 때는 전기가 안 들어오는 날이 많았단다. 정전(停電)이 잦았었어. 그럴 땐오늘처럼 초 한 자루를 켜놓고 둘러앉아 전깃불이 켜지기를 기다렸었지.”
아이들은 내 말을 이해하지 못했다. 그냥 참 희한하고 재미있는 일이라고 여기지 않을까.
독수리와 강아지, 오리가 벽을 누비고
그날 밤 우리 집 거실 벽에는 손으로 만든 독수리가 날개를 퍼덕거리며 날아올랐고 강아지가 ‘왈왈’ 짖으며 온 벽을 누비고 다녔다. 입이 뾰족한 여우 옆에는 오리가 헤엄쳐 다니며 함께 놀았다. 내 손은 주전자가 되고 아이의 손은 컵이 되었다. 그렇게 양초가 모두 몽당연필처럼 작아질 때까지 우리는 그림자놀이를 하며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놓치며 살아온 소중한 것들
어둠 속에서 더 바싹 다가앉아 있던 아이가 말한다.
“엄마, 엄마의 눈 속에 내가 있어.”
마주 보는 나의 눈동자에 아이의 얼굴이 비쳤나 보다.
“그래, 눈 속에는 그 사람이 사랑하는 사람이 살고 있단다. 네 눈 속엔 엄마가 있네!”
“그럼, 아빠 눈에는?”
아빠 눈을 빤히 들여다보던 아이가 말한다.
“와! 내가 있네. 아빠도 나를 젤 사랑하나 봐.”
천진한 아이와의 대화에서 행복해지는 답 하나를 찾았다.
그렇다, 마주 보는 눈 속에는 사랑이 살고 있었다. 그동안 우리는 문명의 이기(利器)들에게 소중한 것을 많이 빼앗기며 살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텔레비전 앞에 일렬로 앉아, 혹은 컴퓨터를 향해 돌아앉아 있는 동안 우리는 참 많은 걸 잃었다.
느끼지 못하며 살아온 것,
눈 맞추며 하지 못한 것,
듣지 못한 작은 소리들이 참 많았다.
서서히 어둠이 내리는 초저녁 풍경, 일상에 지친 아이의 작은 눈동자, 촛불 건너에서 들려오는 남편의 세월 묻은 목소리, 베갯머리에서 맡아보는 아이의 체취와 작은 속삭임, 그리고 사랑한다는 말 한마디. 함께 하는 그 순간순간이 우리 인생에 얼마나 찬란하고 소중한 기억이 될지 모르고 산다.
마주 보는 눈 속에 사랑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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