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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본영 뮤지컬 삼국지

한일 뮤지컬 선생님들이 중국 상해에 모인 이유

  • 입력 2016.10.01 00:00
  • 수정 2016.10.13 17:56
  • 기자명 대구한국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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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홍본영은 한중일 모두에서 주연급으로 활약하고 있는 뮤지컬 배우다. 일본을 대표하는 뮤지컬 극단 ‘사계’에서 첫 주연을 맡았고, 한국을 거쳐 지금은 중국 최고의 창작 뮤지컬 ‘상해탄’에서 여주인공 역을 맡아 열연 중이다.

얼마 전부터 중국 복단대학 상해시각예술학원에서 학생들에게 뮤지컬을 가르치게 됐다. 내가 맡은 분야는 뮤지컬 제작 실습과 보컬이다.
10월 말에는 큰 행사를 앞두고 있다. 학생들과 함께 우전 희극제에 참여하기로 했다. 우전은 중국인들이 가고 싶어 하는 10대 관광지 중의 하나로, 야경이 아름답기로 유명하다. 이 아름다운 우전에서 ‘위키드’ 갈라콘서트를 공연하기로 했다. 이 갈라콘서트는 브로드웨이 위키드 컴퍼니로부터 부탁을 받아 내년에 중국에서 열리는 위키드 오리지널 버전의 홍보를 겸해 펼치는 공연이다.
이 공연을 위해 한중일 삼국의 뮤지컬 전문가들이 뭉쳤다. 우선 일본 ‘사계’ 출신의 중국인 스루(石路) 교수가 총 연출을 맡고, 내가 뮤지컬 노래와 연기를 지도하고 있다. 안무는 일본의 최고 안무 선생님으로 통하는 마치나가(町永) 선생이 10일간 학교를 방문해 뮤지컬 댄스 특강을 했다.
쟁쟁한 선생님들이 나선 덕일 것이다. 학교 관계자들과 교수들이 연습과정을 보고 학생들이 ‘우전 희극제’에서 펼칠 활약이 기대 된다고 입을 모으고 있다. 이런 일련의 과정을 통해 중국의 어린 뮤지컬 배우들이 새로운 도약의 기회를 얻을 것으로 확신한다.

아시아 뮤지컬의 저력
중국, 그중에서도 대도시의 분위기는 충분히 무르익었다. 개화 직전이라는 느낌이 든다. 며칠 전, 상해에서 특별한 공연을 보았다. ‘Spring Awakening’라는, 브로드웨이 작품이었다. 한국과 일본에서도 한국어와 일본어로 각각 공연된 바 있다. 그런데 상해 공연에서는 중국인 배우들이 출연하는데 대사는 중국어였고, 극중 노래는 모두 원어였다. 노래가 나올 때는 자막을 띄웠다. 순간 ‘관객들이 혼란스럽지 않을까’, ‘극의 몰입도가 떨어지지 않을까’, 걱정을 했다. 결과적으로 기우였다. 관객 반응이 너무도 뜨거웠다. 중국어 대사를 할 때는 이야기의 흐름에 집중했고, 영어 노래가 흘러나올 때는 오리지널 공연을 보는 감흥을 느끼는 듯했다.
나로선 놀라운 경험이었다. 첫째로 외국어를 능숙하게 구사하는 중국 배우들의 역량에 놀랐고, 두 번째로는 관객들의 유연한 마인드에 놀랐다. 이는 분명 중국 뮤지컬의 저력이다. 아직 많은 중국인 뮤지컬 종사자들이 “한국을 배우고 싶다”고 하지만 이들의 놀라운 발전 속도를 보고 있으면 얼마 안 있어 우리와 어깨를 나란히 할 것 같다는 느낌을 받았다.
아시아의 뮤지컬이 일정한 궤도에 오르고 나면 규모나 질적인 면에서 서구의 뮤지컬 시장과 견주어도 결코 뒤지지 않을 것이다. 아시아가 인정을 받으면 국적과 상관없이 오디션에 도전해 무대에 오르는 영미권 배우들처럼 아시아 배우도 세계를 무대로 활동하게 되지 않을까. 이미 한국의 배우들이 웨스트앤드나 브로드웨이에 진출하고 있긴 하지만, 아직은 그 수가 많지 않다는 생각이 든다.

문화가 세상을 행복하게 하는 이유
문화가 성장하고 발달하는 것은 언제나 희망적인 일이다. 문화가 융성해야 세상이 행복해지기 때문이다. 특히 이웃한 나라들끼리 서로를 도와가며 발전을 도모해가는 것은 한 분유야 문화가 발전하는 것 이상의 의미가 있다.
나는 학생들에게 문화의 역할에 대해 이렇게 설명한다. 여기 자동차 한 대가 있다. 자동차의 가장 핵심적인 기능은 속도와 안전이다. 여기서 기능에 속하는 속도는 경제와 정치일 것이다. 그렇다면 문화는? 나는 안전에 속한다고 생각한다. 훌륭한 예술 작품이나 음악이 사람의 마음을 부드럽게 만드는 데서 알 수 있듯이, 문화는 경쟁이 핵심인 경제나 정치의 강직한 부분을 완화시키는 범퍼 같은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안전성이 담보되지 않는 속도는 위험하다. 문화가 정치, 경제가 함께 가야 한다. 국제 관계에 있어 문화는 자칫 딱딱하거나 경쟁으로만 치닫기 십상인 국제 관계에 부드러운 윤활유와 완충제 역할을 한다. 국가 간의 교류를 더 유연하고 활발해하게 만들어주는 것이다.
나는 한중일의 전문가들과 중국의 학생들이 머리를 맞대고 준비하고 있는 ‘위키드’ 갈라콘서트가 상징적인 무대라고 될 것이라고 믿는다. 이 콘서트가 한중일의 합작품이라는 것을 알게 되면 관객들 모두 마음에 이웃한 나라들에 대해 부드러운 범퍼 하나씩 품게 되지 않을까, 하고 생각한다.
우전 갈라콘서트는 시작이다. 하고 싶고, 또 할 수 있는 일이 너무도 많다. 당장 내년부터라도 한중일 합작 뮤지컬 교육 시스템을 만들고 싶다. 중국 뮤지컬과 학생들이 한국에 일정기간 체류하면서 한국 배우들과 함께 연습을 하고 딤프와 같은 국제적인 무대에 오르게 된다면 어떨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중국의 어린 배우들이 한국 땅에서 얻어가는 무대 경험은 두 나라 혹은 두 도시 간의 특별한 우정의 바탕이 될 것이다.
경제든 문화든 경쟁과 협력이 성작 동력이다. 중국과 한국이 과거처럼 서로를 자극해 문화를 융성하게 발전시킨다면 아시아의 정치와 경제, 문화가 세계의 중심에 우뚝 서는 시대가 다시 올 것이다.
아직은 작은 움직임이고, 아이디어에 불과한 부분도 있지만 이런 작은 노력들이 쌓이고 쌓여 어느 순간 티핑포인트를 만나면 우리가 상상하기도 힘든 엄청난 일들이 일어나리라고 믿는다. 얼마든지 가능한 일이다. 인내를 가지고 꾸준히 노력한다면 말이다. 깊고 도도한 문화의 물결이 한중일을 넘어 아시아 전체를 연결시키고 아시아의 담장 너머까지 그 영향력을 확대하는 것, 생각만 해도 가슴 벅찬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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