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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화 교수의 유아 교육 이야기

나눔과 배려를 아는 아이

  • 입력 2016.09.27 00:00
  • 수정 2016.10.13 12:02
  • 기자명 대구한국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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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정화 수성대학교 유아교육학과 교수

지난겨울의 이야기입니다. 제 딸의 산후조리 관계로 다섯 살 난 외손녀가 집에 당분간 머무르면서 제가 컨설팅하는 어린이집에 다니게 되었습니다. 제 외손녀가 들어간 교실에는 미미한 자폐증을 가진 아이가 한 명 있었습니다. 그 아이는 선생님이 정성껏 정리해둔 장난감을 싹 쓸어버리거나 교실 안을 쉴 새 없이 배회했고, 때로 의성음을 계속 내면서 하루를 보내곤 하였습니다. 그런데, 그 아이는 비상한 면도 있었습니다. 오랜 시간을 모래놀이에 몰입하면서 상상을 초월하는 모래집을 만들기도 하였고 음감에 특별히 민감했으며, 매우 창의적인 그림을 곧잘 그렸습니다.
아무튼, 그 아이는 교실 안에서 특별한 시선과 관심을 받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선생님은 그 아이로 인해 다른 아이들의 수업이 제대로 되지 않을까 늘 노심초사하면서 그 아이의 행동을 제재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지금 수업을 해야 하니까 이 교구를 가만히 두어야 해” “이 물감을 쏟으면 안 돼” “제 자리에 앉아서 밥 먹자” 등으로 연이어 잔소리를 하다가 급하게 제재할 때는 선생님의 목소리가 커지기도 했습니다. 교사직을 그만두겠다고 하소연을 하기도 하였습니다.
그런데, 하루 이틀이 흐르면서 제 외손녀에게 변화가 일어났습니다. 제 외손녀가 그 아이의 행동을 따라하는 거였습니다. 그 아이로 인해 우리 외손녀가 뭔가 손해 보는 듯한 느낌이 엄습해 왔습니다. 처음에는 외손녀에게 그렇게 하지마라고 하다가 며칠 뒤에는 진지하게 제 외손녀에게 물어보았습니다.
“안 하던 행동을 왜 하니?”
그러자, 외손녀가 이렇게 말했습니다.
“영철(가명)이가 선생님한테 꾸중들을 텐데 그 꾸중을 나눠들으려고. 영철이가 불쌍해. 영철이를 도와줘야해!”
정말 아이다운 발상이었습니다. 그러고 보니, 그 아이가 뭔가 잘못 한다싶으면 선생님의 시선을 그 아이로부터 흐트러지게 제 외손녀가 얼른 똑같은 행동을 했습니다. 제 손녀는 속으로 선생님이 그 아이를 향해 제재할 수는 있지만 감히 자기가 근무하는 ‘어린이집 대표이사’의 외손녀한테는 함부로 할 수 없고(^^), 따라서 그 아이를 꾸중할 명분도 없어진다는 ‘영악한’ 생각을 했던 것입니다. 다섯 살 아이로서는 최선의 나눔과 배려의 정신을 발휘한 겁니다.
어린 아이뿐만이 아니라 대학생의 경우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제가 소속된 학과에 청각장애학생이 입학하게 되었습니다. 청각문제로 발음도 정확하지 않아서 이 학생은 여러 사람에게 의존하면서 학업을 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1학년 때는 그럭저럭 그 학생을 도와주려고 애쓰던 학생들이 시간이 흐름에 따라 점점 힘들어서 포기하다가, 2학년 때는 아예 그 학생을 피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다 특별한 사건을 계기로 그 학생에 대한 태도가 바뀌었습니다. 한번은 제가 학생들에게 팀별 과제를 내어주고 발표와 자체평가를 하도록 했습니다. 학생들은 팀의 성과가 점수와 연결될 것이란 생각에 그 학생과는 절대로 같은 팀이 되지 않으려고 무진 애를 썼습니다. 그 학생은 지난한 실랑이 끝에 결국 한 팀에 들어가게 되었습니다.
청각장애 학생이 소속된 팀의 학생들은 그 학생의 부족한 점을 보완하기 위하여 갖은 노력을 했습니다. 무엇보다 개개인의 특성과 능력을 보다 꼼꼼하게 파악했습니다. 한명 한명 제대로 역할을 해야 최고의 결과물을 낼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었습니다. 그 과정에서 그 학생의 장점도 발견했습니다. 특히 그 학생은 손재주가 좋아서 교수매체를 너무나 빼어나게 만들어냈습니다. 그 팀이 좋은 성과를 내는데 혁혁한 공을 세운 것이었습니다.
과제가 끝난 후, 학생들은 자체평가를 하면서 “누구에게나 맹점이 있고 특출한 점이 있는데 각자의 것이 모여서 최고의 결과를 만들어낼 수 있어서 좋았고, 특히 서로를 잘 알게 되어 기쁘고, 단합하고 합심하면서 서로 사랑하게 되었다” 하였습니다.
계곡이 깊으면 그 만큼 산이 높습니다. 그것이 자연의 조화이겠지요. 사람도 마찬가지입니다. 누구는 어떤 면이 우뚝하고 또 누구는 어떤 부분이 많이 부족합니다. 하지만, 그런 높음과 깊음, 장과 단이 어우러져 조화로운 세상이 완성됩니다. 모든 골짜기를 메우고 산을 낮추어 평평하게 만들어버린다면 우리에게는 그저 밋밋한 평원이나 사막만 남을 것입니다. 비탈진 숲을 타고 내려오는 시원한 바람이나 골짜기의 깊은 샘, 그리고 다양한 환경에서 온갖 식물과 생물들이 조화롭게 살아가는 숲을 잃게 될 것입니다.
우리가 사는 세상에 대해서도 그렇게 생각해야 되지 않을까 합니다. 각각의 성향과 개성, 깊고 높은 재능과 능력이 어우러져 웅숭깊고 온전한 세상이 완성된다고 말입니다. 더불어, 장애통합교육에 대해서도 학부모님들의 더 큰 이해와 관심이 필요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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