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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일현 교육칼럼

적당한 거리와 학업 생산성

  • 입력 2016.09.27 00:00
  • 수정 2016.10.13 12:00
  • 기자명 대구한국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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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성교육문화센터이사장, 시인 윤일현

집에 가만히 있으면 불안하기 때문에 여기저기를 기웃거리며 다닌다는 수험생 엄마에게. 취미활동이나 운동을 해 보라고 했다. 공부하는 아이와 열심히 일하는 남편에게 미안해서 그렇게는 못한다고 말했다. 그렇다면 오전은 학교 앞에 가서 아이를 생각하고, 오후에는 남편 직장 앞에 가서 남편을 생각하며 시간을 보내면 마음이 편하지 않겠느냐고 농담을 했다. 그 어머니는 실제로 학교 앞에서 기도를 하며 서성거려 본 적이 많다고 했다.
마흔이 넘은 시골 출신의 남자들은 어린 시절 동네 악동들 끼리 장난삼아 남의 과일을 따먹는 서리를 해 본 경험이 있을 것이다. 함께 모의를 하고 실행하려는 순간 한 친구가 가담을 거부하면 나머지는 그 녀석을 설득하거나 협박하여 같이 행동 하든지, 아니면 같이 포기 했다. 모두가 ‘같이’ 가담한다는 공범의식이 서로를 신뢰하게 하고 마음 편하게 했다. 그 의리와 공범의식은 훗날까지 가슴 훈훈한 유년의 추억으로 남아 있다.
수능 시험일이 다가올수록 교실은 더욱 소란스러워 진다. 공부할 양은 많은데 시간은 없다는 생각에 모두가 초조하고 불안하기 때문이다. 고통이나 힘겨움이 감당할 수 없을 때는 도피하거나 잊고 싶다. 잠을 자거나 친구끼리 같이 떠들면 일시적으로 공부의 부담을 잊을 수 있다. 망해도 같이 망한다는 생각과 동병상련의 진한 동지애가 마음의 위안을 주는 것이다. 학생들은 가장 현명한 행동이 무엇인지를 깊이 생각해보아야 할 것이다. 후반부로 갈수록 점점 심해질 소란한 분위기에 휩쓸리지 않는 학생이 거의 예외 없이 입시에서 성공한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
어머니는 자녀의 고통과 불안을 언제나 함께 하고 싶어 한다. 민감한 어머니는 관심과 사랑이 지나쳐서 아이보다 먼저 불안해하고 아이보다 먼저 지친다. 냉정하게 생각해 보자. 아이가 불안해하고 조급한 마음을 가질수록 부모는 괜찮다고 말하며 어깨를 툭 쳐주는 여유를 보여 주어야 한다. 이런 생산적인 격려를 잘 하기 위해서는 적극적인 노력이 필요하다. 밑도 끝도 없이 아이를 따라다니기 보다는 차라리 책을 읽거나 등산을 하며 즐겁고 건강한 생활을 하려고 노력해야 한다. 자녀는 엄마가 자신의 일에 몰두하는 모습을 볼 때 엄마를 인정하고 존경하게 된다. 엄마가 자녀와 함께 불안해하는 것은 교실에서 같이 떠들고 노는 행위와 다를 바 없는 비생산적인 ‘같이’이다.
공부는 육상 트랙 경기를 닮고 있다. 트랙 경기는 자기 자신과 시간을 두고 벌이는 고독한 싸움이기에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더없는 긴장과 숨 막히는 스릴을 느끼게 한다. 아무리 선수와 가까운 사람이라도 응원은 멀리 관중석에서 해야 한다. 입시공부는 자녀와 부모가 일정 거리를 나누어서 뛰는 계주가 아니다. 입시공부는 개인 기록경기처럼 ‘같이’보다는 ‘따로’를 당연시하고 중시할 때 좋은 결과가 나온다. 윤일현(지성교육문화센터이사장․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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