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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본영 뮤지컬 삼국지

황치열 신드롬을 보며 '슈퍼한류'를 꿈꾼다

  • 입력 2016.05.14 00:00
  • 수정 2016.06.22 18:28
  • 기자명 대구한국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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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뮤지컬배우 홍본영

중국에 다시 한류 열풍이 거세다. 뮤지컬 배우인 나에겐 황치열의 인기가 가장 와 닿는다. 그는 ‘뱅뱅뱅’을 부르면서 ‘황쯔리에 신드롬’을 일으켰다. 현지 중국 친구들에게 왜 황치열이 좋은지 물었다. 어린 친구들은 대부분 “노래도 잘하고 춤도 잘 추는데 잘 생기기까지 했잖아요!”하고 말했다. 가장 솔직한 답이라 생각한다. 중국 배우들과도 황치열 이야기를 해봤다. 그들은 배우의 능력, 인기 요인, 대중의 심리 등에 관심이 많기에 좀 더 구체적인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얼굴이 꽃미남인데다 목소리에 애절함이 있다. 애절함에 매료될 때 쯤 폭발적인 가창력으로 관중을 놀라게 하고, 놀란 가슴을 진정시키기도 전에 기대하지 않았던 댄스로 관중의 호흡이 곤란할 지경에 이르게 한다.” 황치열이 대륙의 스타로 자리 잡은 이유를 정확하게 지적한 듯하다. 그는 남들이 하나도 하기 힘든 것을 두루 다 잘해냈다. 노래, 춤, 연기력, 외모 등 3박자 이상의 요소들을 고루 갖춘 것이다. 한 분야에 전문가가 되기 위해서는 만 시간이 필요하다고 한다. 계산해보면 하루 3시간씩 10년이 걸린다. 황치열은 그 모든 것을 능숙하게 해내기 위해서 얼마나 긴 시간을 사투를 벌이듯 연습했을까. 내가 몸담고 있는 뮤지컬 역시 그 네 가지 요소를 다 갖추어야 하는데, 한명의 배우가 그걸 다 잘해내기란 결코 쉽지 않다. 나는 춤이 가장 힘들었다.

3일 동안 등에 자를 꽂고 살았던 이유
나는 극단 사계에서 배우 훈련을 받았다. 사계는 65년 이상의 역사를 가진 극단으로, 배우를 훈련시키는 노하우가 풍부하고 치밀하다. 배우마다 무엇이 부족한지를 파악해 무대에 설 수 있을 만큼 반복 훈련시킨다. 여러 훈련 중에서 나는 ‘신체 훈련’이 가장 힘들었다.
사계에서는 오디션에 합격해 단원이 되면 의무적으로 오전마다 발레와 재즈레슨을 받도록 했다. 한국에서 성악을 전공한 나는 노래 외에는 별 관심이 없었다. 그런 내게 아침 신체 훈련은 너무 귀찮고 힘들었다. 마음이 흔쾌하지 않아서인지 인대가 늘어나고 근육이 파열되는 부상도 겪었다. 가장 힘들었던 부분은 일본인 친구들 앞에서 춤을 춰야 하는 순간이었다. 피노키오처럼 팔다리가 따로 노는 내 모습이 너무 부끄러워 수업 후에 혼자 남아 우는 날도 많았다. 왜 이런 훈련을 시키는지 극단 관계자들이 원망스러웠다. ‘신체 훈련’의 필요성을 완전히 깨닫게 된 것은 배역을 받아 연습을 할 때였다. 어느 날, 극단의 대표이자 연출가인 아사리 게이타 선생님이 리허설을 보다가 나에게 다가와 이렇게 물었다.
“발레 열심히 하는가?”
내가 우물쭈물하자, 그는 나를 돌려세우더니 1미터가 넘는 자를 내 옷 안으로 스윽 집어넣었다. 자가 허리에 닿았다. “머리부터 꼬리뼈까지 그 자에 등을 붙이고 생활하라”고 했다. 발레 수업을 하거나 작품 리허설 할 때, 밥먹고 복도를 걸을 때도. 다음 날, 상반신 마비가 왔다. 목도 안 돌아가고 로봇이 된 것처럼 몸이 뻣뻣해졌다. 내일까지 해보고 너무 힘들면 한국으로 돌아가야지, 하는 생각까지 했다. 이를 악 물고 견뎠다. 삼 일째 되는 날, 선생님이 리허설에 들어와서 자를 뽑았다. 그런데 신기한일이 벌어졌다. 자가 없는데도 자세가 변하지 않았다. 조금만 흐트러져도 내 스스로가 불편해서 견딜 수가 없었다. 그 순간 나는 춤을 비롯한 신체 훈련이 배우에게 반드시 필요한 과정이란 확신을 가지게 되었다. 지금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은 과정이라는 생각에 틈날 때마다 후배와 제자들에게 “무용과 춤을 열심히 배우라”고 조언한다.

한류의 가장 확실한 토대는 바로...
우리는 전반적으로 몸을 움직이는 교육을 너무 등한시한다는 생각이 든다.  그런 까닭에 사계에서도 한국 출신 단원들이 공통적으로 신체 훈련을 어려워했다. 반면 일본인 단원들은 어릴 때부터 예술 교육을 받은 까닭에 발레나 재즈가 낯선 분야가 아니다. 일본뿐 아니라 외국 배우들은 어릴 때부터 기본
교육으로 예술 교육을 받은 까닭에 신체 표현을 자유롭게 한다. 그들에게는 춤이 낯선 분야가 아닌 것이다. 한국 배우의 경우는 무용 전공자들을 제외하면 신체 훈련을 어려워한다. 나는 문화 공연계의 한류를 지속시키려면 문화예술이 보편적인 교육으로 자리 잡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가까운 미래에 한중일 삼국의 문화가 협력하여 함께 꽃을 피울 날이 올 것이다. 말하자면, 중국의 큰 인력과 시장, 일본의 세밀함, 그리고 한국인 끼와 재능이 버무려진 다양한 문화 상품과 공연이 개발될 것이란 생각이다. 확실히 한국인의 재능은 독특하고 뛰어나다. 10년 전 일본에서 가장 자주 들었던 말이 “한국인은 모두 재능이 있고 뜨거운 가슴이 있어 뭔가 다르다”는 것이었다. 지금은 그 말을 중국에서 듣고 있다. 나는 그들의 말이 “아직 본격적인 한류는 시작도 안 됐다”는 뜻으로 들린다. 그렇다. 한류의 가능성은 아직 무궁무진하다.
요즘은 연예인이 꿈인 학생들이 많아 우려의 시선을 보내는 분들도 많다고 한다. 생각을 조금만 달리해보면 로봇이 대신할 수 없는 예술인이야 말로 가장 유망한 직업이다. 그러나 예술 교육을 강화해야 하는 데는 새로운 인재배출보다 더 중요한 이유가 있다. 바로 삶의 질의 문제다.
문화와 예술은 우리 삶을 풍요롭게 하는 가장 핵심적인 요소다. 그런데 이 분야는 청소년기에 충분히 체험하지 못하면 그 깊은 맛을 알기 힘들다. 우리사회가 상상력과 창의력이 넘치는, 정서가 풍요로운 사회로 나아가려면 예술 과목에도 중요과목 못잖은 관심을 기울여야 할 것이다. 균형잡힌 교육으로 문화 예술의 저변 확대와 인재 발굴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동시에 잡는 시스템을 마련해야 한다. 그렇게만 된다면, 한류가 아니라 ‘슈퍼 한류’ 시대가 시작되지 않을까 싶다. *

◆ 홍본영은 한중일 모두에서 주연급으로 활약하고 있는 뮤지컬 배우다. 일본을 대표하는 뮤지컬 극단 ‘사계’에서 첫 주연을 맡았고, 한국을 거쳐 지금은 중국 최고의 창작 뮤지컬 ‘상해탄’에서 여주인공 역을 맡아 열연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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