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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본영의 뮤지컬 삼국지

“중국인들이 대구시장(市長) 일행에게 깜짝 놀란 이유"

  • 입력 2016.06.15 00:00
  • 수정 2016.06.21 14:42
  • 기자명 대구한국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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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달 전, 반가운 손님들이 상하이를 방문했다. 대구 시장님과 경북 도지사님을 비롯해 한국 기업인 일행이 ‘대구경북 방문의 해’ 행사를 위해 중국을 방문했다가 상해에 들른 것이었다. 나는 이틀간 이들을 환영하는 행사에 참여해 축하 공연을 했다.

▲ 뮤지컬배우 홍본영

‘오페라의 유령’을 판소리처럼!
이틀째(26일) 만찬이 특히 기억이 남는다. 이 자리에는 권 시장님과 시청직원들, 대구경북 기업가를 비롯해 중국에서 사업을 하고 있는 대구경북 출신 기업가들과 중국 기업가들이 대거 참석했다. 나는 이들에게 특별한 추억을 만들어주고 싶었다. 고민 끝에 판소리처럼 공연자와 관객이 어우러지는 멋진 공연을 만들어보자는 결론을 내렸다. 기업인들이 한데 어우러져 신나는 ‘떼창’을 하고 나면 마음의 장벽이 말끔하게 허물어지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서였다.
내가 선택한 곡은 뮤지컬 ‘오페라의 유령’에서 가장 유명한 곡인 ‘The Phantom of the Opera’였다. 이곡은 워낙 고음이 많은데다 호흡을 끌어가기도 힘들어 뮤지컬 배우들도 라이브로 부르기 꺼려하는 곡이다. 이 노래는 남녀가 서로 주고받으며 부른다. 내가 크리스틴 부분을 부르고 관객이 팬텀 부분을 부르도록 하면 되겠다 싶었다. 나는 무대에 올라 집에서 프린트해 온 가사가 적힌 A4용지를 관객들에게 나누어준 후 이렇게 말했다. “이 곡은 워낙 어려운 곡이라서 여러분들이 저를 잘 도와주지 않으면 공연
이 실패할 수도 있어요. 열심히 불러주실 거죠?”
내 말에 한국 관객들이 긴장하는 것이 느껴졌다. 중국 기업가들도 지켜보고 있는 마당에 행여 실수를 해서 체면이 깎이면 어떡하나 걱정하는 눈치였다. 나 역시 관객과의 공연을 멋지게 성공해서 한국 문화의 힘을 보여주고 싶었다. 전주가 흘러나올 때, 앞자리에 앉은 권영진 시장님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
다. 가사가 인쇄된 종이를 뚫어져라 쳐다보고 있었다. 긴장한 기색이 역력했다. 그랬다. 우리는 긴장으로 하나가 됐다. 공연을 멋지게 성공시키겠다는 일념으로 너나 할 것 없이 ‘오페라의 유령’에 빠져들었다. 결론적으로 말해 공연은 대성공이었다. 관중들은 내가 노래를 부를 때는 토익 시험을 치는 대학생처럼 내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더니, 팬텀이 노래하는 대목에 이르자 객석이 떠나가라 우렁찬 목소리가 터져 나왔다. 무대 위의 나는 물론이고 노래를 부르는 관객들도 깜짝 놀랐다. 무대에서 관객들에게 그토록 큰 감동을 느껴보긴 처음이었다.
몇 분 뒤, 드디어 이 노래의 클라이맥스인 고음부분에 돌입했다. 내가 바통을 이어받아 멋진 피날레를 장식해야 할 차례였다. 내가 한번 “아~” 하고 4마디 고음을 내자 관객석에 앉은 무수한 팬텀들이 “날 위해 노래해!”라고 외쳤다. 내가 한음을 더 올려 4마디 고음을 내자 더 큰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마지막 대목에서 크리스틴이 비명에 가까운 최고음을 낼 때는 모두 숨을 죽였다. 노래가 끝나는 순간 한국인은 물론 중국 기업인들까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박수와 환호를 보냈다. 5분 동안 펼쳐진, 무대와 객석이 하나가 된 완벽한 음악 축제였다.

“한류가 그냥 일어난 일이 아니군요!”
나는 감격해서 박수를 치는 관객들을 보면서 심청가의 마지막 장면을 생각했다. 소리꾼이 심봉사가 눈을 번쩍 뜨는 장면을 연기하는 순간 마당에 둘러선 관객들도 함께 환호했을 것이다. 마치 자기 눈이 떠진 것처럼 덩실덩실 춤을 추지 않았을까. ‘오페라의 유령’을 멋지고 성공시킨 후 감격에 찬 표정으로 나를 올려다보고 있는 관객이 바로 그러했다! 그 자리에 함께 했던 중국 기업인들도 감격하기는 마찬가지였다. 그들은 한국어로 노래할 수는 없었지만 우리와 함께 호흡하며 축제 분위이게 완벽하게 빠져들었다. 그들의 표정에는 ‘한국사람’들의 끼와 재능, 그리고 뜨거운 열정을 향한 경의가 담겨 있었다.
오페라의 유령을 부른 후 중국 기업인들을 위한 특별한 선물을 꺼내놓았다. ‘야래향’이라는 노래였다. 내가 출연중인 중국 뮤지컬 ‘상해탄’의 절정을 장식하는 곡이었다. 뮤지컬에서도 중국인 관객의 호응이 가장 큰 곡인만큼 만찬장이 뜨겁게 달아올랐다. 공연 후 중국 기업이 한분이 내게 다가와 “공연이 너무 감명 깊었다”면서 이렇게 말했다.
“한국인들은 너무 열정적인 것 같아요. 다들 가수 같아요. (권영진) 시장님부터 기업인들까지 누구 할 것 없이 가사가 적힌 종이를 보면서 열심히 따라 부르는 모습을 보면서 큰 감동을 받았습니다. 한류가 그냥 일어난 일이 아니군요!”
중국은 참 가까운 나라이다. 오랜 세월 사회 문화적으로 우리와 많은 교류를 해왔다. 중국의 예술가 중에 한국에 널리 알려진 사람도 많고, 그 반대의 경우 역시 손에 다 꼽을 수 없을 정도다. 문화를 통해 서로를 이해하고 또 교류해왔다. 이는 앞으로도 변치 않을 것이다.
문화는 사람의 마음을 여는 가장 훌륭한 열쇠다. 음악이 만국공통어란 말도 괜히 나온 것이 아니다. 문화의 교류를 통해 마음을 열고 서로를 알아간다면 우호관계는 쉽게 형성될 것이다. 이를테면, 문화의 도움닫기가 있다면 소위 ‘꽌시’의 벽도 그렇게 높고 두텁게 느껴지지 않을 것이다. 지금도 한류가 대단하지만 다양한 영역에서 문화 교류가 더 활발해져서 한중 양국민들이 서로를 더 알아나가고 진심이 통하는 사이가 되기를 바란다. 국적과 언어를 초월하는 문화의 힘이 보다 넓은 영역에서 더 자주 영향력을 발휘하도록 해야 하는 것이다.
말하자면, ‘오페라의 유령’를 불렀던 날, 떼창 공연에 성공한 뒤 즐거워하는 한국 기업인과 그들을 보며 박수와 환보를 보내던 중국 기업가들을 봤다면 누구나 내 말에 수긍할 것이라고 확신한다. 요컨대, 문화는 힘이 쎄다!

◆ 홍본영은 한중일 모두에서 주연급으로 활약하고 있는 뮤지컬 배우다. 일본을 대표하는 뮤지컬 극단 ‘사계’에서 첫 주연을 맡았고, 한국을 거쳐 지금은 중국 최고의 창작 뮤지컬 ‘상해탄’에서 여주인공 역을 맡아 열연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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