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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로스미디어 264작은문학관 뒷이야기

형제는 용감했고 아름다웠다!

  • 입력 2016.06.15 00:00
  • 수정 2016.06.21 14:09
  • 기자명 심지훈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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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현수 교수가 들였다는 사재 3억 원

실은 그의 兄 박광수 교사가 반 댄 것

'사재 3억원'에 숨겨진 형제애

 

본지 기사에는 박 교수가 3억 원 모두를 264작은문학관에 투자한 것처럼 돼 있다. 실은 그의 형 박광수(53) 경기 광명시 충현고 국어 교사가 반을 보탰다. 박 교수는 2005년 경북대 교수로 부임하고 나서 본지 기사에서처럼 ‘대구 출신 유명 시인은 많은데 변변한 문학관 하나 없다’는 사실에 ‘화가 났다.’ 그는 어느 날 술자리에서 “이육사, 이장희, 이상화 그리고 현진건까지 내로라하는 시인 소설가가 대구에서 나고 활동했는데, 그들을 기억하는 문학관 하나 없다는 게 말이 되느냐”며 성토했고, 동료들은 ‘반성할 일’이라고 했다.

박 교수는 무엇을 어떻게 할까를 형인 박 교사와 상의했다. 그랬더니 박 교사는 대뜸 “뭘 어째. 당장해라. 너 반 나 반 돈을 내서 우선 네 전공인 육사문학관을 만들어보자”고 했다. 박 교수는 지금의 문학관 건물을 7,400만 원에 사들였다. 1930년대 한옥으로 뼈대는 놔두고 리모델링을 하면 되겠다고 생각했다. 오판이었다. 막상 집을 뜯어보니, 뼈대도 언제 무너질지 모를 정도로 낡아있었다. 이왕 벌인 일, 물릴 수도 없었다. 재건축으로 성격이 완전히 바뀌었다.

돈은 눈덩이처럼 불어났다. 모두 은행돈이었다. 집 짓는 데만 2억 원, 작품 전시 및 공간 인테리어에만 1억 원이 들어갔다. 돈이 들어갈 때마다 그의 형이 ‘반’을 댔다. 박 교사에게는 1억 5천만 원이 ‘치킨 반 후라이드 반’쯤으로 생각됐는지 모르겠다. 그럴 수 있다. 뜻 깊은 일이고, 동생이 하고자 하는 일에 마음을 비웠는지도 모른다. 박 교수는 “형 덕분에 문학관을 완성할 수 있었다”면서도 “솔직히 이렇게 일이 커질지 몰라 후회 된다”고 했다.

 

박 교수는 “이제부터가 진짜 걱정”이라며 “사실 문학관을 어떻게 운영 유지할 것 인지는 생각해 본 적 없다”고 했다. 직장이 있는 자신은 상주할 수 없으니 천상 아르바이트생을 써야 하는데, 전기세 인건비를 포함하면 얼추 한 달에 150만 원 정도의 고정 지출이 생긴다고. 문학관 관람료는 2천 원. 산술적으로 매달 750명이 이곳을 찾아야 겨우 운영비를 마련할 수 있다. 박 교수는 인터뷰를 마치고 문학관을 나서는 기자에게 “이거 유지 될까요?”라고 웃으면서 물었다. 한편 문학관 2층 전시물 중 빛바랜 ‘陸史詩集 노랑나븨도오잖는무덤우에이끼만 푸르리라(사진·노랑나비도 오지 않는 무덤 위에 이끼만 푸르리라)’은 알고 보면 국보물 유물이다. 대구에서 활동 중인 이하석 시인이 흔쾌히 기부했다.
 

글․사진=심지훈기자 sim@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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