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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경한자락, 마음 한 갈피 (1) 구미 도리사

  • 입력 2016.06.06 00:00
  • 수정 2016.06.21 10:01
  • 기자명 김윤곤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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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울 복사꽃,자두꽃 만발한 터'

설화도 향기로운 해동 첫 가람

 

아도화상 흔적 곳곳거송이 만드는 풍광 높고 힘차

10여개 재난, 빈곤국가서 긴급 구호활동 '하화중생'

 

 

산봉우리 부근 절의 경계는 산 아래 길 초입부터다. 산에 안긴 절의 품이 산보다 넓다. 구미시 해평면 송곡리 도리사(桃李寺). 일주문은 산 발치 십리 밖이다. ‘절에서 가장 먼 일주문’이란다. 너른 해평들을 가로지르는 25번 국도 해평나들목을 나서자마자 ‘해동최초가람성지태조산도리사’라 현판 새긴 산문(山門)이다. 산문에는 문이 없다. 열린 적도 닫힌 적도 없다. 일주문. 여기서부터 도리사 진입로다. 절까지는 11km, 직선거리 4km 남짓. 산꼭대기 절이 버선발로 나와 들판 가운데서부터 길을 이끈다. 부둥켜 안아 반긴다.  일주문은 가로수 터널로 이어진다. 길 양쪽 느티나무들이 서로 키가 맞닿아 하늘을 가린다. 초록의 환대, 싱그러운 궁륭은 청정한 위안이다. 2012년 산림청 지정 ‘한국의 가로수 62선’ 길이다. 차는 두고 걷고 싶어진다.

느티 터널은 2km 가까이 이어진다. 가을엔 황금 들판과 단풍에 억새까지…. 실한 고목과 여린 후계목들이 함께 물들이는 단풍차례는 꽃차례보다 화려할 것이다. 417년 신라 눌지왕 때 아도화상(阿道和尙)이 이곳의 풍광에 끌려 정착하면서 느티나무를 심었다는 그 길이다. 산자락. 긴 숲의 동안거가 끝난 지 엊그제인데 숲은 곧 여름이다. 또 하나 화두를 품어 깨친 숲의 녹음은 날로 짙다. 태조산은 냉산으로 더 많이 불린다. 길이 점점 가팔라져 차바퀴가 헛구를 쯤이면 정상 아래 도리사 주차장이다.

아도화상 '하나이자 여럿인 이름'

삼국유사엔 "묵호자와 같은 인물", "고유명 아닌 형용 지시어" 반론도

▲ 아도화상 (출처: 대한불교조계종 도리사/ www.dorisa.or.kr)

아도화상의 출신과 행적은 곳곳이 비어 있거나 흐릿하다. 설화의 세계를 넘나드는 원전 기록은 6~7종 정도로 볼 수 있는데, 서로 엇갈리는 부분이 많다. 퍼즐 몇 조각으로 커다란 공룡 그림을 맞추는 데에는 해석과 상상의 힘이 필요하다. 그러나 1,600년이라는 세월의 난이도를 상상과 해석으로 넘어설 수는 없다. 교과서에서 배운 바로는 삼국의 불교 최초 전래자(초전자)는 고구려 순도(順道), 백제 마라난타(摩羅難陀), 신라의 경우 묵호자(墨胡子)였다. 그런데 아도화상이 신라 불교의 초전자이고, 도리사가 최초 전래 장소(초전지)라는 주장은 ‘역사 상식’을 헷갈리게 한다.
아도화상 초전자설은 일연(一然)이 『삼국유사』에서 내린 결론을 따른 것이다. 아도화상 초천자설을 뒷받침하는 문헌은 『삼국유사』(1281년경) 뿐만 아니라 각훈(覺訓)의 『해동고승전』(1215년), 김용행(金用行)의 「아도비문(阿道碑文)」(신라시대 연대 미상) 등이다. 미추왕 2년(263)에 아도가 고구려에서 왔는데, 그는 조위인(曺魏人: 조조가 세운 위나라의 사람) 아굴마(我掘摩)와 고구려 여인 고도녕(高道寧)의 아들이다. 일연은 이 부분에서 아도의 행적이 김대문(金大問)의 『계림잡전(鷄林雜傳)』에 언급한 묵호자와 비슷하다면서 아도와 묵호자를 같은 사람으로 보았다. 소수림왕 2년(374)에 고구려에 온 아도가 곧 『아도비문』의 아도라는 것이다. 이 주장은 고구려에 온 아도가 위나라에서 왔다는 가정 위에서 성립하는데, 일연은 이 점에 대해 전적으로 각훈의 『해동고승전』을 따르고 있다. 역사학자 고 이기백 교수 등이 일연의 이런 추론을 높이 평가했다.
그런데 각훈이 근거하고 있는 자료는 다름 아닌 『아도비문』이다. 여기에서 『아도비문』이 시대 착오가 심하며, 설화적 구성이 짙은 사료일 뿐만 아니라 고구려의 아도는 진나라에서 왔다는 『고려본기(高麗本記)』의 내용을 들어 두 전도승을 동일시할 수 없다는 주장도 상당하다. 역사학자 고 이병도 박사 등의 입장이었다. 생존연대로 보아 고구려에 온 아도가 말년에 신라에 왔을 가능성은 배제할 수 없으나, 신라 불교 초전자를 아도라고 명시한 사료는 『아도비문』이 유일하다. 아도[아두(阿頭: ‘삭발한 머리’라는 뜻)라고도 했다]나 묵호자(‘얼굴빛이 검은 서역인’이라는 뜻)를 고유명사가 아니라 사람의 외양을 묘사한 형용 지시어로 보기도 한다.
『삼국유사』에 따른다면, 아도화상과 묵호자를 동일인으로 보아 아도화상은 신라의 불교 초전자이며 도리사는 신라 불교의 초전지임이 분명하다. 동시에 다른 근거를 들어 이를 따르지 않을 수도 있다. 도리사 높고 청정한 풍광 속에 서면, 비록 한쪽에 서더라도 다른 한쪽을 넉넉히 안고 베풀 가슴과 지혜가 생겨날 것 같다. 트인 풍광의 힘. 아상(我相)을 짓지 말며 그것에 집착하지 말라. 경전의 가르침은 예외도 어김도 없다.

 

도리사는 신라 최초(해동 최초)의 가람으로 전해진다. 1,600년 전 아도화상이 한겨울에 복사꽃과 오얏꽃이 만발한 터에 지었다는 절이다. 이름부터 설화(說話)의 세계로 향기롭게 열려 있다. 새로운 종교를 전파하는 일은 대개 목숨을 걸어야 하는 일이다. 아도화상 역시 그랬다. 아도화상은 자신을 숨겨준 장자 모례(毛禮)의 집에 머물렀다. 도리사는 그가 이곳에 정착해 불교를 전파하며 처음 세운 절이다. 삼국유사에 따르면, 아도화상은 묵호자와 같은 인물이다. 신분을 밝힐 수 없었던 그들에게 외모를 가리켜 붙여진 이름이기도 하다. 이명동인(異名同人). 묵호자이기도 한 그가 세운 도리사는 신라 최초, 해동 최초의 가람이다. ‘신라 초전 법륜지’ 도리사는 신라 불교의 성지다.
도리사가 유서 깊은 줄은 진입로를 오르다 보면 스스로 알게 된다. 아름드리 노송들이 우람한 기세로 곳곳에 우뚝하다. 수백 년을 휘어지며 솟아오른 품이 도로 바로 위를 가로지르기도 한다. 돌림병과 공해와 남벌로 아름드리 노송들은 많이 사라졌는데, 이곳에서는 가로수인 듯 친하다. 경내에 들어서면 노송들은 하늘을 배경으로 사천왕, 금강역사, 팔부중으로 우뚝하다. 땅의 기운은 다함이 없다. 끊임없이 모이고 흐르고 새로 솟는다. 노송들은 당당한 몸으로 이를 보여준다. 거송들이 이뤄내는 도리사의 풍광은 높고 힘차다.

산 정상 아래 자리한 가람 배치는 너른 평지를 고집하지 않는다. 지형에 맞춰 전각들 위치의 높낮이가 같지 않다. 높으면 높은 대로 낮으면 낮은 대로 자리를 틀었다. 좀 가파르고 계단 많은 가람의 공간은 층층이지만 위 없이 바르고 평등한 깨달음의 광명 세상을 보여준다. 가장 오래된 전각이자 중심 불전인 극락전(極樂殿)은 중간 높이다. 정면, 측면 각각 세 칸에 다포계 팔작지붕. 전란과 화재로 무너져 17세기에 새로 지었고 고종 12년(1875) 중수했다. 17세기 중엽에 만든 목조아미타여래좌상과 고종 13년(1876)에 조성한 아미타후불탱화가 봉안돼 있다. 적멸보궁(寂滅寶宮)은 석가여래 진신사리의 예배소다. 진신사리는 1977년 국보 제 208호 금동육각사리함과 함께 발견돼 적멸보궁 바로 뒤 8m 높이 사리탑을 세워 안치했다. 이와 함께 태조선원, 설선당, 수선요, 반야쉼터 등의 전각과 요사채가 가람을 이루고 있다.
도리사는 사세가 꾸준히 일어나고 있다. 전임(1988~2012년) 법등 스님에 이어 새로 주지 소임을 맡은 묘장 스님은 올해 승랍 26년, 세수 46세. 고3때 출가해 드물게 젊은 스님은 가람에 청신함과 활기를 더하고 있다. 특히 국제개발구호단체 더프라미스 설립을 주도해 지금까지 상임이사를 맡아 실무를 이끌고 있다. 지진, 홍수 등으로 재난을 당하거나 빈곤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네팔, 아이티, 동티모르 등 세계 10여개 국가에서 긴급 구호활동을 펴오고 있다. 스님과 대원들은 어느 구호단체보다 먼저 현장으로 달려간다. 위험을 무릅쓰고 구호활동을 벌이는 이들의 모습은 보는 이들의 마음을 움직였다. 많은 사람들이 구호활동에 동참하기 위해 대기 줄을 서 있다. 이런 공덕과 선행이 소문을 타고 알려지면서 도리사 신도수는 지속적으로 늘고 있다. 상구보리(上求菩提) 하화중생(下化衆生). 중생과 함께하며 실천으로 깨달음을 완성하는 큰 도량의 감화력이다.
 

김윤곤기자 seoum@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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