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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 영업의 달인 영업맨 정병욱씨

  • 입력 2016.06.02 00:00
  • 수정 2016.06.08 18:24
  • 기자명 김광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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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업으로 대박내는 비결, 양보다 질에 달렸죠

“입사 5년 만에 사표 쓰고 독립했습니다.”
정병욱(53)씨는 91년 잘 다니던 직장에 사표를 썼다. 몇 손가락에 꼽힐만큼 번듯한 대기업이었지만 일한 만큼 돈을 안 준다는 생각에 비전이 없다고 판단하고 미련 없이 박차고 나왔다. 부모님은 물론이고 주변에서 난리가 났다. “그 좋은 직장을 왜 그만두느냐”는 거였다. 30여년이 지난 지금, 그는 같이 입사했던 동기들은 물론이고 또래보다 훨씬 수입이 낫다. 그는 “구체적으로 밝히긴 그렇지만 대형 은행의 지점장 연봉을 훨씬 상회한다”고 말했다.

▲ 정병욱씨

좋은 제품보다 좋은 사람이 더 중요한 영업 비결

회사를 그만두고 나와 제일 먼저 했던 일은 내복 판매였다. 재구매율이 높을뿐 아니라 유행을 안 타는 까닭에 재고 걱정도 없었다. 새벽 6시에 일어나 밤늦도록 장사를 했다. 인근에 교도소가 있어서 면회를 가는 이들이 새벽에 문을 두드렸다. 장사는 그럭저럭 잘 됐지만 가족생활이 너무 없다는 생각에 그만뒀다. 그 뒤 한 달 동안 아내에게도 알리지 않고 막노동을 했다. 정신력 무장을 위해서였다. 막일 중에서도 벽돌 나르기 등 힘 들기로 악명이 높은 일을 자처했다. 그는 “한 달의 노동이 정신력을 키우는데 도움이 되었다”고 밝혔다. 두 번째로 뛰어든 일이 에어컨 영업이었다. 에어컨 관련 사업은 대기업 시절 친하게 지내던 선배에게 정보를 얻었다. 에어컨 총판에서 일했다. 제품 안내서를 들고 에어컨 가게를 돌면서 상품을 제품을 홍보했다. 그는 가게 주인들과 인간적으로 친해지려고 노력했다. 자주 찾아간 건 아니었다. 한번 가서 만나더라도 대화의 밀도를 높이려고 노력했다. 취미 생활을 같이 하기도 했다. 이를테면 낚시 같은 것들이었다. 그래도 대기업 다닐 때보다 시간적으로 여유로웠다.
그렇게 1년 반쯤 지나자 기적 같은 일이 벌어졌다. 1994년, 전국 140개 총판에서 정 씨가 속한 총판이 전국 1위를 기록했다. 이전까지만 해도 항상 서울이 1위에서 5위를 차지했었다. 정확하게 수치를 낼 수는 없지만 그의 활약이 크게 작용했다는 것은 누구나 인정했다. 그 뒤 에어컨 사업은 활황이었다. 집집이 에어컨을 다는 바람에 다양한 제품이 쏟아져 나왔다. 반면 대형마트의 등장과 함께 온라인 판매가 늘어나면서 영업 사원들은 설 자리가 거의 없어졌다. 새로운 아이템이 필요했다. 그는 에어컨 영업과 병행할 수 있는 다른 영업을 찾았다. 그때 에어커튼을 발견했다.

3개월 동안 하루 4시간 동안 걸어 다니며 영업

에어커튼은 바람으로 공기 차단막을 만드는 장치다. 문을 열어놓아도 내부의 냉기가 밖으로 나가지 않고 바깥의 벌레나 뜨거운 공기가 안으로 들어오지 못하게 하는 장치였다. 생소했지만 분명 영업이 될 것 같다는 확신이 들었다. 우선 기계를 알리는 것이 중요했다. 가장 효율적인 홍보는 기계가 직접 작동하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었다. “시장 하나에 한대씩만 넣자”는 생각으로 큰 시장을 중심으로 가게가 몰려있는 곳을 순회했다. 3월부터 매일 4시간씩 3달 동안 전단지를 돌렸다. 대구를 시작으로 경산, 구미, 안동, 포항 등을 한 바퀴 돌았다. 발이 아파서 구두를 집에 두고 캐주얼화를 신고 다녔다. 기대만큼은 아니었지만 효과가 나타났다. “첫해에 주문이 30개 들어왔습니다. 이듬해 300개, 그 다음엔 1,000개가 들어왔죠.” 말 그대로 발로 뛰어 일궈낸 대박이었다. 2005년 중국산 제품이 들어오기 전까진 제법 괜찮은 수익을 올렸다. 다음으로 찾은 아이템은 유치원 등에서 많이 찾는 미끄럼 방지 시설이었다. 그는 당장 본사를 찾아가 영업 계약을 맺었다. 에어콘, 에어커튼에 이어 미끄럼 방지 시설까지 차근차근 영업 분야를 확장해갔다.

영업의 제1원칙 ‘빈말하지 마라’
5년 전에는 남들이 “불가능하다”고 여기는 영업까지 해냈다. 바로 유치원을 대상으로 하는 체험 학습 프로그램이었다. 바로 파브르생태연구소의 유초등 교육 프로그램이었다. 이 프로그램은 초등학교 동창회 체육대회에 갔다가 유치원을 운영하는 여자 동기에게 생태 교육 프로그램에 대해 들었다. “평소에 환경에 관심이 많았어요. 아이들이 콘크리트 건물에서 자연과 격리되다시피 하면서 자라는데 안타까운 마음이 많았어요. 그러던 차에 생태 교육 프로그램이라는 게 있다는 걸 듣고 금방 마음이 움직였죠. 뭔가 도움이 되고 싶은 생각이 들었어요. 영업도 영업이지만, 이걸 좀 알려야겠다는 생각으로 이일에 뛰어들기로 결심했습니다.” 그런데 타이밍이 조금 늦었다. 영업에 나선 것이 1월이었다. 교육 프로그램 영업은 가을부터 늦어도 겨울 전에 끝이 난다. 1월이면 이미 교육 계획이 수립된 뒤였다. “늦은 줄은 알았지만 누군가는 필요하리라는 생각이 들었죠. 그런 원장님을 찾아보기로 했죠. 2달 동안 포항, 경주, 구미 지역 유치원과 어린이집을 모두 돌았습니다.” 두 달 동안 그는 400명이 넘는 원생을 모집해왔다. 전혀 뜻밖의 성과였다. 이듬해부터 당장 3,000건이 넘어갔다. 지금은 한해 평균 3,500건을 하고 있다. 모두 부지런히 찾아다녀서 일궈낸 성과였다. 그가 열심히 다니는 것 이상으로 중요하게 생각하는 영업 비결이 하나 더 있다. 그것은 ‘빈말을 하지 않는 것’이다. “밥 한번 먹자”하는 말처럼 상투적으로 하는 말이 없다. 지나가면서 던지는 듯한 말로 굳게 약속한 일처럼 꼭 실천한다. “밥 한번 먹자”고 했으면 꼭 밥을 먹고, “지나는 길에 한번 들러서 기기를 점검해주겠다”고 했으면 고장 신고가 없어도 반드시 들러서 점검을 해주는 식이다. 그래야 신뢰가 쌓인다고 믿기 때문이다.
“양보다 질이 중요합니다. 몇 번 만나느냐 하는 것보다 어떻게 만나느냐 하는 것이 중요하고, 무작정 인맥을 확장하는 것보다 신뢰할 수 있는 사람이 되는 것이 관건입니다.” 그는 이제 두 아들에게도 영업을 가르치고 있다. 그가 보기에 대기업 문화는 아직 그대로다. 일은 일대로 시키고 비전을 제시하지 못한다면 자기 주도적인 영업이 수익이든 여유로운 삶이든 훨씬 더 낫다는 생각이다. “전단지 돌리기부터 교육시키고 있습니다. 몸으로 부딪치고 체험해봐야 감이 오거든요. 영업의 기본을 익히고 새로운 아이템을 찾는 ‘촉’만 발달하면 누구나 최고가 될 수 있습니다. 제가 바로 그렇게 살아왔으니까요!”


김광원기자 jang750107@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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