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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웃음 폭탄’ 만드느라 시간 가는 줄 몰라요

[전국초대석] 코미디언 전유성

  • 입력 2016.05.15 00:00
  • 수정 2016.05.26 10:30
  • 기자명 정광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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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북 청도에 정착한 지 10년째

지역 주민이 만드는 퍼포먼스 올해도 연이어 선보일 예정

28일 구미서 현악콘서트 총연출

한국인이 작곡한 ‘사계’ 초연

연주자 중 아마추어만 315명

▲ 전유성씨가 지난해 문을 연 경북 청도군 화양읍 우리밀빵집 ‘씩스팩’에서 복근 모양의 빵 모형을 배에 대고 두 주먹을 불끈 쥐어 보이고 있다.
▲ 철가방 모양의 상설 코미디 극장인 ‘전유성의 철가방’은 2011년 경북 청도군 풍각면 성곡리 성곡저수지 옆에서 문을 열었다.
▲ 전유성씨의 빵집에 걸려 있는 조영남의 그림.

“시골이 심심한 게 아니라 도시가 심심한 거다. 심심하지 말라고 노래하고 춤추고 그러는 거 아닌가.

청도에 와서 봄에 분홍빛 복사꽃이 화사하게 피는 것만 보고도 놀랐다. 대한민국 코미디 1번지 경북 청도에서 웃음바이러스폭탄을 만드느라 시간 가는 줄 모르겠다.”

개그맨 전유성(67)에 대한 수식어는 다양하다. 코미디언, 개그맨, 작가, 공연기획ㆍ감독, 빵집ㆍ카페 사장, 스토리텔러, 아이디어뱅크…. 심지어 이전까지 코미디언으로만 불리던 희극인들에게 개그맨이라는 용어를 처음 갖다 붙인 주인공도 전유성이다.

2007년 서울 생활을 접고 10년째 경북 청도군에 정착한 이후 지역을 중심으로 온갖 이색 이벤트를 꾸려온 전 씨가 이달 28일 오후 4시 경북 구미시 금오산 수변무대와 잔디광장에서 초대형 현악콘서트인 ‘구미호의 봄’을 개최한다.

행사의 총연출을 맡은 그는 “출연자 365명이 비발디와 피아졸라의 사계를 연주한다”며 “한국의 작가 4명이 한 계절씩을 맡아 새롭게 작곡한 한국의 사계도 이날 초연된다”고 말했다. 출연자 중 315명은 평소 무대에 설 기회를 가지기 힘들었던 아마추어 연주자들이다.

“생각해보라. 이번에 출연하게 될 315명의 아마추어 음악가들은 훗날 구미호의 봄 이야기가 나올 때마다, 구미 금오산을 지날 때마다 그때 그 날의 감동이 생각나지 않을까. 평생 가장 멋진 추억이 될 것이다.”

이날 공연은 오후 4시 금오지 수변무대에서 1부 행사로 60인조 현악오케스트라와 협연자들이 피아졸라의 사계 전 악장을 연주한다. 이어 인근 금오산잔디광장으로 자리를 옮겨 365인조 현악오케스트라가 한국의 사계 전 악장을 초연한다. 비발디의 사계를 연주한 뒤 다시 50분간 구미시 음악협회가 진행하는 45인조 오케스트라 공연이 펼쳐진다. 부대행사로 한국의 사계 미술전과 현악기 체험홍보 및 수리부스 등이 운영된다. 구미호의 봄은 구미호(九尾狐)에 홀린 듯이 ‘365일 구미의 봄만 같아라’라는 뜻으로 전씨가 직접 작명했다.

전씨가 요즘 청도에서 하는 일은 이루 열거하기 어려울 정도다. 퓨전레스토랑 ‘니가소다쩨’를 비롯해 지난해 개업한 우리밀빵집 ‘씩스팩’, 코미디언 양성기관인 사단법인 청도코미디시장, 상설 코미디극장인 전유성의 철가방극장 등이 있다. 기업ㆍ지자체 등의 요청이 있으면 찾아가는 출장공연도 연다. 철가방극장이 있는 마을에서 추진 중인 권역별종합개발사업인 성수월마을에도 참가하고 있다.

그가 청도에 눌러앉은 것은 2007년. 우연히 청도를 지나던 중 버려진 교회건물을 보고 그곳에 레스토랑을 열면서부터다. 피자와 짬뽕이 주메뉴인 이 퓨전레스토랑은 청도의 명물이 됐다. “특별한 이유는 없었다. 그냥 청도에 눌러앉았다”며 특유의 시니컬한 표정으로 청도 정착 이유를 설명했다. 언제까지 청도에 살지는 살아봐야 안다는 말과 함께.

2009년부터 시작된 개나소나콘서트는 반려견과 함께 할 수 있는 공연으로 해마다 연다. 올해는 8월6일 청도야외음악당에서 열 예정이다. 2010년 대한민국 개그맨 사관학교라는 코미디시장을 통해 교육생을 배출중이며, 이달 말까지 6기생을 모집 중이다. (054)373-1951.

그는 지난해 10월 처음 개최한 청도세계코미디페스티벌(코아페)에선 여태껏 보지 못한 장면을 연출했다. 별도의 무대 없이 청도 군청을 배경으로 한 청도군 별빛소나타가 그것이다. 동네 중학생, 고교 밴드부, 70~80대 동네 할머니 등이 상가 옥상에서 오카리나를, 경운기 위에서 밴드를 연주하고 군청 마당에서 발레를 선보였다. 일부 전문가를 제외하면 출연진 250여 명 대부분이 지역 주민들이다.

전씨는 “아마 은하계에서 처음 시도한 공연일 것”이라고 너스레를 떨었다. “올해도 콘셉트는 전혀 다르지만 같은 장소에서 지역 주민들이 만드는 축제를 연다”며 “만드는 우리도 기대가 될 정도로, 군청이 저런 무대가 될 줄 몰랐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깜짝 놀랄 퍼포먼스를 펼칠 것”이라고 설명했다.

청도군 풍각면 성곡리 성곡저수지 앞에 위치한 중국음식점 철가방 모양의 공연장 ‘전유성의 철가방’은 전국에서 모여든 개그맨 지망생들이 공부한 것을 보여주는 공간이다. 2011년 개관 후 지금까지 거의 매회 매진기록을 이어가고 있다. 객석은 60석밖에 되지 않지만 재미는 최고라는 정평이 나있다. 그는 “이런 일을 하는 데 지역 주민들의 도움이 없었다면 불가능한 일”이라고 공을 돌렸다.

전씨는 코미디를 직접 보지 않으면 이해할 수 없는, 웃을 수 없는 장르라고 정의했다. “코미디는 다른 사람을 통해 전해 듣고는 같이 웃을 수 없다. 공연장 철가방의 성공 비결도 여기에 있다. 청도에서도 외지인들이 찾기 어려운 지역이지만 서울 부산 강원 전국에서 온다. 언젠가 한번은 충북 제천에서 장화신고 찾아온 부부가 있었다. 그분은 라이브공연을 본 것은 생전 처음이라고 했다. 그분들에게 멋진 추억을 안겨줄 수 있다는 사실, 그 자체만으로 멋진 일 아닌가. 그게 보람이다.”

아이디어뱅크인 그는 아이디어가 전부가 아니라고 강조했다. “예전엔 아이디어가 전부는 아니라도 80~90%는 된다고 생각했다. 지금은 생각이 달라졌다. 아이디어의 주인은 제안한 사람 것이 아니라 실행하고 완성시키는 사람의 것이다. 사실 나의 아이디어는 아주 미미하다. 5~10% 정도될까. 그 아이디어에 시간과 돈, 노력을 투자해서 완성시키는 게 중요하다.”

그는 청도에 정착한 뒤 수많은 작명을 했다. 청도축협의 한우 브랜드 맛있소, 짜장면과 피자를 파는 퓨전레스토랑 니가소다쩨, 정도반시 가공품인 감넛츠, 풍각 버스정류장 앞 호프집 갈때까지, 박물관건너편그카페, 감으로 만든 빵 감천지, 최복호 펀액락의 어슬렁텃밭, 제주 올레길을 패러디한 성수월마을 인근의 몰래길, 풍각면 성곡리와 수월리 권역별농촌개발사업 성수월마을, 으랏차차변강쇠장어집, 철가방극장, 개나소나콘서트, 한의원의 건강약품인 기상나팔, 전유성의 잡담쇼, 지난해 군청을 무대로 한 공연 군청별빛소나타, 우리밀빵집 씩스팩, 청도 쇼핑몰 청도꺼…. 그는 “국적불명인데다가 무엇을 뜻하는지 이해하기 힘든 그런 외래어보다 이런 게 훨씬 정감 있고 대상과 잘 맞아떨어지지 않느냐”고 반문했다.

청도=글ㆍ사진 정광진기자 kjcheong@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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