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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는 만큼 아는 만큼' 박물관 산책

(6) 원삼국시대 쇠낫

  • 입력 2016.02.01 00:00
  • 수정 2016.04.19 14:34
  • 기자명 김윤곤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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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단순한, 가장 예리한'

낫은 풀, 나무, 곡식 등을 베거나 자르는 도구다. ‘ㄱ’자로 가장 단순한 형태이지만, 가장 예리한 농
기구다. 석기시대에는 돌낫이 쓰였으므로 이후 이와 구분하기 위해 철제 낫은 쇠낫이라고 한다. 한
자로는 철겸(鐵鎌). 대구박물관에 소장 전시되고 있는 이 쇠낫은 대구 팔달동과 경산 신대리에서
출토된 원삼국시대 유물이다. (원삼국시대는 BC 100년경~AD 300년경의 약 400년 간으로, 초기
철기시대 이후∼삼국시대 이전을 가리킨다. ‘삼한시대’, ‘부족국가시대’, ‘성읍국가시대’, ‘삼국시대 전기’ 등으로 다양하게 불리던 이 시기를 고고학자 김원용 박사의 제안으로 ‘원삼국시대’라는 용어로 통칭하게 된 것.) 무려 1,700~2,000년이나 된 쇠낫이다. 아득한 세월을 견디기에 힘겨웠는지 쇠낫은 온통 적갈색 녹으로 뒤덮여 있다. 금방 어스러질 듯 날은 무져졌지만, 낫의 원형을 갖추고 있다. 철기는 원삼국
시대에 접어들면서 본격적으로 생산 보급됐는데, 제조기술에 따라 쇳물을 거푸집에 부어 만드는 주조(鑄造)와 쇠를 불에 달궈 두드려 만드는 단조(鍛造)로 나뉜다. 초기에는 주조품이 많았으나 점차 보다 단단한 단조품이 많이 만들어졌다. 경주 황성동에 이 무렵의 대표적인 우리 지역 철 생산 유적이 있다.
낫은 유용하고 편리한 농기구이지만, 높이 쳐들거나 마구 휘두르는 순간 살벌한 무기, 흉기가 된다. 낫이 평화로운 농기구가 아니라 피비린내 나는 살상의 도구로 등장하는 ‘산서(山西)’ 마을 이야기가 윤흥길의 장편소설 『낫』이다.

▲ 쇠낫과 함께 전시되고 있는 쇠스랑. 삼지창처럼 생겨서 요즘의 쇠스랑 과는 모양이 조금 다르다.

해방 전후와 6·25에 이르는 기간, 배낙철은 어릴 적부터 신동이라는 소리를 들을 만큼 총명해서
근동에 따라올 자가 없었다. 장래를 촉망받던 그는 경성으로 유학을 떠났고, 당시 지식인들의 전형
대로 나라와 민족의 독립을 위해 사회주의자가 된다. 비극은 정해진 운명처럼 그를 덮친다. 일제 경
찰에 의해 사상범으로 체포된 그는 끝내 자백을 거부하다 심한 고문으로 정신 이상 증세를 보인다.
산송장이 돼 가석방으로 풀려났지만, 발작하면 맹수처럼 날뛰는 그는 우리에 갇히는 신세가 된다.
해방이 됐다. 그는 그동안 자신의 모든 미친 짓이 사실은 일제의 감시를 피하려는 자작극이었다고
밝힌다. 주변 사람들은 그의 지독함에 아연실색한다. 그의 내면은 이미 무너져 있었다. 자신의 신념
과 사상을 견결히 지켜내지 못했다는 자책이 그를 끊임없이 괴롭혔기 때문이다. 6·25가 터지자, 그
는 자신의 열패감을 ‘훈장’으로 뒤바꿀 전복을 꿈꾼다. 자신의 내상(트라우마)에 대한 반작용이다.
그는 좌익 조직을 이끌며 ‘조선낫’ 하나를 들고 ‘악질’ 반동 지주를 ‘처단’하는데 앞장선다. 지난 날의
나약함을 보상받으려는 과잉 행동이자 인간을 경멸하기에 이른 오만한 이념의 악마성이다. 손에 낫
을 든 그의 지휘 아래 수많은 사람들이 끔찍하게 처단된다. 배낙철이 실제로 낫을 휘두르는 현장을
목격한 사람은 아무도 없다. 그럼에도 사람들은 그 모든 낫질이 모두 배낙철의 짓이라고 굳게 믿는
다. 목격했든 하지 않았든 피해자와 가해자를 구분할 수 없는 그 수많은 ‘배낫질’의 중첩이 6·25다.
6·25는 우리가 우리에게 가한 거대한 낫질이다.

 


소설은 그 일이 있은 지 30년 후 배낙철의 아들 배귀수(엄귀수)가 아내와 어린 아들을 데리고 산
서 마을을 찾아가는 과정을 따라 전개된다. 배귀수는 모친의 유언에 따라 친부의 실체와 행적을 확
인하고 ‘그 이후’를 감당해간다. 이 소설은 읽는 내내 마치 벼려진 낫날이 나의 뒷덜미를 겨누고 있
는 듯 긴장감을 자아내면서, 30년이 지났지만 그 비극은 여전히 잊혀지지도 해소되지도 넘어서지
도 못한 채 진행형임을 드러낸다.
이념의 시대는 갔지만, 상대를 또는 나와 생각이 다른 이들을 이념의 족쇄로 가두고 낙인찍는 낫
질은 여전히 공공연하다. 원삼국시대에도 낫은 곡물이나 나물 등 더 많은 먹을거리를 확보했다는 부
의 상징이었을 것이다. 이 거칠 것 없는 자본의 시대에 자본은 낫이다. ‘풍년 가을을 거둬들일 때 절
대로 없어선 안 될 훌륭한 연장이 될 수도 있고, 사용자를 잘못 만나는 바람에 자신의 생애뿐만 아
니라 남들의 생애까지 불행 속으로 몰아넣고 마는 흉기로 둔갑하기도 하는….’ 검붉은 녹물로만 남
은 원삼국시대 뇌낫들이 검붉은 세월의 눈물만 같다.
김윤곤 기자 seoum@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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