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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화 수성대 교수의 유아 교육 이야기 “2등이 더 낫습니다!”

  • 입력 2016.04.11 00:00
  • 수정 2016.04.12 10:37
  • 기자명 김광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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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수성대 유아교육과 김정화 교수

제가 컨설팅하는 한 어린이집에 1등을 하지 않으면 화가 풀릴 때까지 성질을 내는 아이가 한 명 있었습니다.

줄을 설 때도 맨 앞에 서야 하고, 선생님께서 색종이를 나눠주더라도 제일 먼저 받아야 하고, 텃밭에서 방울토마토를 딸 때도 제일 많이 따야 하고, 숲에 갈 때도 제일 앞에 걸어가야만 직성이 풀리는 아이였습니다.

이 아이의 어머니는 “바깥에서 그만 놀고 영어공부와 한글공부를 많이 해달라”고 부탁하더군요. 이 어린이집은 주로 아이들이 자연 속에서 뛰놀도록 권장하고 노는 가운데 삶을 배우도록 지도하는 기관이었기에, 그 아이의 어머니는 두 달을 참으면서 기다리다가 그만 분통을 터뜨리면서 아이를 퇴소시켜 버렸습니다. 지금도 그 아이를 생각하면 마음이 아픕니다.

저의 경우는 어릴 적부터 2등을 많이 하였습니다. 두서너 명 중에 2등을 하는 경우가 아닌 이상, 2등도 잘 하는 편에 들지요. 초등학교를 다닐 때 저는 늘 부반장을 하였습니다. 큰 두각을 드러내지는 않았지만 부반장도 꽤 우수해야만 맡을 수 있는 자리였지요. 우리 학교에서는 해마다 교내 사생대회가 열렸었는데, 저는 항상 2등 상을 탔습니다. 제 친구가 늘 1등을 했습니다. 제가 봐도 제 친구가 저보다 그림을 더 잘 그린다는 걸 알 수 있겠더군요. 저는 2등 상을 매우 만족스럽게 받았습니다.

중학교 때 어쩌다가 수학을 1등한 적이 있었는데, 그날 저는 질투 많은 제 친구한테 수도 없이 꼬집혔습니다. 대학을 다닐 때 교외활동단체에서 부회장을 한 적이 있었습니다. 어느 날 회장이 갑자기 불참하게 되어 제가 회의진행을 하면서, 회장 그늘아래 적당히 묻혀있었던 부회장 자리야말로 참으로 편안했던 자리라는 걸 새삼 느꼈습니다. 학교에 근무하면서도 주로 ‘부’를 붙인 역할을 담당하여 선배 교수에게 많은 것을 배우면서 고마워하였습니다. 정작 불혹의 나이를 넘어서 ‘부’를 뗀 임무를 맡았을 때는 큰 성취감과 책임감이 생기면서 최선을 다할 마음을 가지게 되었고, 이제야말로 바야흐로 제 역할을 충분히 잘 해낼 수 있을 것 같은 자신감조차 생기더군요.

2등을 하는 아이들은 언젠가는 1등을 할 수도 있겠다는 희망과 가능성을 품게 되겠지요. 2등도 꽤 잘 하는 편에 들므로 모범의 대상이 되고, 선망의 범주에 들 수 있는 셈이지요. 또한 2등 하는 아이들은 1등보다 다소 부족함으로써 겪었던 경험들이 있기 때문에, 자신에 대한 겸손한 마음을 가질 줄도 알고, 더 나은 목표를 정하여 겸허한 도전을 시도할 수도 있고, 자기보다 부족한 친구들을 따뜻한 마음으로 잘 이해할 수도 있을 겁니다.

반면, 1등을 하는 아이들은 늘 그 자리를 고수하기 위한 안간 힘을 쓰기 때문에 스트레스를 많이 받을 것임이 분명합니다. 그리고 홀로 앞서가는 그 외로움이나 최고로 잘 한다는 특별의식 등이 길러진다고 볼 수 있겠습니다. 부족하거나 실수하는 친구들을 잘 이해하지 못하는 고지식한 면도 몸에 배이겠지요.

행복은 성적순이 아니라는 말은 하지만, 실제로는 많은 학부모들이 1등을 지향하고 있고, 아이들도 경쟁시대에 시달리고 있습니다. 아이들에게 진정한 행복이 무엇인지, 몸과 마음과 정신의 건강을 지키면서 스스로 잘 살아갈 수 있는 능력을 키우고 자신의 꿈을 키워가는 방법이 꼭 1등을 해야 하는 건지, 궁금합니다. 저는 2등이 더 낫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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