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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환의 희망을 파는 콘서트 “당신이 우리의 희망입니다!”

  • 입력 2016.03.28 00:00
  • 수정 2016.03.29 10:08
  • 기자명 김광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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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광석 거리에서 공연중인 가수 채환

김광석 거리에서 공연중인 가수 채환

“섬집 아기 불러주실 수 있나요?”

2014년 10월, A병원 암병동에서 열린 병실 콘서트에서였다. 환자 한명이 방금 불렀던 노래를 다시 신청했다.

30대 후반쯤 되는 환자였다. 방금 불러드렸는데요, 하려는 찰나 간병인이 미안한 투로 말했다.

“제 아내가 뇌종양이 있어요. 방금 했던 말도 기억을 잘 못합니다. 죄송하지만, 한번만 더 불러주실 수 있을까요?”

채환은 방금 불렀던 노래를 다시 불렀다. 그렇게 한 시간 남짓 병실 콘서트를 했다. 한 달쯤 후 문자가 하나 왔다. 병실에서 만난 뇌종양 환자의 남편이 보낸 것이었다.

‘감사합니다. 섬집 아기를 들려주신 다음 날 아내가 떠났습니다. 그 노래가 아내에게 준 마지막 선물이 되었네요. 이제 세상에 딸과 저만 남았는데, 말씀하신 대로 희망을 가지고 열심히 살겠습니다. 감사합니다.’

- “마누라와 함께 듣고 싶은 노래 신청합니다”

‘희망을 파는 콘서트(희파)’는 1997년에 시작해 19년째 계속하고 있다. 콘서트 무대는 물론이고 병실, 요양원, 길거리, 학교, 혹은 작은 골방에 이르기까지 희망이 필요한 곳이면 어디든 달려가 노래를 불렀다.

몇 해 전 경북 청송 약수터에서 공연을 펼칠 때였다. 약수통을 들고 줄을 서 있는 노인 하나가 신청곡을 내밀었다. ‘어느 60대 노부부의 이야기’. 노인은 “이 노래만 들으면 작년에 죽은 마누라 생각이 난다”면서 “하늘나라에 있는 마누라하고 같이 듣고 싶다”고 말했다. 채환은 고향에 계신 부모님을 생각하면서 ‘어느 60대 노부부의 이야기’를 열창했다. 눈시울이 뜨거워졌다.

가장 잊을 수 없는 ‘희파’는 마포대교 아래서 진행한 100일 콘서트였다. 마포대교에서 자살하는 사람들 숫자가 많단 이야기를 듣고 그곳에 희망의 메시지를 불어넣고 싶어서였다. 혹시나 나쁜 마음을 먹고 왔다가 자신의 공연을 듣고 마음을 고쳐먹는 ‘기적’이 일어나지나 않을까, 기대도 하면서.

▲ 희망세상만들기 콘서트 후 관객들과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 마포대교 거지에게 배운 행복론

어느 날 낡은 바바리코트를 걸친 남자 한명이 그에게 다가왔다. 그는 모금을 위해 설치한 CD판매대로 가더니 모금함에 10원 짜리 다섯 개를 넣고 CD다섯 장을 주머니에 집어넣었다. 값을 정하진 않았지만 ‘살짝’ 속이 쓰렸다. 노래가 끝나고 그에게 말을 걸었다.

“아저씨 누구세요?”

남자가 퉁명스럽게 대답했다.

“보면 모르겠나? 거지다.”

그는 지갑에서 오래된 벽지처럼 낡은 지폐 한 장을 끄집어내 짬뽕을 사겠다고 말했다.

“내가 여기서 20년 넘게 있었지만 남한테 밥 사는 건 처음이다. 너도 거지한테 밥 얻어먹은 적 없지?”

짬뽕을 먹으면서 물었다.

“왜 저한테 밥을 사시는데요?”

“우리는 같은 일을 하는 사람이니까.”

“예?”

생뚱맞은 말이었지만 설명을 들어보니 설득력이 있었다. 그는 자살하려는 사람을 두 명이나 구했다고 했다. “우린 동료”라면서 짬뽕 먹다 말고 악수를 청했다.

“여기서 죽은 사람 중에는 교수도 있고, 경찰관도 있고, 큰 회사 CEO도 있다. 사람들 꿈이라는 게 다 그렇게 높은 사람 되는 것 아냐? 높게 되는 거, 돈 많이 버는 거, 그런 게 사람을 행복하게 해주는 게 아닌 모양이더라.”

마지막 국물 한 모금을 후루룩 마신 뒤 세상을 다 얻은 것처럼 행복한 표정으로 이렇게 덧붙였다.

“넌 노래할 때 행복하지? 그러면 된 거야. 노래할 때만큼은 세상에 부러울 게 하나도 없는 거잖아. 그보다 행복한 사람은 없어.”

- 곁에 있는 사람이 희망입니다

그랬다. 노래하는 순간이 제일 행복했다. 초등학교 3학년 때 고향 청도에서 혼자 대구에 올라와 자취하며 중고등학교를 다니던 시절, 그에게 김광석 노래는 가장 큰 위로이자 행복이었다. 김광석은 떠나고 없지만, 지금은 그가 부르는 희망의 노래에 화음을 맞춰주는 ‘희파’ 식구들이 있어 행복하다.

“마포대교 아래에서 만난 그분 말처럼 행복은 멀리 있지 않아요. 바로 내 곁에 있죠. 희망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합니다.”

그의 콘서트는 늘 간곡한 당부로 끝이 난다.

“곁에 있는 사람이 희망입니다. 친구, 동료, 가족이 마지막으로 잡을 수 있는 ‘끈’이 바로 ‘나’입니다. 주변 사람들에게 늘 관심을 기울여 주세요. 그것이 희망 세상을 만드는 가장 확실한 방법입니다.”

그의 콘서트에 ‘좋아요’를 누를 수밖에 없는 이유다.

김광원기자 jang750107@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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