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영역

본문영역

차인이야? 역술인이야?

  • 입력 2016.02.23 00:00
  • 수정 2016.02.23 17:16
  • 기자명 강은주기자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알고 보니 4대째 가업 이은 유명 역술인

▲ 대구종로거리 죽평다관 주인 이경묵 씨

대구 종로거리에 있는 보이차 전문점 ‘죽평다관’은 그냥 찻집이 아니다. 주인장 죽평(竹平) 이경묵(55) 씨는 찻집주인이기 전에 역술가로 더 유명하다. 이씨네는 대대로 역술을 밥벌이로 삼았다. 이씨가 4대째 가업을 이어오고 있다. 가업도, 좋은 보이차도 긴 세월을 진중하게 보낸 뒤에 진가를 발휘한다는 점에서 보이차와 이씨는 닮았다.

중학생 역술인에서 40평생 직업인으로

곰방 김이 모락모락 피어나는 보이차를 가운데 두고 그와 마주 앉았다. 정보화 시대에도 역술인이 건재한 이유가 뭐냐고 다소 거칠게 물었다. 죽평은 동요하지 않고 운을 뗐다. “역술인, 점성술사, 천기누설자, 인간이 알면 안 되는 하늘의 비밀을 알려주는 사람. 이들의 공통점은 천운(天運)을 타고나야 한다는 겁니다. 나는 하늘의 뜻과 사람의 마음을 거스르지 않되 운세의 방편을 알려주는 사람이죠. 최첨단의 시대에도 역술이 건재한 이유입니다”

옛날에 산에서 도를 닦듯이 역술을 연마했는데, 요즘은 어떻게 되느냐고 물었다. 죽평은 보이차 한 잔 입에 적신 뒤 말을 이었다. “공부하면 될 수 있지요. 업을 차려 돈벌이도 할 수 있고요. 그러나 역술인은 타고나야 합니다. 남을 위해 봉사할 수 있는 활인(活人)성이 있어야 합니다. 역술인은 그저 미래를 점을 쳐주는 사람이 아니라 인생의 프로 카운슬러죠. 상담자가 마음을 열 수 있도록 기다려야하고 들어주고 이해해야 하며 무엇보다도 인연이 닿아야 합니다.”

죽평이 ‘역술인은 타고나야 한다’고 한 것은 그의 부친 영향이리라. 그의 부친정파 이동하는 서울의 청호 지창용과 쌍벽을 이룰 정도로 당대 최고의 역술인이었다. 8남매 중 막내였던 죽평은 어린 시절, 아버지의 심부름(주역 괘를 뽑아다주는 역할)을 하며 어깨너머로 자연스레 역술을 익혔다. 겉으로는 익힌 것이되, 배경부터가 남달랐다는 점에서 타고났던 것이다.

어릴 때 집안 분위기가 남달랐겠다고 물었다.

죽평은 팔짱을 낀 채 옛 이야기를 들려줬다. “내가 어릴 때, 집안에는 손님이 넘쳐났지요. 김희갑, 문희, 엄앵란, 삼성 이병철 회장 등 유명인들이 들락거렸지요. 나는 그때 우리 집이 제일 부자인 줄 알았어요. 아버지는 유명세에 걸맞게 국제적인 세미나에도 자주 참석해 집을 자주 비웠지요.”

그럼 누가 상담을 해주었냐고 물었다.

그 질문 잘했다는 듯 죽평은 신명나게 이야기를 이어갔다. “내가 대신 했지요. 그때가 중학생 때였는데 아버지가 안 계시고, 손님들 헛걸음하게 할 수 없어 어머니가 8남매 중에 아버지를 제일 닮은 저를 내세우셨죠. 일종의 고객 관리였다고 할까요.”

아니, 어떻게 중학생이 손님을 맞이했냐고 물었다.

죽평은 “정해진 모범답안(주역64괘)을 들고 설명을 해주는 정도였다”며 “그래도 어린 나이에 손님 맞는 기질이 남달랐던지 어른들이 진지하게 들었다”고 했다. 정파 선생의 아들이었던 것도 손님들에게 신뢰를 주었을 것이다.

역술은 사주를 보는 명리학과 주역을 푸는 역리, 관상, 수상, 족상, 골상을 합쳐서 풀어낸다. 신을 받은 무속인과는 다르다. 역술인은 주역을 풀이해 운명을 본다. 사주학과 주역 괘는 비교되는 부분이다. 아버지는 풍수, 성명학, 주역을 전문으로 했고 죽평은 운명을 보는 역리를 전문으로 했다.

그동안 에피소드도 많았겠다고 하자, 죽평은 약간 머뭇거렸다. 왜 그러냐고 묻자, “이런 거 물으면 자랑밖에 안 된다”며 손사래를 쳤다. 그러니까 더 궁금해진다 하자, 난처해하면서도 몇 가지를 귀띔해줬다. “묏자리를 바꿔 판사가 된 것처럼 방편으로 운명을 좋게 한 예는 적지 않지요. 개인의 신상을 밝힐 수는 없지만 개명 이후 변호사 시험에 합격한 경우도 있습니다. 얼마 전에 개업소식을 전해왔지요. 손님 중 4대를 이어온 인연도 있어요. 며칠 전, 5대 고손자의 이름을 지어줬습니다.”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게 뭐냐고 물었다. 죽평은 명예라고 했다. “4대째 가업으로 이어진 업이라 무엇보다 집안의 명예를 소중히 생각합니다. 나로 인해 집안 어른들을 욕보일 수는 없는 일. 부끄럽지 않은 족적을 남겨야한다는 사명감으로 이 길을 걸어왔습니다.”

그는 역술인으로 살면서 한 번도 갈등이나 회의를 느껴본 적이 없다고 했다. 역술인은 엉덩이가 무거워야 한다고 했다. 그런데 역마살 때문에 어디론가 훨훨 갔다 와야 안정이 되었다고 했다. 외국으로도 많이 다녔다고 했다. 그냥 다니는 법은 없었다고 했다. 무언가를 배워서 모방하고 창조하려고 애썼다고 했다. 차와 자사호도 그렇게 그의 삶이 되었다.


차와의 만남, 자사호, 은주전자

차도 부친이 연길을 터주었다. 부친은 국제학술세미나에 다녀오면 선물로 차를 많이 갖고 왔다. 향긋한 차향은 손님을 맞을 때 마음준비를 하게 하는 좋은 매개체였다. 일찍부터 차를 접했고 중국과 일본의 여러 지방을 다니며 많은 차를 접했다. 차를 마시면서 자연스레 자사호(紫沙壺)에 관심을 갖게 되었다.

각이 진 각호(角壺)는 둥근 자사호 5개 만드는 공이 들었다. 소장하고 싶었지만, 상업성이 없다고 주문도 안 받아줬다. 죽평은 직접 만들기로 했다. 자사는 붉은색 돌가루로 중국 강소성 무석시 의흥이 주생산지이다. 자사를 곱게 갈아서 그것을 반죽해 1,200도에서 구워낸다. 자사호는 차를 우려내는 그릇으로 열전도율이 없어 그릇 속에 열을 가두고 있다. 끓이지 않고 차를 우려내는 그릇이다.

찻집은 그의 놀이터다. 차 팔아서 돈을 벌수는 없다. 비싼 보이차를 내어줘도 두려워하고 아낄 이유가 없다. 남을 위해 퍼주는 역할이 그의 몫이다. 그의 말을 빌리면 활인은 내 살을 발라 남을 살리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요즘 그의 관심은 은주전자를 만드는 일이다. 은주전자는 물을 정수하는 효과가 있다. 불순물과 독을 제거하여 맑고 깨끗한 물을 만든
다. 은주전자에 물을 끓여 자사호에 우려내면 차 맛이 일품이다. 그는 궁금하면 파고드는 성격이다. 전문가가 될 때까지 간다. 그림도 그린
다. 그야말로 팔방미인이다. 서두르지 않고 느긋하며 인생을 달관한 듯 무심한 성품이다.

“운명이란 것은 스스로 노력해서 극복하는 것이지만, 거스르지 못하는 부분도 있습니다. 너무 집착할 것도 방관할 것도 아닙니다. 운
명은 자기 자신이 대처해야 하며 더 나은 삶을 위한 방편으로 방비할 수 있습니다. 맹신은 금물이며 적어도 3군데는 보고 공통적인 부분
을 취하면 됩니다.”

강은주 기자 tracy114@hankookilbo.com

저작권자 © 대구한국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개의 댓글

0 / 400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
/ 400

내 댓글 모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