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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영 (주)대산운수 대표 - 이 사람

  • 입력 2016.02.22 00:00
  • 수정 2016.02.23 15:54
  • 기자명 강은주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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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번 맺은 고객과의 인연 ‘믿음으로 끝까지’

▲ 김정영 (주)대산운수 대표

“물류업은 현대 산업의 한 축입니다. 물류가 물자를 제때 운송함으로써 제조업 등 여러 업체가 원활하게 돌아갑니다. 물류 시장은 향후 더 확대될 미래 유망직종입니다.”

범사에 감사하다.

김정영(52) (주)대산운수 대표는 2011년 대구시장상을 받았다. 운송협회 회원사 400여 곳, 주선사업협회 회원사 550여 곳 중에서 무사고 모범 물류업체로 선정돼 지역경제에 이바지한 공로로 상을 받은 것. 올초에 그는 대구광역시 화물자동차운송주선사업협회(화운주사협) 부이사장으로 취임했다.

“힘든 어린 시절을 겪으며 꼭 성공하고 싶었습니다. 아침 8시부터 밤 12까지 일했죠. 지금까지 큰 굴곡 없이 무난하게 사업을 이어왔습니다. 범사에 감사해요. 아직도 열심히 일할 나이이고, 여전히 내 좌표는 달리는 생의 한가운데입니다.”

1996년 대산화물주선업을 시작했다. 그의 나이 27살 때. 작장생활과 물류운송 경험을 살려 일치감치 개인사업에 눈을 떴다. 이후 2000년 (주)대산운수 법인을 설립했다.

현재 연매출 60억 원으로 8명의 직원을 두고 있다. 건설자재, 공산품, 냉장농산물을 물류센터로 납품한다. 특히 냉장농산물 업체의 경우, 대산 운수를 거치지 않는 업체가 드물 정도이다.

‘큰 굴곡 없었던 사업’의 비결

그는 운이 좋았다고 한다. 사업을 시작한 이후 지금까지 별 고비가 없었다고. 비결은 주변사람들이 많이 도와주었기 때문이라고.

“한번 인연을 맺은 고객은 믿음으로 끝까지 책임집니다. 언행일치가 몸에 배었다고 해야 할까요. 그것이 성장을 안정성 있게 유지하는 비결이 아닌가 합니다.”

그는 8남매 중 막내로 태어났다. 3살 때 어머니께서 돌아가셨다. 생활은 말할 필요도 없이 어려웠다. 소외되고 힘든 어린 시절을 보냈다. 그 아픔은 ‘잘 살아야겠다’는 염원이 되어 사무쳤다. 그리고 일했던 기억밖에 없다.

(주)대산의 거래선은 주로 대구시, 경상남·북도, 서울지역이지만 전국 어디든 다 간다고. 결국 안 가는 곳 없다. 앞으로 수도권 쪽으로 양질의 서비스를 위해 전국 물류의 중앙인 성주지역에 물류거점을 만들 계획이다. 앞으로 물류업이 더 확대됨에 따라 정보망은 거미줄처럼 복잡해 질 것이고 그래서 물류는 미래 산업의 한 축일 될 것이라 전망한다.

유쾌, 경쾌, 단순

남자나이 52세라면 아직 한창 때이다. 젊다면 젊은 나이에 대구광역시 화운주사협 부이사장을 맡은 그는 미래를 이끌어 갈 지도자로서 향후 개선할 점과 당면과제를 안고 있다. 

화물, 주선사업은 개인업체들이 여러개의 정보망을 가지고 난립해있는 현실이다. 당연히 개인업체들이 경제적, 업무적으로 부담을 가질 수밖에 없다. 협회 임원들이 나섰다. 

조속히 회원사를 통일하고 일원화해 회원들의 부담을 덜어주기 위해서다. 회원들의 수익을 늘리고 권리를 찾아주려는 것이다.

그는 등산을 좋아한다. 바쁜 와중 건강관리의 비법이다. 한걸음에 산을 오르며 회사의 내부적인 문제부터 거래처까지 여러 가지 생각을 정리하고 계획도 세운다. 

“건강이 허락하는 날까지 일할 거예요. 세상은 넓고 할 일은 많습니다. 현재도 여전히 힘차게 달릴 시기이고 시작은 지금부터죠.” 그는 인터뷰 내내 소년처럼 부끄러워했다. 단순한 화법을 구사한다. 

답은 짧고 군더더기가 없다. 경쾌하다. 유쾌하다. 주변인들이의 칭찬 릴레이에 고개가 끄덕여지는 부분이다.

강은주 기자 tracy114@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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