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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가 주는 것들

ESSAY_살며 사랑하며

  • 입력 2013.04.22 00:00
  • 수정 2015.08.18 11:43
  • 기자명 이미에 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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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이라고 베란다 화분에 생기가 돕니다. 화분의 잡풀들도 기지개를 켭니다. 창밖 실핏줄 같은 우듬지에도 봄이 들었습니다. 슬며시 비 다녀가고 꽃샘인가 꽃바람 다녀가더니 어느새 배동 든 이삭마냥 나뭇가지가 올록볼록 기특합니다.
계절은 어긋남이 없고 나이 들어갈수록 세월 타령도 늘어갑니다. 서른 시절엔 마흔이 싫었는데 그것도 한참 지나고 나니 정겹습니다. 쉰이 되면 어떤 마음가짐이 될까, 심심한 날엔 오는 쉰을 마중가고 싶은여유도 생깁니다, 살다보면 나이가 의식되어 달라진다기보다 나이가 들수록 홀가분해 지는 것 같습니다. 그건 산 아래보다 산 위 전망이 훨씬 수월한 위치와 같은 것인데요. 제 경우는 불혹을 넘기고도 몇 년이 더 지나고 시어머님이 편찮아지면서 저만 의지해 올 때 내게서 일어나는 마음을 보면서 아! 이런 걸 철들었다고 하나보다 그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아이에게서도 어느 정도 놓여나 적당히 홀가분하고 적당히 서운했지만 어른이 제대로 된 것 같은 느낌,
‘여자 나이 마흔이 넘으면 욕먹지 않을 만큼 할 줄안다’ 는 말이 있다지요. 집안 대소사나 인간관계에서 구력이 붙고 달라질 게 없다면 이왕에 해야 하는거, 즐길 경지는 아니더라도 굳이 사달을 내서 소모전을 벌일 필요 없다는 걸 경험으로 아는 단계가 그 나이쯤 아닐까 싶습니다. 그러니 일 자체가 스트레스가 되는 일은 현저하게 줄고 일에 대한 수용이 선행되는 것입니다.

부모가 되면 부모는 자식에게 자신의 꿈을 투사한다고 하지요. 못 이룬 꿈 자식을 통해 이루지 말고한 오년만 공부해서 자신의 꿈은 자신이 이루는 것이 어떻겠느냐는 얘기를 감명 깊게 들은 적이 있습니다. 수명도 늘어나서 이제는 노후를 부부가 어떻게 보내느냐가 큰 관심사가 되었습니다, 내 노후가 자식에게 등짐이 되지 않아야만 그나마 자존심 지키며 사는 세대가 되었습니다.
오고 있는 노후, 나이 들어 갈수록 행복해지려면 세상을 보는 견해도 유연해져야 할 것 같습니다. 부부중심의 시간과 부부가 함께하는 친목모임을 권하고 싶습니다. 제 경우엔 친목모임을 가진지 사 오년, 둘
이 지낼 때와는 달리 서로를 객관적으로 보게 됩니다. 그래서 주관적일 때와는 다른 균형감이 생깁니다. 바람직한 모습이 구체적으로 어떤 것인지를 다른 부부를 통해 보게도 됩니다. 집에서 자상하던 남편이 밖에선 내색하지 않거나, 반대로 까다로워 보이지만 집에선 자상한 남편도 있습니다. 부부라는 공통분모도 있고 나이가 주는 편안함도 있습니다. 서른쯤이었다면 쉽지 않았을 얘기들이 스스럼없이 주제로 나오고 기다렸다는 듯 활발한 토론이 됩니다. 다를 뿐 틀리지 않다는 것, 입장에 따라 남편이, 아내가 다르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남편의 이기심이라 치부했던 것이 남자들의 보편적인 모습이고 저 또한 남편에게 이해 받고 싶은 것을 동병상련의 입장으로 지인의 아내가 공감해 줄 때, 소통이나 공감은 어떤 경로였던 함께 하는 자리에선 빛을 발합니다. 좋은 건 닮아가고 좋지 않은 모습은 반면교사로 삼는 자리가 됩니다.

사는 건 어제와 별반 다르지 않은 것 같지만, 그래요 한 참 지나고 보니 그 시절엔 이런 시간이 올까 싶었는데 이미 와 있고 기대 했던 던 것보다 나아져 있습니다. 우리 살아가는 환경과 모습이 계절의 순환처럼 순차적이진 않지만, 나이 들수록 마음 추스르는 일도 조금씩 수월해지는 것 같습니다. 나이의 힘일까요. 한 순간에 싸늘해지기도 뜨거워지기도 하던 시절에 비하면 늘어난 주름만큼이나 상황대처 능력도 나아지는 것 같습니다. 눈치 가 느는 걸까요, 절충점도 잘 찾고 순조롭게 넘기는 요령도 생기는 것 같습니다.
베란다에서 가장 잘 자란 분은 지난 가을 어미한테서 떼어 옮겨 심은 다육이입니다. 저것을 독립시키지 않았다면 저렇게 잘 자랄 수 있었을까 그런 생각을 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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