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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의 ‘말장난’ 전략, 우리의 대응은?

  • 입력 2015.08.04 00:00
  • 수정 2015.08.06 10:49
  • 기자명 대구한국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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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장난’이 따로 없다. 군함도 유네스코 세계 유산 등재를 앞두고 강제 노역을 인정
하는 기조로 가다가 등재 후에는 말을 바꾸었다. 말장난에 놀아난 꼴이 되고 말았다.
일본은 이번에도 자신들에게 유리한 사항만 챙기고 불리한 진실은 교묘한 말로 어물
쩍 넘어가는 전략을 취했다. 처음이 아니다. 일본은 늘 애매한 어투로 상대를 혼란스럽
게 했다. 목에 칼이 들어와도 이런 말투를 고치지 않았다. 심지어 1945년 8월 15일 전
파를 탄 천황의 항복 방송에도 그런 분위기가 느껴진다.
천황은 (우리가 기대하는 대로) ‘항복식’을 우리가 기대한 것처럼 “잘못했습니다. 항
복하겠습니다”는 자세로 진행하지 않았다.
일단 사과방송의 전체적인 주제는 ‘세계의 진운(進運: 진보할 기세나 기운)에 뒤처지
지 않도록 노력하라’는 ‘명령’이었다. - 마무리를 그렇게 했다.
내용을 분석해보면, 천황의 성명에는 ‘항복’과 ‘패배’라는 또렷한 표현이 보이지 않는
다. 다만 이렇게 표현했을 뿐이다.
“전국(戰局: 전쟁상황)이 확실히 호전되지도 않고, 세계의 대세 또한 우리에게 이롭
지 않다.”
항복 의사를 드러낸 ‘절제된’ 표현으로 봤을 때, 미국의 태도를 지적하는 어투는 마
치 힐난처럼 느껴진다.
“적은 새로운 잔학한 폭탄을 사용해서 끊임없이 무고한 사람을 살상하고, 참담한 피해
는 참으로 측량할 수 없는 지경이 이르렀다.”
1 850년부터 메이지 초기까지 지속되었던 ‘양이론’(외국을 오랑캐[夷狄]로 낮추어
보고 외세의 배격을 주장한 봉건적 배외사상) 강의를 듣는 듯한 기분이다. 즉 ‘서양 오
랑캐가 무고하고 착한 일본 국민을 오랑캐다운 수단으로 참혹하게 죽이고 있다’는 것
이다.
항복의 이유를 설명하는 대목도 마찬가지다. 반성의 기미는 없다.
“교전을 계속하는 것은 끝내 우리 민족의 멸망을 초래할 뿐이고 게다가 인류의 문명
까지도 파괴할 것”
그가 말한 ‘문명’ 속에는 침략과 식민지 정책, 위안부가 포함되어 있을까. 알 수 없
는 일이다.
마무리는 더 ‘멋있다.’ 그가 밝힌 종전의 이유는 이것이었다.
“만세(萬歲)를 위해 태평을 여는 것”
그들은 상황이 안 좋고 서양 오랑캐가 잔악하기 때문에, 더 이상의 희생을 감내할 수
없어서 전쟁을 마무리하겠다는 것이다. 태평 운운한 다음에 천황은 앞서 밝힌 새로운
형태의 ‘진격’을 위한 명령을 선포한다.
제국은 무너졌지만 제국의 정신은 시퍼렇게 살아 있었다. 천황의 성명도 그러했지만,
방송 후 350명의 장교가 스스로 목숨을 끊은 것도 그렇다.
민간에서도 천황의 명령에 신속하게 반응했다. 관청, 군, 기업은 기밀문서를 불태우
기 시작했다. 8월 15일부터 연합군 주둔이 시작된 2주 후까지 시내 곳곳에 모닥불을 피
우고 서류를 그 안에 집어넣었다.
또 하나는 일본인 ‘위안부’를 모집했다. 그들은 “일본민족의 순결을 지키고 육성하고
자” 연합군으로부터 일반 여성을 보호할 위안부를 모은 것이다. 연합군의 반발에 부딪
치긴 했지만 일본군은 연합군 주둔 초기 ‘특수위안시설’에 처녀들을 집어넣었다. 대부
분 ‘자발적 의사’이거나 ‘인신매매’를 통해 조달된 이들이었을 것이다. - 모르긴 해도.
이후 일본은 고난의 행군을 지속했다. 초등학생들의 신장이 작아지고(~1948) 수년 동
안 수백만의 일본인이 아사했다. 당시 일본인의 상황을 한 마디로 표현하면 ‘허탈(虛
脫)’이었다. 이는 심신의 소모를 뜻하는 의학용어였다. 일본의 정신세계는 허탈 그 자
체였던 것이다.
이런 상황은 다시 자기 연민과 기만의 요소로 작동했다. 오랑캐에 짓밟힌 고귀한 일
본, 고통의 세월을 살아낼 수밖에 없는 상황. 그것이 일본인들이 자기를 바라보는 방식
이었다. (특히) 보수적인 일본인들은 제국의 기질을 결코 벗겨내지 않았다. 항복 선언
에서도 오랑캐를 힐난하고 ‘진격’을 명령한 천황처럼.
그렇게 일본(보수 세력)은 자기 연민과 제국의 기질을 그대로 지닌 채 성장했다. 그
것이 오늘날 우리가 목도하고 있는 일본의 우익들이다. 항복 문서에도 적들에 대한 힐
난과 자기변명, 그리고 전후 행동 지침을 ‘명령’하
는 천황의 후손들이 주류를 이루어 ‘제국’의 행군
을 이어가고 있다.

 

위안부, 징용, 그리고 독도에 이르기까지 일본은
일관된 전략을 편다. 유리한 팩트만 챙기고 불리하
다 싶으면 어물쩍 넘어가기. ‘작은 진실’로 거대한
진리를 덮어버리기. 늘 그렇다. 이에 대응하는 가
장 확실한 방법 중의 하나는 자료를 모으고 정리하
는 한편 대응 논리를 만들어 국제 사회에 널리 알
리는 것이다. 그것이 일본을 압박하는 거의 유일
한 수단이다. 그곳이 군함도 사건이 우리에게 시
사하는 바다.
<참고> 앤드루 고든, 문현숙 김우영 옮김, <현대 일본의 역사2>, 이산, 2015(개정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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