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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 뻗고 자는 ‘이상한’ 가해자

  • 입력 2014.08.07 00:00
  • 기자명 유명상 본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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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이 시계를 거꾸로 돌리고 있습니다. 어찌 보면 당연한 일입니다. 그는 패전 후 반세기 넘게 독도와 위안부 문제를 비롯해 어느 것 하나 과거를 반성하는 모습을 보인일이 없었습니다. 과거로 돌아갈 기회만을 엿보고 있었습니다.
일본의 행태는 늘 독일과 비교됩니다. 두 나라 모두 가해국이었지만 이후의 태도는 사뭇 달랐습니다. 독일은 철저하게 반성했습니다. 반면 일본은 부분적인 반성을 했을 뿐입니다. 전쟁 당사자로서 자국민이 경험했던 고통은 철저하게 뉘우쳤지만, 위안부나 식민지배는 “전쟁 상황에서 자연스러운 일”이라거나 “일본의 지배 덕분에 (조선은) 경제 발전의 기반을 구축했다”는 식의 궤변을 늘어놓고 있습니다. 일본이 과거로 회귀하는 것은 반성이 온전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독일의 두 가지 반성
우리는 독일 하면 유대인 문제만 떠올리지만 사실 독일의 반성은 보다 광범위하고 철저했습니다. 그들은 두 가지 측면에서 반성과 수정을 진행했습니다.
우선 대외적으로 유대인 학살을 시인하고 보상했습니다. 그와 동시에 자라나는 세대에게 가해자로서의 조국을 가르쳤습니다. 이는 잘 알려진 바입니다. 이와 함께 그들은 내적인 반성도 외면하지 않았습니다. 나치라는 괴물이 탄생하기까지의 과정을 복기하고 거기에서 드러난 과오와 치부를 깨끗하게 씻어냈습니다.
히틀러의 출현은 우연이 아니었습니다. 나치의 사상은 독일 사회에 깊이 뿌리내리고 있는 그릇된 사고가 밖으로 분출된 것입니다. 당시 독일은 효율과 경쟁을 최우선으로 하는 사고방식에 젖어 있었습니다. (비단 독일만 그런 것도 아니지만) 우수한 인종과 민족이 따로 있고, 경쟁에서 낙오된 ‘것’들은 사회악이므로 없애도 좋다는 생각이었습니다.
나치의 동족상잔, ‘일급비밀’
히틀러의 학살 공장이 어디서 비롯되었지 살펴보면 모든 사태의 뿌리를 알 수 있습니다. 가스공장은 원래 유대인을 죽이려는 곳이 아니었습니다. 그곳은 ‘안락사’를 위한 ‘의료시설’이었습니다. 안락사는 히틀러가 처음 생각했던 것으로 대상은 제국 내의 정신병자들이었습니다. 그들의 ‘안락사’ 대상에는 정신병자와 유대인 외에 군인도 있었습니다.
‘1942년 1월 이후 동부에서는 ‘얼음과 눈 속에서 (독일군) 부상자들을 돕는’ 안락사 팀이 활동하고 있었다. 그리고 부상병들을 죽이는 것도 ‘일급비밀’이었지만...’ - 한나 아렌트, <예루살렘의 아이히만> 중에서.
사족을 붙이자면 이들은 1등급 유대인들을 따로 구분해서 보통 유대인(‘돼지들’)과는 다른 대우를 했습니다. 히틀러도 340명의 일급 유대인을 알고 있었습니다. 기능과 효율을 위주로 사람을 쓸모 있는 인간과 죽여도 마땅한 쓸모없는 인간으로 구분한 것입니다.
독일은 이러한 잘못을 다시 저지르지 않기 위해 유대인들 앞에 무릎을 꿇었고, 효율 위주의 경쟁 분위기를 개선해 나갔습니다. 무엇보다 교육 개혁이 있었습니다. 주입식 경쟁 교육에서 약자와 강자 모두 서로 도우면서 살아가는 것을 교육적 이상으로 삼았습니다.
일본도 반성했다, 다만...
일본도 반성을 했습니다. 다만 그 수준과 차원이 다릅니다. 그들은 그저 “전쟁을 일으키면 우리도 괴롭다. 그러니 다시는 전쟁하지 말자.”는 반성이 거의 전부입니다. 일본은 여전히 자신들이 아시아에서 가장 우수한 인종이고, 식민지배에 관해서도 문명 국가가 비 문명국가를 도운 ‘선행’이라고 생각합니다. 불완전한 반성이 상황을 과거로 회귀시키고 있는 셈입니다.
올해 독일이 월드컵에서 우승했습니다. 독일은 축구뿐 아니라, 다른 모든 분야에서도 두각을 드러내고 있습니다. 유럽을 이끌 나라를 묻는 여론 조사에서 독일이 압도적인 지지를 얻었습니다. 유럽 전체가 독일을 인정하고 있다는 뜻입니다. 그 안에는 자신의 잘못을 철저하게 반성한 국민성에 대한 존경도 담겨 있을 것입니다.
역사는 되풀이 된다고 합니다. 그러나 그것은 역사가 제대로 기록되지 않던 시대, 혹은 과거의 고통을 까마득히 잊을 만큼 오랜 세월이 흐른 후에나 일어났던 일입니다. 일본처럼 피해를 당한 당사자가 아직 살아 있는데도 과거와 똑같이 행동하는 예는 극히 드뭅니다.
사족을 달자면, 100년 전 일본의 ‘아시아의 리더’ 자격을 인정했던 국가는 미국이었습니다. 그들은 이번에도 집단 자위권에 찬성표를 던졌습니다. 100년 전 그들의 밀월은 기습 공격(진주만)과 원폭 투하로 끝났습니다. 가해자들끼리 서로를 심판한 셈입니다. 요컨대, 일본의 군국주의는 누구에게도 이로울 것이 없는 일입니다. 100여 년 전의 참혹한 역사가 아시아와 태평양에 다시 반복되지 않길 바랄 뿐입니다.
- 유명상(한국일보 대구경북 본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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