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영역

본문영역

가족의 아픔과 힘!

  • 입력 2014.05.09 00:00
  • 기자명 유명상 본부장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애써 참아보지만 자꾸 흐르는 눈물을 주체할 수가 없었습니다.
생떼 같은 자식들을 잃은 가족들의 절규와 넋 나간 모습을 보면서 가슴이 찢어지는 듯한 아픔을 겸험하지 않은 대한민국 국민이 있었겠습니까? 다시는 이 같은 어처구니없는 참사가 절대 재발돼서는 안 된다는 염원을 하고 또 했습니다. 이번 세월호 참사를 겪으면서 나도 모르게 가족이란 개념을 다시 한 번 되새겼습니다.
지금까지 한국일보 대구·경북취재본부를 거쳐 간 대학생들이 얼추 100명쯤 됩니다. 대학생 직장체험 프로그램에 참여한 학생들이었습니다. 그들을 가만히 떠올려보면 일을 잘했던 학생들에게는 공통점이 하나 있었습니다. 생각이 어른스러웠다는 것이었습니다. 왜 어른스러웠던가를 곰곰이 따져보니 또 다른 뿌리가 있습니다. 바로 부모님과 친숙했다는 점입니다. 어머니, 아버지와 자주 대화를 나누다보니 자연스럽게 성숙한 생각과 태도를 가지게 된 것이 아닌가 봅니다.


아이에게 ‘말의 천근 무게’ 깨닫게 해야
제가 알고 지내는 기업인들 중에는 “효자는 무조건 채용한다”는 분들이 많습니다. 부모님께 잘하는 사람이 일과 처신에서 실수하는 것을 본 적이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맞는 말입니다.
가족 구성만 놓고 이야기하자면 우리는 결코 희망적이지 않습니다. 무엇보다 가족 구성원이 줄었습니다. 형제도 많지 않고 일년 동안 조부모님과 삼촌, 고모, 이모 얼굴을 한두 번밖에 보지 않고 자라나는 아이들이 절대 다수일 것입니다. 공부, 공부, 공부…. 좋은 대학만 가면 된다는 그릇된 사고 때문이죠. 여기다 입시위주의 교육도 가장 큰 원인이 아닌가 합니다. 가족 구성원이 단출하고 친인척들과의 왕래도 안 된다는 것은 그만큼 사회와 세상을 이해하는 폭이 좁아진다는 뜻입니다.
조금 다른 이야기지만 저는 얼마 전 재독(存獨) 철학자 한병철이 쓴 <시간의 향기>를 읽다가 가벼운 사회의 의미를 생각했습니다. 그는 책에서 ‘자유롭다’, ‘평화’, ‘친구’의 공통점을 설명했습니다. 이 단어들은 독일어로 각각 frei, Friede, Freund인데, 이들 표현에 공통적으로 들어있는 인도게르만어에서 온 ‘fri’는 ‘사랑하다’입니다. 결론은 이렇습니다. ‘자유롭다는 것은 본래 친구나 연인에게 속해 있는’이라는 뜻입니다.
자유를 지극히 평면적으로 (혹은 깊이 없게) 받아들이면 ‘지 멋대로’ 쯤이 될 것입니다. 세대 간의 소통이 단절된 채 자라난 아이들이 쓰는 단어가 이렇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단어 하나하나에 우물보다 깊은 세상이 있다는 사실을 알까요? 나이를 먹다보면 세치 혀로는 감히 들어올리기 힘들만큼 무거운 단어와 의미들이 있다는 사실을 깨닫습니다. 우리 아이들은 그런 ‘말의 경험’을 전혀 하지 못하고 자라납니다. 그래서 남학생, 여학생 할 것 없이 평소에 쓰는 말 속에 저속어, 육두문자 등이 많은 것입니다. 모두 가족이 해체된 이후에 생겨난 현상들입니다.
사실 한국 근현대사는 가족해체사라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일제강점기, 징용이나 ‘처녀 공출’ 따위로 얼마나 많은 이들이 가족과 헤어졌고, 먹고 살 길을 찾아 고향을 떠나 만주로 중국으로 떠나야 했습니까.
6·25 한국전쟁은 말 그대로 가족을 흩어버렸습니다. 전후 30여년 만에 방송된 ‘이산가족찾기’는 역사상 가장 긴 생방송(453시간)을 기록했을 정도로 헤어진 가족들이 많았고 사연과 그 모습 또한 너무나 애잔했습니다. 전쟁 중에 흩어진 가족, 부모의 생사를 몰라 고아로 자라난 아이들, 그 모든 가족사가 아직도 깊은 생채기로 남아 있습니다.


가족 해체의 근현대사…소통이 열쇠
이어 찾아온 산업화 시기는 다시 한 번 가족을 흩어놓았습니다. 우리 국민 대부분이 시골에 살던 그 시절, 시골 학생들은 초ㆍ중학교를 졸업한 후 일거리를 찾아 도시의 공장지역으로 떠났습니다. 많은 대학생들이 노동운동에 뛰어들었을 만큼 환경이 열악했던 것도 문제였지만, 그보다 부모 세대와의 단절이 이후 더 큰 후유증을 불러왔습니다.
효 사상을 비롯해 오래 전부터 전해 내려온 미풍양속이 약화한 것은 입시 위주의 교육제도에다 가족이 함께 모여 선악미추(善惡美醜)를 전해들을 기회가 적어진 때문이 아닐까 싶습니다.
당연한 말이지만 우리가 속한 사회는 가족과 가족이 모여서 이루어진 집단입니다. 그런데, 가족이 어떤 모습을 띠고 있느냐에 따라 사회의 성격이 달라집니다. 앞서 말했듯이 가족 구성원의 연령대가 두터우면 두터울수록 우리 사회는 소통 능력이 높아질 것입니다. 가족들이 자주 만나고 대화를 나누면 자연스럽게 자신과 다른 세대의 목소리를 듣게 됩니다. 이런 가족 간의 대화가 모이고 모이면 사회를 이해하는 폭이 넓어지고 사회 전체의 소통이 원활해질 것입니다. 유대인들이 자신들의 민족적 저력을 끈끈한 가족애에서 찾는 것도 바로 이런 이유입니다.


가족이 행복해야 인류가 행복하다
언필칭 5월은 가족의 달입니다. 이달을 계기로 가족ㆍ친지들이 더 자주 만나고 모이시기 바랍니다. 그것이 진정한 행복에 이르는 길입니다. 사람들은 삶의 질을 이야기할 때 경제 규모나 국민 소득의 증가를 운운하지만 그것이 우리 삶의 질을 근본적으로 향상시키지는 못합니다.
지난달, 우리는 가장 큰 가족의 비극을 겪었습니다. 300여명의 존귀한 생명들이 너무도 갑작스럽게 부모와 형제의 품을 떠나버렸습니다. 온 국민이 자기 가족을 잃은 것처럼 슬퍼하고 있습니다. 그 재난 가운데서도 가족애가 빛났습니다. 동생에게 자신이 입고 있던 조끼를 벗어주고 떠난 7살 오빠, 어린 학생들이 제 자식 같아 커튼을 찢어 구명줄을 내린 평범한 시민들, 그리고 국가적 재난 앞에 두 팔을 걷고 자원봉사자로 나선 수많은 어머니, 아버지들이 그렇습니다. 혹자는 ‘국가는 3류인데 국민은 1류’라고 했습니다. 자원 봉사자들 모두 ‘내 가족이 그런 일을 겪었다면’하는 마음으로 비극의 현장에 달려갔습니다. 우리를 1류로 만든 것이 바로 가족애입니다.
인류가 생겨난 이래로 언제나 가족에서 진정한 행복을 찾았습니다. 가족은 우리 사회를 지탱하는 가장 든든한 보루였습니다. 가족만 있으면 그 어떤 어려움도 극복할 수 있다고 말하는 이들이 얼마나 많습니다. 가족은 어떤 단체나 관계보다 힘이 셉니다!
무엇보다 가족의 행복은 우리 사회의 궁극적인 목표입니다. 매년 찾아오는 5월이지만 올해는 조금 더 부지런을 떨어서 어느 해보다 소통하면서 의미 있고 행복한 가족의 달로 만드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세월호 참사로 희생당한 분들의 가족들을 마음으로나마 위로하고 모든 이들이 슬픔을 딛고 일어날 수 있도록, 캄캄한 절망 속에서 새로운 희망을 만들어 갈 수 있도록 우리 모두가 적극적으로 나섰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유명상 (한국일보 대구·경북취재본부장)

저작권자 © 대구한국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개의 댓글

0 / 400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
/ 400

내 댓글 모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