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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 디자인&브랜드를 되 묻다디자인, 도시의 운명선
김윤곤기자  seoum@dghankook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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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4.04.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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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가 숲이라면 건조물은 나무다. 대나무가 모여 대숲을 이루듯 건조물들이 모여 이 도시의 스카이라인과 분위기, 문화와 생태를 이룬다. 50층을 넘는 주상복합에서 동네마다 주민센터와 아파트에 이르기까지 우리는 도시라는 건조물의 숲에 살고 있다. 우리의 모든 필요와 욕망을 투영하는 이 숲의 생태는 우리 삶의 대부분을 결정한다. 이 도시의 숲, 건조물의 디자인은 얼마나 건강하며 아름다운가. 얼마나 격조 높으며 운치 있는가. 아직도 우리는 먹고 살기에 바빠, 공기(工期)에 쫓겨 나무도 숲도 돌아보지 못하는 시절을 살고 있는가. 아직도 건축과 토목은 ‘토건족’들이 공공성을 해치는 유사 공공 의제를 밀어붙여 무언가를 챙겨가는 파이프라인인가. 아니면 진정 건축이 인간의 몸과 마음, 영혼을 담는 그릇인가. 이러한 도시 디자인에 우리는 도시의 브랜드를 내건다. 도시의 숲을 되돌아보는 것은 우리와 도시를 거울에 비춰보는 것이다. 한 눈에 다 잡히지 않는 도시에 커다란 거울을 애써 비추며 우리 도시의 디자인과 브랜드를 되묻는다.

   
 

- 프랑스 릴의 경우와 대구

공장 굴뚝의 역사는 드라마틱하다. 산업혁명 이래 부유한 도시의 스카이라인이던 굴뚝 연기는 수백 년 동안 번영과 발전의 상징이었다. 20세기를 지나면서 그것은 대기 오염과 지구 온난화의 원흉이 됐다. 변심한 도시는 그를 혐오했다. 이때부터 문화·관광산업이 새삼 각광받았다. 새로운 시대는 ‘굴뚝 없는 공장’ 문화·관광의 시대였다.
프랑스 북부 벨기에 국경지대와 인접한 플랑드르(Flandre) 평야에 릴(Lille)이 있다. 동화 ‘플랜더스의 개’의 무대가 플랑드르다. 릴은 플랑드르의 중심도시다. 인구 22만 명. 작다고 얕보면 안 된다. 릴은 세계 최초로 무인 전차를 운행한 도시이고, 프랑스에서 루브르박물관 다음으로 큰 22,000㎡ 규모의 미술관을 갖춘 도시다.
이 도시에 1994년 유라릴(Euralille)이 문을 열었다. 쇼핑센터, 호텔, 아파트, 사무실, 학교가 어우러진 이 대형 복합상가다. 이곳이 주목받게 된 것은 막대한 자본금의 100배에 이르는 투자를 유치했고, 가장 높은 실업률로 프랑스의 골칫거리였던 도시에 5,000개의 일자리를 제공했기 때문이다. 유라릴은 과거의 영화를 잃고 쇠락하던 도시가 스스로를 재발견하며 찍은 반환점이다.

프랑스의 ‘골칫거리’서 희망으로
오랫동안 릴은 프랑스 북부 공업지대의 거점이었다. 릴을 떠받치던 석탄·섬유·기계산업은 1970년대 들어서면서 경쟁력을 잃었다. ‘국가동원 수출체제’ ‘살인적인 노동조건’의 후발 국가들과는 경쟁 자체가 불가능했다. 기로에 선 업체들은 기술 집약으로 체질을 개선하기보다 손쉬운 저임금 외국인 노동자 고용으로 대처했다. 중동, 아프리카 등지에서 노동자들이 몰려들었고 그들의 거주지역이 형성되면서 도시의 갈등 요소는 깊어갔다. 손쉬운 해결책은 더욱 복잡한 문제로 되돌아왔다.
1973년 공업도시 노동자들의 지지 속에 시장에 당선된 사회당 소속 피에르 모루아(Pierre Mauroy)는 릴을 프랑스(파리)-벨기에(브뤼셀)-영국(런던)간 ‘골든 트라이앵글’ 철도의 허브역으로 만들겠다는 대담한 위기 돌파 전략을 내놓는다. 그는 영국과의 힘겨운 TGV 해저터널 노선변경 협상에도 성공한다. 릴을 통과하는 노선이 더 많은 도시들과 연계될 수 있다는 합리적인 논리로 대처 영국 총리를 끈기 있게 설득한 결과였다. 28년이나 재임하며 도시 재생의 발판을 다진 모루아 시장의 별명은 불도저. 프랑스 총리를 겸직하기도 했던 그는 설득할 줄 알았던 불도저였다.

건축위원회에 철학자를 참여시킨 이유
이렇게 노선이 바뀌자 기존 역을 곁에 두고 새 역을 지어야 했다. 두 역 사이에는 병영으로 쓰이던 15,000평의 빈 땅이 놓여 있었다. 작은 도시에서 인접한 두 역 사이에 황량한 공터가 펼쳐진 풍경은 썰렁했다. 민관합자로 유라릴메트로폴(Euralille-Métropole) 개발회사가 설립됐고 이 회사의 투자로 두 역을 연결해 세워진 거대한 복합단지가 바로 유라릴이다.
유라릴의 추진 과정을 눈여겨 볼 필요가 있다. 개발회사는 건물의 크기보다 건물의 질적 수준이 얼마나 중요한지 알고 있었다. 시민, 공무원, 언론인, 철학자로 이뤄진 위원회가 꾸려졌고 이 위원회는 매월 모여 건축가를 선정하고 건물의 질적인 문제를 검토한 뒤 전략을 만들어나갔다. 건축위원회에 시민과 함께 철학자를 참여케 한 것은 프랑스가 꼭 철학의 나라여서가 아니다.
가장 중요한 것은 구체적인 디자인이 아니라 이 도시에 대한 철학과 비전이었다. 문화·예술·관광도시는 이에 대한 확고한 정책의지를 가진 시당국과 그러한 문화적 마인드, 인문적 에너지를 가진 시민들이 의기투합하지 않고는 이뤄낼 수 없다. 우리는 무엇을 할 것인가. 어떻게 살 것인가. 어떻게 행복해질 것인가. 무엇을 할 수 있는가. 결국 우리는 무엇이 될 것인가. 이 근본적이고 커다란 물음에 대한 고민에서 우러나지 않은 도시 설계나 개발 계획은 눈속임이거나 겉치레일 가능성이 농후하다.

기존 상권을 죽이지 않는 대형 상가
위원회는 설계를 위해 세계적인 건축가 렘 콜하스(Remment Koolhaas), 장 누벨(Jean Nouvel), 크리스티앙 드 포잠파크(Christian de Portzamparc), 클루드 바스코니(Claude Vasconi) 등 8명을 초빙했고, 강렬한 실험정신으로 ‘현대 건축의 이단아’로 불리는 네덜란드 로테르담 출신의 쿨하스가 총괄 책임 건축가로 선정됐다. 각자가 건물의 부분을 나눠 맡아 설계 작품이 완성될 때마다 저널들이 소개했다. 유라릴은 단지 철도역만이 아니라 한 도시를 위한 계획안이었다. 이 초대형 상가 하나를 살리려고 기존 도심의 상권을 희생시킬 수는 없었다. 유라릴 상가에 입주하려는 사업자에게 기존 도심 상가를 철수해서는 안 된다는 조건을 붙였다.
물론 도시 재생을 큰돈이 드는 유명 작가나 건축가의 작품에만 의존한 것은 아니었다. 신세대 작가들에게도 더 새로운 것을 꿈꾸고 제안할 수 있는 토양을 만들어줘야 했다. 지방정부에 보조를 맞춘 국가정부의 북부 도시 살리기 운동에 힘입어 릴시는 재능을 가진 예술인들을 동네 주민으로 받아들이겠다는 단순 명료한 슬로건을 내걸었다. 빈 공장을 작가들의 작업장과 미술관으로 재활용하고, 어두운 회색빛 건물들을 밝고 세련된 회색으로 단장하는 일상 수준의 도시 프로젝트였다.

예술인을 불러들이고 터를 마련하라

이와 함께 역 부근에는 컨벤션센터·전시장·공연장을 함께 갖춘 대형 문화공간 릴그랑팔레(Lille Grand Palais)를 개장했다. 전시장에는 황금삼각지대의 중심을 자부하며 전 유럽인에게 손짓하듯 파리홀, 브뤼셀홀, 런던홀이라는 이름들이 붙어 있다. 여권도 체크인도 필요 없이 고속으로 달려 테제베(TGV)로 파리북역에서 1시간, 유로스타(Eurostar)로 런던에서 1시간 40분, 브뤼셀에서는 38분 만에 릴역에 도착한 사람들은 화려하고 우아한 유라릴과 릴그랑팔레를 돌며 걷다가 물 흐르듯 자연스레 도시 안으로 들어선다.
릴은 이미 스쳐 지나는 환승지가 아니라 꼭 들러야 할 종착지, 관광·쇼핑·서비스·비즈니스의 중심으로 자리매김했다. 1985년 멜리나 메르쿠리 그리스 문화부장관의 제안으로 아테네부터 시작해 유럽연합(EU)이 매년 1~2개 도시를 순번제로 지정해 유럽의 문화 중심지로 키우는 프로젝트 ‘유럽 문화수도’ 19번째(2004년) 주인공은 릴이었다. 공업도시의 명성이 다할 때 과감하고도 치밀한 준비와 전략으로 도시 전체가 문화·예술·관광도시로 거듭난 첫 번째 도시였다.

‘2004 유럽문화수도’ 저소득층 곁으로
이 지원 기금으로 릴은 문화 공간 확충을 위해 저소득층이 모여 사는 남부 두 곳에 다목적 복합문화시설 메종폴리(Maison Folie)를 세웠다. 도시 전체가 문화 도시여야 한다는 원칙에 따라 빈 맥주공장, 직물공장을 주민들의 문화공간으로 리노베이션한 것. 이 공간은 다목적 홀, 스튜디오, 전시 공간, 미디어 도서관, 탁아소, 예술인 자치 공간, 사무실, 레스토랑 등으로 활용될 것이다.
몇 개의 테마를 돌아가며 적당히 우려먹는 기획전이 아니라 1년 내내 개방돼 시민들과 함께 호흡하고 소통하며 진화하는 현대미술의 빅 이벤트 Lille 3000 프로젝트를 비롯한 다양한 문화예술 프로그램들은 이러한 문화적 토대 위에서 가능하다.
대회랑에 꽃무늬를 새긴 두 줄의 열주가 100여m나 늘어서 있는 아르데코 양식의 시청 건물, 밤에 꼭대기 조명을 밝히면 30km 밖에서도 보인다는 104m 높이의 시청 종탑, 루이 14세의 승리를 기념해 세운 파리의 문(Porte de Paris), 15세기의 화려한 고딕·플랑드르 바로크·르네상스 양식을 접목한 팔레 히부르(Palais Rihour), 해마다 9월 첫 번째 주말에 열려 100만~200만 명의 방문객이 찾는 유럽 최대의 벼룩시장 릴 중고시장(Lille Grande Braderie)…. 릴이 시 곳곳에 산재한 이런 유서 깊은 유산과 전통에 현재의 문화코드를 더해 전통과 현대, 과거와 현재가 어우러진 풍부한 문화도시로 거듭났다.

청년 인구가 36%…도시 재생 성공의 이유는
1990년대 릴은 대부분의 공장이 외지로 옮겨갔고 인구 17만 명 중 3만여 명이 일자리를 찾아 대도시로 떠났다. 시민들의 삶은 암울했고 거리는 활력을 잃었다. 그래서 ‘세상에서 가장 슬픈 동네’라는 별명이 붙었다. 이런 현실을 박차고 올라설 수 있었던 힘은 문화·예술에 있었다. 북부의 쇠락했던 도시는 이제 전체 인구의 36%가 25세 미만인 젊고 활기찬 도시가 됐다. 대학생 인구 10만, 프랑스 제3의 대학도시이기도 하다. 이곳으로 유럽과 전세계 관광객들이 안전하고 편리한 고속철을 타고 몰려든다. 역사와 현재가 함께 살아 공존하는 문화를 향유하기 위해서다.
릴이 도시 재생에 성공한 것은 문화도시의 미래에 대한 치밀한 준비와 일관된 추진력, 그리고 이를 구체화한 디자인 덕분이다. 섬유도시의 명성을 잃은 지 오래, 새로운 미래 비전을 스스로 세우지 못한 채 소비도시로 전락한 대구의 현실에서 비슷한 쇠락의 길을 걸었던 릴이 시사하는 바는 크다.
장기적이고 일관된 시의 정책과 추진력, 최고의 전문가들을 초빙하는 당당함과 스케일, 시민과 철학자를 포함시킨 위원회에 결정권을 주는 동의와 설득에 바탕한 절차, 인문학적 주석을 빠트리지 않는 도시 디자인의 해석, 예술가들을 간섭하거나 줄 세우지 않고 자유로운 분위기에서 그들의 자발성으로 채우는 문화의 내용, 정치권력이나 자본권력의 이해를 대변하고 포장하는 것이 아니라 시민과 함께 소외계층과 더불어 가려는 공공성의 원칙 등은 부럽기만 하다.

태양열주택단지 없는 ‘솔라시티’
‘솔라시티 대구’를 내걸었지만 대구를 태양열주택 도시로 만들었다는 말은 듣지 못 했다. 내부적 역량이나 내수 없이 밖에다 무엇을 팔 수 있을까. 달구벌대로나 도시 곳곳에 들어선 초고층 건물들은 도시의 바람길을 막으며 솔라시티의 하늘과 햇빛을 가리고 있다. 교통영향평가는 차량의 속도만을 고려할 뿐 보행자의 편리함은 뒷전이다. 유럽 도시처럼 차도보다 보도가 훨씬 더 넓고 차양막까지 설치돼 있다면 나부터라도 승용차를 버리고 걷거나 대중교통을 이용하고 싶어질 것이다.
오페라·뮤지컬 등의 ‘공연문화도시’라지만 서울과 외국의 대형 공연기획사들의 판만 벌여주고 있는 것은 아닌가 회의하게 된다. 과감한 지원과 인력 육성 프로그램 없이 내부 역량은 키워지지 않을 것이다. 첨단의료복합단지에 대한 기대가 크지만 컨텐츠와 미래 비전은 불투명하고 이사진은 전문가보다 나눠먹기로 구성됐다는 지적이 있어 걱정스럽다. 왜 우리는 준비에는 치밀하지 못하며 결과에만 성급한가.

문화가 끓지 않는 곳에 사람도 끓지 않는다
문화·예술이나 관광을 산업이라는 관점에 바라보는 것이 바람직하냐는 문제는 일단 접어두더라도, 포스트잇이나 휴대폰 하나에도 예술과 디자인 감성을 불어넣지 않고는 팔아먹을 수 없는 세상이 현실이다. 도시 디자인은 말할 필요도 없다. 도시는 진화하거나 퇴화할 뿐 이 순간에도 멈추지 않는다. 아무도 미래를 알 수 없다. 그러나 미래를 기획하고 현재의 최선에서 공동체의 삶을 디자인하지 않는 도시는 퇴화할 뿐이다.
왜 우리는 정부·지자체가 힘을 합쳐 해저까지 뚫은 유레일패스처럼 대담한 유라시아 대륙횡단 철도를 기획할 수 없는가. 왜 우리는 실력 있는 기술 인재, 인문학 인재를 뽑지 않고 쓰지도 않을 영어 점수와 스펙으로 사람을 뽑는 바보짓을 반복하는가. 왜 문화 인력과 잠재력이 풍부한 도시에서 시정의 후임자와 그 다음 다음 후임자까지 동의할 절실하고 진정성 있는 통근 문화도시 전략을 짜낼 수 없는가. 문화가 오래 들끓지 않는 곳에 사람도 오래 끓지 않을 것이다. 디자인은 도시의 운명선이다. 더 절망하기 전에 문화도시의 운명선을 긋자.


김윤곤 기자 seoum@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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