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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로’와 ‘길’의 차이

  • 입력 2014.05.14 00:00
  • 수정 2015.07.24 10:46
  • 기자명 대구한국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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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포 앞 바다는 대구 사람들이 답답할 때 즐겨 찾는 곳이다. 바다도 바다려니와 경주 덕동댐을 지나 거기까지 가는 길이 너무도 아름답기 때문에 짧은 시간이지만 바다로 가는 전 과정이 내내 즐거움을 준다.
추령재는 감포 가는 길의 압권이다. 그 꼬불꼬불한 길을 따라가다 보면 내가 바다로 가고 있는지 속세를 떠나 도인을 만나러 심산유곡으로 들어가고 있는지를 잠시 착각하게 된다. 한 구비를 돌 때마다 온갖 상념을 털어 내며 마음을 정화시키고 새로운 활력을 얻게 되기 때문이다. 그런 추령재에 터널이 뚫린 지 몇 해가 지났다. 대부분 사람들은 바다에 빨리 이를 수 있다며 좋아하지만 나는 오늘도 나의 우둔함과 고집을 자랑스러워하며 옛길을 따라 추령재를 넘어 간다.


‘빨리빨리’라는 도로의 문화
‘도로’는 넓고 곧아서 어느 지점까지 가는데 걸리는 시간을 영에 근접하게 하는 것을 이상향으로 삼는다. 포장도로와 터널은 도로의 이상을 잘 구현하고 있다. 반면에 ‘길’은 비포장과 꾸불꾸불함과 우회를 좋아한다. 길은 여유와 자연스러움을 이상적으로 구현하고 있다. 오늘 이 땅에는 빨리빨리를 강요하는 소위 ‘도로의 문화’를 신봉하는 사람들이 너무 많다. 건물도 빨리 지어야 하며, 공부도 학원에 나가 미리미리 진도를 나가야 한다. 그러나 다지지 않고 속도만 중시한 결과가 무엇인가? 삼풍백화점, 상인동 가스폭발 참사 등 그 수많은 것들이 졸속함이 가져온 비극이었다. 이제 우리는 맨발로 흙을 밟으며 느긋하게 주변의 풍경도 즐기면서 길을 가는, 때로 낙조의 노을을 바라보며 까닭모를 슬픔에도 잠겨볼 수 있는‘길의 문화’를 생각해 보아야 한다. 공부도 마찬가지이다. 지름길이란 있을 수가 없다. 때로 우회하며 시간을 투자해서 기초를 탄탄하게 다져야 그 내용을 완전히 소화할 수 있고 배운 내용을 창의적으로 적용할 수 있다.
‘자연은 가장 훌륭한 교사’라는 선언으로 아이들을 구해낸 루소, 근대 교육학의 뼈대를 세운 빈민 아동의 교사 페스탈로치, 놀이 교재를 고안해 내고 최초의 유치원 ‘킨데르가르텐 kindergarten’을 세운 프뢰벨에 이어 스웨덴의 교육 운동가 엘렌 케이는 드디어 ‘20세기는 아동의 세기’라고 선언하게 되었다. 그러나 아동 교육은 아직도 미개척분야라 할 수 있다.


구불구불 느린 ‘길의 미덕’
더구나 우리의 현실은 어른의 탐욕과 무지로 인해 절망적이다. ‘어린이는 게으르고 무능하고 백지여서 어른이 지도하고 뭔가를 그려 넣어야 한다.’는 생각이 지배적이다. 그러나 아이들은 자발적이고 독립심이 강하다. 몬테소리는 “어린이에 대한 독재만큼 세계 전반에 걸친 큰 사회적 문젯거리는 없을 것이다. 어떤 노예나 노동자도 어린이만큼 무한한 순종을 요구당해 본 적이 없다. 그것은 수백 년 동안 끊임없이 계속되어 왔다. 이제 어린이들 편에서 생각할 때가 되었다”라고 말했다.
우리는 느림의 미덕을 소중하게 여길 줄 알아야 한다. 가정의 달이자 청소년의 달이기도 한 5월이다. 추령재 옛길을 넘으며 온 가족이 몸과 마음에 여유를 주며 신록의 계절을 향유해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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