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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 해야할까요?

  • 입력 2014.06.24 00:00
  • 기자명 유명상 한국일보 대구경북취재본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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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36년 병자년 난리가 났습니다. 오랑캐가 쳐들어온다는 소문이 들려온 지 얼마 지나지 않아 도성이 함락됐습니다. 임금은 산성으로 피신하고 미처 피란을 떠나지 못한 백성들은 무수히 죽임을 당했습니다. 아비규환이었습니다. 목숨이 경각에 달린 그 시기, 사람들이 보인 태도는 제각각이었습니다. 특히 고관대작들이 그랬습니다.

내 소관이 아니니 묻지 마시오! VS 내가 아니면 누가 이들을 도우랴!
병자년 난리에서 대표적인 인물을 찾자면 단연 김경징입니다. 그는 강도(江都ㆍ강화도) 검찰사로 강화도 방어를 담당했지만 전혀 방어에 힘쓰지 않았습니다. 청군이 바다를 건너진 못할 것이라고 예상한 때문이었습니다. 섬 안에 봉림대군(후일 효종 임금)을 비롯해 고관들이 있었지만 이들의 의견을 무시했습니다. 결과는 참혹했습니다.
‘날이나 보내면서 노닐다가 적의 배가 강을 건너자 멀리서 바라보고 흩어져 무너진 채 각자 살려고 도망하느라 종묘와 사직 그리고 빈궁(嬪宮)과 원손(元孫)을 쓸모없는 물건처럼 버렸을 뿐 아니라 섬에 가득한 생령(生靈)들이 모두 살해되거나 약탈당하게 하였으니, 말을 하려면 기가 막힌다.’ <1637년 정축년(인조 15년) 2월 11일>
어떤 학자는 김경징이 강화도를 지키지 못해 결국 인조가 항복을 하게 된 것이라고 말하기도 합니다.
김경징과 정반대의 인물도 있었습니다. 자기 일이 아닌데도 두 팔을 걷고 나선 것입니다. 어한명(魚漢明ㆍ1592 ~ 1648)이었습니다. 그는 김경징과 같은 공간에 있었지만 전혀 다르게 행동했습니다. 그의 직책은 수운판관(水運判官). 김경징과는 비교도 되지 않을 정도로 그저 짐이나 싣고 나르는 말단관리였지만 피란 온 봉림대군 일행을 강화도로 피신시키는데 적극적으로 나섰습니다. 당시 대군 일행을 호송할 직책에 있던 이들은 모두 자리를 비우고 없던 상황이었습니다.
어한명의 수하에 대립(大立)이란 하인도 있었습니다. 그는 어한명과 함께 산성으로 이동하는 중에 금천(경기도 시흥)에서 가족들을 만났습니다. 처와 자식들이 같이 도망가자고 했지만 가족들을 채찍으로 쫓았습니다. 그는 얼마 후 양식을 구하러 갔다가 오랑캐에게 죽임을 당했습니다. 가장 낮은 신분에 있었고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존재였지만 그는 어떤 고관보다 훌륭한 정신과 행동을 보여준 것입니다.

굳이 의전용 의자에 앉은 라면 장관 VS 의전용 방석에 앉지도 못한 임금
봉림대군의 태도도 주목할 만합니다. 그가 어한명을 처음 만났을 때였습니다. 어한명이 방석을 가져와 놓고 본인은 차가운 땅바닥에 엎드려 있었습니다. 대군이 좀체 앉지 않았습니다. 어한명은 생각했습니다.
‘내가 비록 미관일지라도 차가운 땅에서 고개를 숙이고 엎드려 있기 때문에 방석자리에 앉는 것이 편치 않은 생각이 있으신 듯하여…….’
그가 짚을 가져와 무릎 밑에 깔자 대군이 비로소 자리에 앉았습니다.
세월호 희생자 가족들이 모여 있던 강당 의전용의자에서 라면을 먹던 장관에 대한 논란이 있었습니다. 장관이 라면을 먹는 것까지 언론이 비난한 것은 너무한 것이라고. 장관이 식사를 못해 그것도 라면으로 때우는 것까지 시비를 거는 것은 지나치다는 주장입니다. 무리는 아니라고 봅니다. 그러나 라면을 먹든, 식사를 하든 졸지에 횡액을 당해 혼 줄을 놓은 채 차가운 바닥에 앉아있는 ‘백성’들과 함께 했다면 어떠했을까요. 봉림대군 같은 태도를 보였다면 말입니다.

중한 책임을 맡은 사람들이여, 반성하라 VS 우리 각자도 한번쯤 반성해야
난리가 어느 정도 정리되었을 즈음 통곡 소리가 들렸습니다. 세자와 봉림대군이 항복의 예를 마친 후 도성으로 가는 길이었습니다. 한 노파가 손바닥으로 땅을 치고 울면서 큰 소리로 말했습니다.
“어찌하여 오늘날 이 지경에 이르게 되었느냐? 중한 책임을 맡은 사람들이 날마다 술 마시는 것으로 일을 삼아 마침내 백성을 죄다 죽게 했으니, 이것이 누구의 탓인가? 나의 네 자식과 남편이 다 적의 칼에 죽고 단지 이 몸만 남았다. 아, 하늘이여, 어찌 이런 원통함이 있습니까?” - <병자록> 2월8일
세월호 참사를 보면서 책임자 역할을 해야 할 윗사람은 위기상황이 오면 오직 자기 한 몸 살고자 갖은 비겁한 행동을 하는 반면 일반 백성들이야말로 남을 위해 자신을 희생하고 불사르는 모습이 예나 지금이나 변한 게 없다는 생각에 탄식이 절로 납니다.
우리에게도 책임이 없지 않습니다. 그저 정부만 탓하고 대통령만 비난한다면 이런 비극이 또 다시 도래할 수도 있습니다. 평소 안전의식에 관련해 우리는 어떠했습니까. 뭐든 적당히 넘어가려는 안일한 사고, 그리고 우리들의 허술한 준법정신들이 결국 오늘의 안전 빵점 대한민국을 만든 게 아닐까요.
다시 시작해야 합니다. 의로운 이들의 이름을 마음에 새기고 우리는 다시 일어나야 합니다. 오로지 몇몇 책임자들의 잘못이라고 여기고 그들만 죄주는 것으로 끝이 나면 안 됩니다. 사회 구석구석에서 암적 존재로 숨어있는 안전 적폐들을 하나하나 척결해야 합니다. 후손들에게는 이 같은 비극이 절대 일어나지 않게 해야 한다는 책임 의식과 각오로 대한민국을 가장 안전한 나라로 만들어가야 합니다. 그것이 희생자들의 고귀한 목숨을 헛되게 하지 않는 유일한 길입니다.


유명상 <한국일보 대구·경북취재본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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