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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의 문화를 생각하며

  • 입력 2015.07.22 00:00
  • 기자명 대구한국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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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감포 앞 바다는 대구 사람들이 답답할 때 즐겨 찾는 곳이다. 바다도 바다려니와 경주
덕동댐을 지나 거기까지 가는 길이 너무도 아름답기 때문에 짧은 시간이지만 바다로
가는 전 과정이 내내 즐거움을 준다.
 

 추령재는 감포 가는 길의 압권이다. 그 꼬불꼬불한 길을 따라가다 보면 내가 바다로
가고 있는지 속세를 떠나 도인을 만나러 심산유곡으로 들어가고 있는지를 잠시 착각하
게 된다. 한 구비를 돌 때마다 온갖 상념을 털어 내며 마음을 정화시키고 새로운 활력을
얻게 되기 때문이다. 그런 추령재에 터널이 뚫리고 꽤 오랜 시간이 지났다. 대부분 사
람들은 바다에 빨리 이를 수 있다며 좋아하지만 나는 오늘도 나의 우둔함과 고집을 자
랑스러워하며 옛길을 따라 추령재를 넘어 간다.
 

 ‘도로’는 넓고 곧아서 어느 지점까지 가는데 걸리는 시간을 영에 근접하게 하는 것을
이상향으로 삼는다. 포장도로와 터널은 도로의 이상을 잘 구현하고 있다. 반면에 ‘길’
은 비포장과 꾸불꾸불함과 우회를 좋아한다. 길은 여유와 자연스러움을 이상적으로 구
현하고 있다. 오늘 이 땅에는 빨리 빨리를 강요하는 소위 ‘도로의 문화’를 신봉하는 사
람들이 너무 많다. 건물도 빨리 지어야 하며, 공부도 학원에 나가 미리미리 진도를 나
가야 한다. 그러나 다지지 않고 속도만 중시한 결과가 무엇인가? 삼풍백화점, 상인동
가스폭발와 대구 지하철 화재 참사, 세월호 침몰 등 그 수많은 것들이 졸속함이 가져온
비극이었다. 이제 우리는 맨발로 흙을 밟으며 느긋하게 주변의 풍경도 즐기면서 길을
가는, 때로 낙조의 노을을 바라보며 까닭모를 슬픔에도 잠겨볼 수 있는 ‘길의 문화’를
생각해 보아야 한다. 공부도 마찬가지이다. 지름길이란 있을 수가 없다. 때로 우회하며
시간을 투자해서 기초를 탄탄하게 다져야 그 내용을 완전히 소화할 수 있고 배운 내용
을 창의적으로 적용할 수 있다.
 

 도로의 문화에 내재된 조급함에는 가치가 없다. 다만, 시간을 양적인 개념으로만 보고
단위 시간을 단축시키기 위한 것만이 유일한 목표가 된다. 그리고 이러한 경향이 사회
전체적인 분위기로 자리 잡고 나면 개인은 이 문화를 반성하기보다 여기에 편승하고
싶어 한다. 길의 문화, 다시 말해 느림의 문화를 찾는 이들은 타자와의 관계를 중요하게                 여긴다. 사랑, 우정 등 사람들 사이의 소중한 가치는 조급함이나 속도 속에서 찾을 수                   있는 것이 아니라, 느림과 우회 속에서 천천히 자라나게 된다. 느림을 소중히 여기는                     사람들은 삶의 속도가 빨라질수록 인간관계가 멀어진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다.                          느림의 미덕을 생활 속에서 실천하는 지혜가 필요하다.

 

 

 

 

 

윤일현(지성교육문회센터이사장·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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