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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달의 시] 나의 왼손

  • 입력 2015.07.09 00:00
  • 수정 2015.07.09 15:11
  • 기자명 강은주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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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예성 시인

홀로 길 떠나 아무도 없는 허름한 밥집에서 큰 거울을 코앞에 두고 밥을 먹었는데 밥 한 술 가득 입에 넣다가 문뜩 거울을 쳐다보니 괜스레 울컥하며 코끝이 아렸다. 뭐 맨 날 먹는 밥 이걸 또 먹어야 하나, 산다는 게 좀 치사하다는 생각도 들다가 거울 저쪽의 나는 아무리 보아도 왼손잡이, 나는 영락없는 왼손잡이였다. 거울 속 왼손은 진짜 나의 오른손일 뿐, 헛것을 보면 안 되지, 그건 정말 진짜 진짜 내가 아니라고 나를 아무리 꾸짖어 보아도 거울 속 왼손잡이 노릇 진짜 멋있고, 정말이지 그게 진짜로 보인다. 누가 내 따귀를 때리며 그게 아니라 야단을 친다 해도 그건 꼭 그렇게만 보일 것이다. 거울 이쪽의 진짜 나는 보이지도 않고 꼭 쭉정이만 같은 것을 어쩌라고.

이예성은 인천 출신으로 연세대 영문학과와 대학원을 졸업(영문학박사)했다. 경주대 영어과 교수를 역임했고 현재 연세대학교 원주캠퍼스 영문학과에서 강의 중이다. 시집으로 ‘라만차의 기사 꿈속에 별을 보다’ 등이 있다.

 

▶ 해설 시인 김인강

문득 마주한 거울 속 상대가 자신이 하는 행동을 그대로 따라하는 걸 본 순간, 거울 속 그는 누구일까? 하는 생각을 한두 번쯤 해 보았을 것이다.

나의 모습이 보이지 않기에 거울 속 낯선 그가 하는 행동이 신기하기도 하고 못마땅하기도 하지만, 자신의 모습이기에 찬찬히 들여다보며 헛웃음 짓기도 한다. 많고 많은 모습 중에 왜 하필 밥 먹는 모습을 마주하게 되었을까? 오른 손으로 하는 일을 냉정하게 왼 손으로 따라하는 모습이 멋져 보일뿐. 나는 어디 갔는지? 무엇이 진짜인지? 드러내고 싶지 않은 모습이 거울 속에 고스란히 나타나 자신을 응시하며 하는 대로 따라하니, 두 명의 내가 누가 진짜이고 누가 가짜인 것인지 헷갈린다. 뭘 해도 저렇게 멋있는 모습이 진짜 나여야 한다고 마음 속 깊은 곳에 숨은 내가 소리친다.

 

강은주기자 tracy114@dghankook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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