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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바람은 신바람입니다

발행인 칼럼

  • 입력 2015.03.19 00:00
  • 수정 2015.07.06 17: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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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제 눈앞에는 옛날 그림 한 점이 놓여 있습니다. <연소답청>. 혜원 신윤복(申潤福, 1758~?)이 그린 그림입니다. 그림 속에는 남자 넷, 여자 셋이 보입니다. 여자들은 복장을 보아하니 기생들입니다. 모두 말을 타고 있습니다. 그들 곁을 지키는 이들은 모두 갓 쓴 선비들입니다. 선비들이 말을 꺼내 왔을 테지만 막상 올라탄 건 여자들입니다. 남존여비에, 신분의 차이까지 있는데 선비들이 기꺼 이 말 등을 내줬습니다. 그 딱딱한 ‘조선시대’에 무엇이 이들을 이토록 자유분방하게 했을까요. 그림을 자세히 보면 답이 있습니다. 옷자락이 바람에 날리고 길가에는 꽃이 피어 있습니다. 이들은 상춘객들입니다. 춘흥을 못 이기고 꽃놀이를 하러 온 것입니다.
산수의 기(氣)를 호흡하는 한국인
다시 봄입니다. 신윤복이 그림을 그렸던 그날 이후 우리 역사에는 많은 일이 있었지만 봄바람에 산으로 나들이를 가는 풍습은 여전합니다. 올해도 어김없이 상춘객들의 발길이 들로 산으로 이어질 것입니다. 조선 후기의 학자 홍만종(洪萬宗, 1643~1725)은 산을 좋아하는 것은 우리 민족의 고유한 특징이라고 설명했습니다. 요지는 이렇습니다. ‘중국인이 장수하는 법과 한국인이 장수하는 법이 다르다는 것을 지적 하여, 중국인은 단약(丹藥)을 즐겨 먹고, 한국인은 산수의 기(氣)를 호흡한다.’ 틀린 말이 아닙니다. 중국인들은 밥을 먹을 때도 제비집이나 곰발바닥 처럼 희귀한 재료로 만든 음식을 최고로 쳤습니다. 반면 우리나라는 철을 따라서 제철에 나는 식재료를 많이 먹었습니다. 한국인들은 예부터 유난히 자연친화적이었다는 뜻입니다. 한영우 서울대학교 명예교수는 ‘산수의 기를 마시고 사는 것이 바로 한 국인의 일상적인 신바람이요, 흥’이라고 설명합니다. ‘등산하면 기분이 좋아지고, 산이나 들에서 밥을 먹으면 밥맛이 좋고, 그래서 에너지가 축적된다’는 것이 그의 주장입니다.
낙천(樂天)은 곧 자연을 사랑하는 것
우리 민족의 자연친화적인 기질은 낙천적인 성품과도 연관이 있습니다. 낙천(樂天)은 곧 자연을 사랑한다는 뜻입니다. 옛 사람들은 하늘이 ‘철’을 나누어 만물을 움직인다고 믿었습니다. 하늘은 곧 사계절의 근본이자 자연 그 자체인 셈입니다.
우리 민족의 낙천성을 가장 잘 드러내는 것은 일상화한 춤과 노래입니다. 중국인들도 우리 민족(東夷)을 설명하면서 춤과 노래를 좋아한다 는 말을 빼놓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저들은 어찌 저리도 낙천적일까, 늘 궁금하게 생각했을 듯합니다. 자연을 사랑하니 낙천적이지요. 꽃이 피면 산으로 들로 나가고 여름이면 시원한 계곡에 발을 담그고, 가을 이면 너나 할 것 없이 가을 산의 운치를 즐깁니다. 자연을 이렇게 사랑 하는 민족이 또 있을까요. 봄입니다. 달력엔 1월 1일이 새해 첫날이지만 우리는 새가 울고 꽃이 피어야 ‘새해’를 실감합니다. 진짜 새 출발하는 기분이 드는 것입니다. 묵은 것들을 봄바람에 훌훌 털고 새롭게 시작하는 게 어떨까요. 못 이기는 척, 가족 친구들과 어울려 봄이 오는 산과 들판에서 새소리 듣고 봄꽃 감상하면서 ‘신바람’을 일으켜보는 겁니다. 우리는 ‘신바람’ 하나로 그 숱한 굴곡과 고난을 다 이겨냈습니다. 올해도 봄이 왔고, 새해 첫 신바람이 불고 있습니다.
얼씨구나 절씨구 얼씨구 얼씨구 절씨구!
우리 민족의 정서는 한(恨)이 아닙니다. 그건 일본인들이 지어낸 말입 니다. 우리 정서의 핵심은 신바람이요, 흥입니다. 판소리만 해도 그렇습니다. 딸 잃은 아비도, 재산 잃은 부잣집 아들도, 서방 잃은 젊은 여인도 낙천적인 주변 사람들의 위로와 도움 덕에 힘든 시기를 이기고 결국 ‘신바람 나는’ 결론에 닿습니다. ‘심황후 폐하도 만만세, 송천자 폐하도 만만세, 성수무강 허옵소서… 얼씨구나 절씨구 절씨구 지화자 좋네, 얼씨구나 절씨구 얼씨구 얼씨구 절 씨구!’ - <심청전>, 박동실 바디

정치, 경제, 사회 어디 하나 우울하지 않은 구석이 없습니다. 우리 조상님들처럼 일상에서 잠시 벗어나 마음에 신바람 일으키는 시간을 가져봅시다. 한민족의 ‘신바람’과 ‘흥’은 어떤 어려움도 거뜬하게 이겨내게 하는 힘이 있습니다. 가까운 산으로 들로 나가 큰 숨 한번 들이켜시기 바랍니다. 봄바람은 두 가지 의미에서 신바람입니다. 묵은 것들을 씻겨내는 신 (新)바람이요, 한해를 힘차게 살아갈 힘을 주는 신바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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