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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슬픈 역사와 숲 가꾸기

  • 입력 2015.05.20 00:00
  • 수정 2015.06.08 11:39
  • 기자명 강은주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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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는 국토의 3분의 2가 산이고 그 사이로 크고 작은 강이 흐릅니다. 사계절이뚜렷해 복 받은 금수강산입니다. 역사적으로 볼 때 강대국의 침략을 많이 받고 스스로나라를 지키지 못해 강산이 피폐해지기 시작했습니다.
 

헐벗은 백성의 운명이 산천의 운명
 

1700년대 숙종·영조·정조시대는 일명 진경시대(眞景時代)라고 일컬어지는 살기가좋은 때도 있었습니다만 1800년대 들어서면서 나라가 쇠퇴해지기 시작했습니다. 정조 이후 노론의 일당독재로 노론벽파가 전횡을 일삼았습니다. 왕족과 양반계급이 여린 백성들을 약탈했고 백성들은 살아남기가 힘들었습니다. 그래서 일어난 것이 ‘홍경래의 난’과 ‘동학혁명’입니다. 백성들은 나무뿌리와 껍질을 벗겨서 초근목피로 연명하였습니다. 그랬으니 산에 나무가 살아남을 리 없었고 금수강산은 피폐해져갔습니다.1905년 11월17일 을사늑약으로 일본에게 강제적으로 외교권을 빼앗기고, 1910년에는나라를 빼앗겼습니다. 그런 과정을 통해 백성들은 그야말로 생명연장에 급급했습니다.산에 있는 나무는 땔감으로 사라지고 좋은 소나무도 다 베어졌습니다.이후 일제강점기, 6·25전쟁을 거치면서 국토는 더욱 황폐해졌습니다. 1800년대를 시작으로 1970년 중반까지 우리나라는 먹고 살기에 급급했습니다. 박정희 대통령의 덕으로 겨우 보릿고개를 면했습니다.1988년 올림픽을 기점으로 우리나라는 눈부신 경제성장을 통해 소득수준도 올라갔고 세계인들의 관심의 대상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올림픽을 치른 후 일부 서구학자들과 언론에서 “한국은 샴페인을 너무 일찍 터트린다”고 했습니다. 그것이 의미하는 것은 무엇일까요.
 

보릿고개 면한 뒤에도 자연 안 돌봐
 

먹고 살 정도가 되니 온 나라는 흥청거리고 소비와 쾌락에 빠져들었습니다. 1980년대 해외여행이 자율화되고 올림픽계기로 전 세계가 KOREA를 알게 되었습니다. 외국에서도 대접받게 되었습니다. 해외에 가서 많이 보고 배워야 되는데 명품브랜드 쇼핑에만 열중했습니다. 다시 20여 년이 흘렀습니다. 소득수준은 계속 올라가고 안목도 높아졌습니다.이제는 해외 선진국의 자연과 도시의 아름다움을 보고 배워야합니다. 다시 아름다운 금수강산을 만들어야합니다. 우리도 나무와 숲
이 우거지고 꽃이 피는 도시를 만들어야합니다. 세 계 적으로 아름다운 지역을 공중촬영해서 소개하는 스카이힐링 이라는 TV프로그램이 있습니다. 몇 백 년에 걸쳐 가꾸고 이루어낸 도시들입니다. 보고 있으면 너무 아름답고 꿈같은 도시들입니다. 이제 우리도 그런 도시를 만들어서 우리의 후손들에게 물려줘야합니다. 더 많은 소득을 올리고 더 좋은 자동차를 사고 더 좋은 집에 살며 명품 옷을 입는 것보다 우리가 사는 환경과 우리가 사는 도시를 잘 가꾸어 금수강산을 다시 만들 때가되었습니다.
 

아름다운 금수강산 다시 가꿀 때
 

푸른대구가꾸기시민모임은 지난 4월 4일 팔공산 수태골에서 시민 500여명이 참석한가운데 2m높이의 단풍나무 800그루를 심는 식목일행사를 가졌습니다. 50년 후 팔공산을 단풍이 우거진 아름다운 산으로 만들겠다는 계획의 연속사업으로 계속 단풍나무를 심고 있습니다. 시민 모두 ‘내 나무 한그루 갖기 운동’을 연속적으로 실천할 때, 우리후손들은 아름다운 자연을 누리며 행복하게 살 것입니다.글로벌시대입니다. 13억5천이라는 거대한 이웃나라 중국의 관광객이 몰려옵니다. 올수밖에 없도록 만들어야 합니다. 외국인들이 보고 느끼고 즐길 수 있도록 아름다운 금수강산을 만들어 가야 할 때입니다.
 
<푸른대구가꾸기시민모임 이사장 · 전 대구시장>
 
정리 강은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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